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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예술/대중문화 > 사진 > 사진집
· ISBN : 9791189478070
· 쪽수 : 120쪽
· 출판일 : 2021-11-03
책 소개
리뷰
책속에서
먹이를 빼앗기지 않으려 사력을 다하는 개들과 달리 찡찡이는 개들이 으르렁거리고 접근하면 먹고 있던 것들도 내줬다. 다른 개들에게 물리고 찢기고 상처 난 흔적들이 그의 얼굴에 남아 인상을 일그러뜨렸다. 그 외모 탓에 등산객은 그를 마주치면 소리를 질렀다. 찡찡이는 그때마다 아기가 우는 것 같은 칭얼거리는 소리를 냈다.
찡찡이는 언제나 혼자 움직였다. 어쩌면 정착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한 듯했다. 먹이를 구하러 다니는 시간 외에는 털을 가다듬고 햇볕을 쬐며 시간을 보냈다. 정오가 되어 날이 뜨거워지면 자신이 파놓은 굴로 들어가 더위를 피했다. - 권도연, 「찡찡이」
가을이 되고 이틀 연속 비가 내리더니 날이 개었다. 산꼭대기가 따뜻해지자, 검은입이 새끼를 데리고 완만한 오솔길을 따라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 생후 3개월이 지난 새끼는 체격이 벌써 엄마 반 정도나 되었다. 새끼의 등에는 짓무른 피부병이 보였다. 평안한 삶을 기원하며 ‘가뭄에 내리는 비’라는 의미의 단비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단비가 나뭇잎을 밟고 지나갈 때면 가볍게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단비는 텃밭 여기저기를 오가며 뛰어다녔다. 녀석에게는 이곳이 유년 세계의 전부일 것이다.
이른 아침, 검은입과 단비가 등산로를 향해 걸어갔다. 낯선 깡통을 들여다보느라 뒤처졌던 단비가 엄마를 막 따라가려던 참이었다. 갑자기 앞에서 울부짖는 소리가 났다. 단비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반대쪽으로 내달렸다. 바위굴로 돌아온 단비는 몸을 덜덜 떨었다. 검은입은 돌아오지 않았다.
검은입의 마지막을 상상해본다. 누군가 봉우리까지 올라 온 일, 마취총을 맞고 시야가 시꺼멓게 된 채 수풀 속으로 도망친 일, 흰다리와 함께 동물보호소에서 눈을 뜬 일, 며칠이 지난 후 다른 개들이 주사를 맞고 처음에는 하나둘, 차차 한꺼번에 기침하고 냄새 고약한 콧물을 흘리고 턱과 다리를 떨며 쓰러진 일, 몸의 온기가 싹 걷힌 일, 그리고 내 아가. - 권도연, 「검은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