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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문화/문화이론 > 문화사
· ISBN : 9791194232094
· 쪽수 : 324쪽
· 출판일 : 2024-12-21
책 소개
목차
후속판 서문
초판 서문
1장 기호의 제국
사물이라는 기호
아인스월드라는 세계
글씨의 제국
삭막미
X의 세계
2장 밀도와 고도
밀도의 사물들
도시 경관이 된 북한산
롯데타워 지우기
벚꽃의 추억
살풍경
시간의 도시
해양도시의 아이러니
3장 콘크리트에도 격이 있다
콘크리트, 신전이 되다
크리트, 자연이 되다
콘크리트, 전쟁이 되다
콘크리트, 빛이 되다
에필로그
저자소개
책속에서
나는 한국의 도시 기호들을 사진 찍음으로써 거리를 둔다. 수잔 손탁이 ‘참여하는 사람은 기록하지 않고, 기록하는 사람은 참여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나는 사진 찍음으로써 도시의 기호 세계에 참여하지 않는다. 그 대신 그것들에 대해 안전한 거리를 두고 그 혼잡의 힘을 즐긴다. 카메라의 망원렌즈는 나에게 기호로부터 거리를 둘 수 있는 물리적이고 시각적인 기회를 제공한다. 아주 멀리서 기호들이 중첩돼 있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생전 처음 한국의 도시에 와 본 사람처럼 놀란다. 그리고 놀라움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듯이 카메라의 셔터를 누른다.
도시에서 마주치는 기호들의 의미가 다 해독이 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것은 원래부터 난해해서, 어떤 것은 빛이 묘해서, 어떤 것은 평소에 보지 않던 관점에서 봐서, 어떤 것은 그저 그 순간이 묘해서 해독의 그물을 빠져나간다. 매일 지나다니며 보던 같은 전봇대도 기분에 따라 외계인이 타고 온 우주선으로 보일 수도 있다. 사람들은 어떤 기호가 해독이 안 되면 당혹해한다. 하지만 바로 그때가 소중한 순간이다. 목적과 기능에 묶여 있던 사물들이 족쇄를 풀어 버리고 자기 얘기를 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요즘 신유물론이라는 철학이 대유행인데, 엄청난 얘기를 하는 것 같지만 사실 간단하다. 사물의 얘기를 듣자는 것 아닌가.
‘초조한 도시’는 망원렌즈의 눈으로 도시를 재구성해서 본다. 그것은 수사법으로 치면 과장법인데, ‘빌딩들이 많다’고 말하는 식이 아니라, ‘빌딩들이 진짜로 너무 많아서 숨이 콱 막혀 죽을 것만 같다’고 말하는 식이다. 그런데 이 세상은 항상 객관적인 중립으로 되어 있지 않고, 언제나 어느 쪽으론가 치우쳐 있으므로, 과장식 수사법은 어떤 면은 놓치게 되지만 또 다른 면은 확실하게 보여 준다. ‘초조한 도시’가 과장해서 보여 주는 것은 도시의 밀도와 고도, 그것들이 교차해서 나타나는 리듬감, 나아가 도시의 위태로운 에너지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언젠가 다 폭발해서 모두가 분해돼 버릴 것 같은 그런 에너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