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세계의 소설 > 동유럽소설
· ISBN : 9791199653009
· 쪽수 : 376쪽
· 출판일 : 2026-02-10
책 소개
목차
상실
작가의 말
리뷰
책속에서
이 모든 일이 시작되기 전에 알리치아는 사람이었다.
누군가였다.
직장이 있었고, 지인이 있었다. 그녀의 낭랑한 목소리가 방안에 울리고, 벽에 부딪히고, 창문에서 방향을 돌려 메아리가 되어 돌아오곤 했다. 그리고 사람들은—원하든 원하지 않든—귀를 기울였다. 가끔은 한참 동안 가만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상대가 끙끙거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런 기운을 가지고 있었다. 독일어 선생님 조금, 경찰관 조금, 그리고 심리학자 조금. 왜냐하면 잘 들어줄 줄도 알았기 때문이다.
매니시 스타일로 매끈하게 잘 다듬은 머리 모양은 미용실에서 방금 나온 것 같았고, 입을 전혀 열지 않았는데도 그녀의 기척이 들렸다. 높은 장화가 포석을 때리는 소리, 뒷굽이 만들어내는 일정한 리듬. 지나치게 빠르지 않으면서 어딘가 위엄이 있는 박자였다. 왜냐하면 아주 급할 때도 뛰는 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기다려줄 것이다, 언제나 기다리니까.
서두르느라 숨을 헐떡거리고, 머리카락이 흐트러지고—이 모든 것이 어떤 의미에서든 약함을 드러내는, 즉 경우에 맞지 않는 옷, 지워진 매니큐어, 구두와 색깔이 똑같은 가방, 피부색에 맞지 않는 립스틱 같은 것이다. 그녀는 약함을 허용할 수 없었다.—아니, 허용하고 싶지 않았다.
부모님과 헤어지는 것은 어쩌면 견딜 수 있는 일처럼 보인다. 그냥 짧은 순간일 뿐이니까 말이다. 막상 가서 생활해 보니 자신이 채소를 얼마나 먹는지, 배구연습을 하러 가는지 아무도 매일같이 지켜보지 않고, 수업은 8시 50분에 시작하는데 아침 7시에 준비하라고 깨우는 사람이 없어서 지내기가 훨씬 더 좋을지도 모른다.
프라이다는 전혀 다른 문제였다. 개와는 영상통화로 이야기할 수도 없고, 개가 슬픔에 빠졌을 때 문자메시지를 보내지도 않는다. 보러 갈 수는 있겠지만 차가 없으면 힘들 것이다. 버스 노선 하나가 몇 시간마다 한 번씩 다니는 게 끝이다. 그렇다면 학교 수업시간 중에 프라이다를 보러 가야 할 것이다. 이건 어쩔 수가 없다. 학교가 마리안나 없이 알아서 할 일이다.
택시 승강장 쪽으로 가서 택시 타고 시내로 들어간 뒤 거기서 집까지 버스 타려고 했는데, 유리 너머의 뭔가 때문에 걸음이 느려지다가 결국 서버리고 말았다. 외투 앞섶을 열어젖힌 여자가 담배를 너무 빨리 피워서 마치 먹는 것처럼 보였다. 머리카락을 머리 한가운데 동그랗게 묶었고, 신발은 온통 진흙투성이였다. 불안한 얼굴로 게걸스럽게 담배 피우는 모습이 마치 수술실 앞에서 수술 결과를 기다리는 보호자 같아 보였다. 나는 그 여자를 멍하니 바라보면서 이해하려 애썼다.
마치 선 채로 잠들었던 듯 나는 정신을 차리려 애쓴다. 여행가방, 핸드백, 작은 가방, 휴대폰, 여권, 전부 다 있었다. 숨을 고르면서 생각에 잠겼다. 택시가 어느 쪽이었더라? 택시 말고 버스를 탈까? 더 싼데. 시내 교통상황이 그리 나쁘지 않으니까. 언젠가 버스 탔던 게 기억이 있었다. 그게 언제였더라. 왜 공항에서 집으로 갔지?
나는 넋을 잃고 걷다가 여행가방이 화분에 부딪히자 그제야 몸을 돌렸다. 다시 보고서야 처음부터 명백했던 것을, 매우 당연했던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여자는 시어머니 알리치아였다. 그리고 바로 지금 나를 알아보았지만 내 쪽으로 오지 않고 담배를 또 하나 피워 물고는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그냥 바라보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