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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91383263
· 쪽수 : 284쪽
· 출판일 : 2022-12-15
책 소개
목차
들어가며 · 유물에 유혹당하는 순간
1부 오르다
슬픈 우승자 - 청동 투구
함께 나이 드는 글씨 - 잔서완석루
지운 네 글자 - 서직수 초상
채우면서 비우기 - 법화경 그림
손결·손길·눈길 - 나전 칠 연꽃넝쿨무늬 옷상자
사유를 사유하는 시간 - 두 반가사유상
돌 속 부처 - 감산사 미륵보살입상과 아미타불입상
고려인의 바다 - 물가풍경무늬 정병
힘센 토끼 - 청자 칠보무늬 향로
해이와 자유 사이 - 분청사기 상감구름용무늬 항아리
달멍 - 백자 달항아리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 창조신 복희와 여와
인간과 불상 사이 - 간다라 보살상
열망·욕망·절망 - 녹유전각
나의 인생 한 컷 - 겐지모노가타리 화첩
2부 거닐다
잘생긴 돌멩이 - 주먹도끼
석기 시대 명품 무늬 - 빗살무늬토기
마법 목걸이 - 농경문 청동기
유물 백화점 - 다호리 1호분 출토 유물
고구려 QR코드 - 호우명 청동합
무덤에 핀 황금꽃 - 무령왕릉 왕비 관꾸미개
녹슨 갑옷 구하기 - 가야의 갑옷과 투구
황금 숲의 비밀 - 신라 금관
너털웃음 찾기 - 말 탄 사람 토기
숨은그림찾기 - 발걸이
마음이 만들다 - 재조대장경 경판으로 인쇄한 경전
사람을 움직이는 글자 - 한글 금속활자와 능엄경 언해본
국가 의례 사용설명서 - 외규장각 의궤
국토정보 네트워크 - 대동여지도
용의 꿈 - 대한제국 국새
책속에서
일단 전시실에 발을 디디면 신화에 나오는 거대한 강이 나타난다. 그러면 나는 깊이를 알 수 없는 끝없는 물결을 따라 여행하며 전설 같은 유물과 부지런히 접속한다. 그러는 사이 여행이 끝난다. 어떤 날은 한 편의 시처럼 짧지만 강렬하고 다른 날은 단편 소설처럼 상쾌하고 간혹 어떤 날은 장편 소설처럼 깊고 묵직하다.
이제 얼굴을 볼 차례. 수염과 눈썹을 보면 깜짝 놀랄 수밖에 없다. ‘털 하나라도 다르게 그리면 그 사람이 아니다’라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는 것 같다. 62세 서직수의 눈썹과 수염이 어떻게 얼마나 났는지 바로 확인할 수 있다. 속눈썹도 놓치지 않고 표현했다. 특히 왼쪽 뺨에 난 점과 털은 화가의 뛰어난 관찰력과 사실성을 보여준다. 왼쪽 뺨에 크기가 다른 점들이 났고, 그중 한 점에 털이 났다. 보일 듯 말 듯한 털까지 합치면 모두 세 가닥이다. 이 털을 보고 있으면 집요함에 숨이 턱 막힌다.
힘을 주어야 할 부분은 놓치지 않고 힘을 주었다. 오른쪽 뺨에 댄 손가락들, 특히 새끼손가락을 보는 순간 내 손가락에도 힘이 들어간다. 사유하는 자세를 자연스럽게 만들려고 살짝 올린 오른쪽 무릎의 탄력적인 곡선과 날카롭게 솟은 몇 줄의 옷주름이 팽팽한 긴장감을 일으킨다. 사유에 몰두하다 자기도 모르게 다다른 절정의 순간을 약간 구부러진 오른쪽 엄지발가락으로 묘사했다. 예리하게 관찰하고 표현한 걸 보면 ‘명품은 디테일에 강하다’는 말이 새삼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