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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한국사 일반
· ISBN : 9788933705667
· 쪽수 : 404쪽
책 소개
목차
한국의 독자들에게
서장 젠더사에서의 물음
1. 연구 과제와 젠더사의 방법론
2. 선행 연구와 이 책의 분석시각
제1장 식민지 조선의 초등교육과 새로운 시기구분론
1. 식민지 시기 초등교육기관의 특징
2. 보통학교 취학동향에 따른 남녀별 시기구분론
제2장 ‘교육의 학교화’와 취학구조의 젠더화 과정
1. 보통학교 취학을 둘러싼 상황과 젠더편차
2. 취학 규정 요인―민족?계급?젠더
제3장 ‘취학의 제도화’와 조선인 남성의 취학 요인
1. 제2차 보통학교 취학열과 ‘취학의 제도화’
2. 보통학교를 둘러싼 계급?민족 요인의 변화
3. 보통학교를 둘러싼 동상이몽
제4장 조선인 여성의 보통학교 취학
1. 조선인 여성의 보통학교 취학열과 출신계급
2. 젠더 요인의 변화Ⅰ―학교교육을 둘러싼 젠더규범의 변용
3. 젠더 요인의 변화Ⅱ―결혼을 통한 계층 내 이동
4. 젠더 요인의 변화Ⅲ―총독부의 여성교육확충정책
5. 서당.사설학술강습회 취학과 젠더
'소괄' 제Ⅱ기 여성취학 급증에 관한 가설
제5장 조선인 여성의 보통학교 불취학
1. 조선인 여성의 보통학교 불취학 구축
2. 생애사에 나타나는 조선인 여성의 불취학
종장 식민지교육과 젠더
1. 결론
2. 이 책의 의의
참고문헌
부표
책을 마치며
옮긴이의 글
그림, 표 차례
찾아보기
책속에서
젠더사 방법론의 핵심은 종래의 여성사와 같은 여성의 ‘실태 해명’이 아니라 ‘남성, 여성’이라는 성별 구분과 서열화, 여성 간 혹은 남성 간의 서열화, 또는 ‘여성이라는 젠더의 ’구축 과정 분석‘에 있으므로 젠더를 분석축의 중심에 두고 민족이나 계급과의 연관 속에서 연구 대상을 분석하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으며, 이것이 이 글의 방법론이다.
따라서 필자는 이 글의 성격을 ‘젠더사 연구’라고 규정한다. 이 글의 지향점은 식민지 시기 보통학교 취학구조의 젠더화 과정을 분석하면서 동시에 젠더화된 취학구조를 분석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구축 과정의 역사성을 분석함으로써 그 가변성을 드러내는 것, 페미니즘 역사학의 입장에서 식민지교육사를 젠더화하고 ‘역사를 다시 쓰는’ 영위營爲에 미력하나마 공헌하는 데 있다.
- 31쪽
조선인들이 학교에 원한 여성교육이란 첫째, 조선인 남성과 다른 교육내용, 즉 “졸업 후 가정생활을 꾸리는” 것을 전제로 삼은 여성특성교육이었으며 둘째, 그것은 일본인 여성과 다른 교육내용으로 조선의 고유한 생활양식과 문화에 알맞은 가사 능력과 부도, 즉 기존의 젠더규범을 이어받는 여성의 육성이었다. 그렇지만 천황에게 헌신하는 요시다 쇼인의 어머니와 같은 일본인 여성을 이상적인 여성상으로 상정하고 그것과 동화하기를 요구한 보통학교 여성교육의 내용은 조선민족이 이어받아온 (그렇게 상정된) 유교적 젠더규범과 전혀 다른 것으로 여겨졌다.
이처럼 여성교육을 둘러싸고 식민지권력과 조선사회?가정의 가부장권력은 각각의 민족주의를 배경으로 조선인 남성취학의 경우와 다른 규범(조선사회)과 정책이념(총독부)을 전개하였다. 이와 동시에 양쪽의 젠더규범이 서로 갈등하면서 조선인 여성의 취학에 대해 부정적으로 작용하여 학교교육에서 여성을 배제하게 되면서 여성교육 부진 상황을 만들어냈다. 바꿔 말해 제Ⅰ기에는 식민지권력과 가부장권력의 의도하지 않은 공범관계가 조선인 여성들의 불취학을 가져왔다고 할 수 있다.
- 128쪽
일본의 식민지배를 겪은 조선인들에게 조선총독부가 설립한 초등교육기관인 보통학교에 ‘취학’하는 것은 주어진 것이 아니라 ‘획득’해야 하는 것이었다. 종주국 일본과 달리 식민지 교육정책 아래 놓여 있던 조선에서는 원칙적으로 보통학교 수업료를 징수하지 않는 의무교육제도가 시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취학의 가부는 조선인 내부의 계급, 젠더gender 등의 차이에 의해서도 좌우되었다. 이것을 전제로 문제 삼아야 할 것은 식민지 시기 동안 보통학교가 증가한 것은 사실이지만 학교에 입학하지 않은, 이른바 ‘불취학不就學’이 오히려 일반적이었다는 점이다. 식민지배 말기인 1942년 당시에도 조선인 남성 3명 중 1명, 여성 3명 중 2명이 불취학이었다. 취학이 식민지 교육기관으로의 ‘포섭’이라면 불취학은 ‘배제’를 의미했다. 포섭과 더불어 배제 역시 식민지교육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한 측면이었다.
- 「머리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