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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서해 이기영 외

최서해 이기영 외

최서해, 한설야, 이기영, 조명희, 이익상, 송영 (지은이), 임규찬, 최원식, 진정석, 백지연 (엮은이)
창비
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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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서해 이기영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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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제목 : 최서해 이기영 외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전 한국소설
· ISBN : 9788936462147
· 쪽수 : 344쪽
· 출판일 : 2005-11-25

책 소개

4권은 식민지 시대의 신경향파.카프 계열의 참여문학을 주로 실었다.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식민지 현실을 고발한 최서해의 '탈출기', '홍염', 카프 최고의 문학적 성과를 이룬 작가로 평가받는 이기영의 '민촌', '서화' 등의 작품을 수록했다.

저자소개

최서해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01년 함북 성진군 임명면에서 빈농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본명은 학송(鶴松)으로 어려서 부친 혹은 서당을 통해서 한문 공부를 많이 했다. 1918년 간도로 들어가 유랑 생활을 시작해서 부두노동자·음식점 심부름꾼 등 최말단 생활을 전전했다. 1923년 봄에 간도에서 귀국하여 회령역에서 노동일을 했으며 이때부터 ‘서해(曙海)’라는 필명을 쓰기 시작했다. 춘원의 『무정』을 읽고 크게 감명받고 동경에 있는 춘원과 여러 차례 편지를 주고받았으며, 1924년 「토혈」, 「고국」으로 등단했다. 1925년에 조선문단사에 입사하여 중견 작가로 인정받기 시작했고, 김기진의 권유로 카프에 가입했다. 1927년에는 조선문예가협회의 간사직을 맡았으며 전 해에 휴간한 조선문단을 남진우가 인수하여 1월에 다시 입사하지만 4월에 또 실직했다. 위문 협착증을 앓던 그는 대수술 중에 과다 출혈로 1932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문학은 ‘체험문학’, ‘빈궁문학’, ‘저항문학’으로 규정된다. 몇 명의 엘리트의 눈으로 바라본 일부의 삶이 아니라 실제 체험을 통한 대다수의 극빈층의 생활상을 날카롭게 표현해 그들의 울분과 서러움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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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설야 (지은이)    정보 더보기
일제강점기 「그릇된 동경」, 「인조폭포」, 「황혼」 등을 저술한 소설가. 평론가. 본명은 병도(秉道). 함경남도 함흥 출생. 1919년 함흥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24년니혼대학(日本大學) 사회학과를 졸업하였다. 귀국 후 북청사립중학교(北靑私立中學校) 강사로 지내다, 1925년 단편소설 <그날 밤>(朝鮮文壇, 1925.1.)을 발표하면서 작가 활동을 시작하였다. 1927년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KAPF)에 가담하였으며, 1934년 극단 <신건설사>사건으로 투옥되었다가 집행유예로 석방되었다. 그 뒤 귀향하여 소설 창작에 전념하면서 많은 작품을 남겼다. 1940년 국민총력조선인연맹(國民總力朝鮮人聯盟) 등 단체 활동을 하였다. 1945년 광복 당시 이기영(李箕永)과 함께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을 조직하였다. 다음해인 1946년 북조선문학예술총동맹을 조직하여 북한공산당의 문화예술계의 주동적 구실을 담당하였다. 초기 김일성(金日成) 체제 아래에서는 문화선전상 등의 요직을 거쳤으나, 소련에서의 스탈린 격하 시기에 김일성 반대 세력에 동조하다가 1960년대 초기에 숙청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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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영 (지은이)    정보 더보기
일제강점기 「서화」, 「고향」 등을 저술한 소설가. 호는 민촌(民村). 충청남도 아산 출신. 1904년 어머니가 죽고 가난한 가운데 서당을 다니다가, 1907년 사립영진학교에 입학하여 1910년에 졸업하였다. 1918년에는 논산 영화여자고등학교에서 교원생활도 하고, 약 3년간 호서은행 천안지점에 근무하기도 하였다. 1922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세이소쿠영어학교[東京正則英語學校]를 고학으로 다녔다.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귀국한 뒤 창작에 몰두, 1924년 『개벽』 창간4주년기념 현상작품모집에 단편소설 「오빠의 비밀편지」가 당선되었다. 1925년에 조명희(趙明熙)의 알선으로 조선지광사(朝鮮之光社)에 취직하는 한편 카프(KAPF)에 가맹하였다. 1931년에는 카프에 대한 제1차 검거로 구속되었다가 이듬해 초에 집행유예로 석방되었다. 1945년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연맹의 창립에 주도적 역할을 하였으며, 월북 후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하였다. 월북 전의 작품 활동을 보면 단편소설 90여 편, 단행본 14권, 희곡 3편, 평론 40여 편으로 매우 활발한 문필 활동을 한 작가이다. 대표작으로는 1933년 5월 30일부터 7월 1일까지 『조선일보』에 연재한 「서화(鼠火)」와 1933년 11월 15일부터 1934년 9월 21일까지 『조선일보』에 연재한 「고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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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희 (지은이)    정보 더보기
포석(抱石) 조명희(趙明熙)는 1894년 8월10일 충북 진천군 진천읍 벽암리에서, 선비이며 학자인 아버지 조병행과 연일 정씨 어머니 사이에서 4남 2녀 중 막내아들로 태어난다. 자(字)는 경덕(景德), 호적명은 명희(明熙), 애칭은 칠석이었다. 네 살 때 부친인 조병행이 죽고 난 후, 조명희는 둘째 형 조경희 집에 머물며 어머니로부터 한글을 배우고, 서당에서 한자를 배우기도 했다. 진천소학교에 다니며 열네 살에 충북 서산에 사는 여흥 민씨 집안의 딸인 민식(閔植)과 혼인을 하게 된다. 1914년 한여름, 서울중앙고등보통학교 졸업반이었던 조명희는 북경사관학교로 떠나려다가 평양에서 둘째형 경희에게 잡혀 집으로 내려오게 되었다. 이 시기에 다양한 신소설을 읽었고, <홍루몽>, <삼국지> 등 많은 중국 소설도 접하게 된다. 특히 ≪매일신보≫에 연재되던 민우보 역의 ≪희무정(噫無情, 레미제라블)≫에 빠져 지냈으며, 이광수의 ≪무정≫ 등 근대 소설과 ≪태서문예신보≫, ≪창조≫, ≪삼광(三光)≫ 등 근대 잡지를 접하게 되면서 ‘문예’에 눈뜨게 된다. 1919년 3월 초, 3·1 만세 운동을 하다가 유치장에 갇히고 난 후, 조명희는 5년간의 고향 생활에서 벗어나 일본 도쿄로 가 도요대학 인도철학윤리학과에 입학한다. 경제적 사정과 언어 소통, 문화 차이의 어려움을 겪으며, 학비 문제로 고생하게 된다. 그런 와중에도 괴테를 읽고 타고르와 하이네를 읊었다. 친하게 지내던 극작가 김우진과 함께, 1920년 봄 도쿄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본격 근대극 연극 단체인 ‘극예술협회’를 창설한다. 1921년 여름에는 유학생과 노동자들의 모임인 동우회의 전국 순회 연극단의 공연 작품으로 조명희가 쓴 <김영일의 사>가 채택되어 크게 호평을 받았다. 이 연극 대본은 한국 근대 문학 최초의 창작 희곡으로 가난한 도쿄 유학생의 비극적 삶을 그린 조명희 자신의 자전적 작품이다. 친구들과 연극 운동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조명희는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학업을 중단하고 3년 반 만에 식민지 조선으로 돌아오게 된다. 귀국 다음 해에 상경해 조선일보 기자로 일하고, 노적(蘆笛)이라는 아명으로 시집 ≪봄 잔디밭 위에≫를 출간하게 된다. 일본에 가기 전 고향집에서 썼던 시들과 도쿄 유학 시절의 시들을 모은 이 시집은 근대 문학 사상 개인 창작 근대 시집으로서는 김억의 ≪해파리의 노래≫, 이학인의 ≪무궁화≫에 이어 세 번째에 해당한다. 1925년 8월에 KAPF-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 동맹에서 지도자적인 역할을 한 조명희는 ≪개벽≫에 <땅속으로>를 발표하면서, 소설가로서 새로운 문인 생활을 시작하고 1927년 7월 ≪조선지광≫에 단편 <낙동강>을 발표하면서 프로문학을 대표하는 선구적 작가가 된다. <낙동강>은 낙동강 어부의 손자이며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박성운(농업학교 졸업, 군청 농업 조수)이 3·1 독립운동을 하다가 옥에 갇히더니, 출옥한 이후에는 민족주의적 사회주의자로 변화해 나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그러나 조명희의 경성 생활은 일제 식민 통치 속의 숨 막히는 압박감과 불안감, 헤어날 길 없는 가난으로 점철되었다. 1928년 8월 조명희는 일제 경찰의 탄압으로 신변의 위협을 느끼며 소련으로 망명하게 된다.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그는 이전의 서정시와는 다른 분위기의 산문시 <짓밟힌 고려>를 ‘조생’이란 필명으로 세상에 발표하게 된다. 이 시는 일제에 대한 강한 저항 의지를 담고 민족 해방과 계급 투쟁을 과감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후 조명희는 조선인 육성촌에서 조선어 교사로 있으면서 문예를 지도하며, 동화극 <봄 나라>, 동요 <눈싸움>, <샘물>과 같은 작품들을 쓰게 된다. 1930년 동료 교사인 황명희와 재혼하고, 우수리스크로 이사해 조선사범전문학교에서 조선어문학을 강의하게 된다. 당시에 그가 쓴 시, 소설, 정론, 평론 등의 작품들은 소비에트 조선 문학의 방향성을 보여 주었다. 1934년에는 작가 파제예프 추천으로 소련작가동맹 맹원으로 가입했으며, 연해주의 한국신문 ≪선봉≫의 문예면 편집을 자문하게 된다. 이듬해 하바롭스크로 이사한 후 조선사범대학의 교수로 재직한다. ≪선봉≫ 신문에 문예란을 만들고, 자신의 한글 및 문학 교육을 받아 창작된 한글 문학 작품들을 모은 ≪로력자의 조국≫을 출간하기도 했다. 당시 조명희는 블라디보스토크나 우수리스크 인근 연해주 또는 빨치산스크 등지에서 많은 제자들을 문학가로 길러 냈다. 1937년 장편소설 ≪만주 빨치산≫ 집필 도중 소련 내무인민위원회 기관원에 연행되고, 가족은 스탈린의 ‘고려인 시베리아 강제 이주’ 정책으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하게 된다. ≪만주 빨치산≫의 내용은 중국 동북 지방에서 조국(조선)의 자유를 위해서 싸우는 애국지사들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이듬해에 소련 당국으로부터 일제의 첩자라는 죄목으로 사형 선고를 받고 하바롭스크 현지 주르사 감옥에서 처형당한다. 1956년 스탈린 사후 흐루시초프 정권 때, 소련 극동군관구 군법회의는 1938년 4월 15일의 결정을 파기, 무혐의로 처리하고 조명희를 복권시켰다. 1959년 12월 10일에 조명희문학유산위원회에서 편찬한 ≪조명희 선집≫이 소련과학원 동방도서출판사에서 양장본으로 출간되었다. 1988년 한국 정부가 월북납북작가 작품을 해금 조치함으로써, 조명희에 대한 문학적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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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상 (지은이)    정보 더보기
호는 성해. 전주에서 태어나 일본 니혼대학을 졸업했다. 이후 파스큘라를 조직했으며 카프 발기인으로도 참여했다. 「개벽」에 평론을 발표하며 문단에 나온 후 '어촌', '젊은 교사' 등의 작품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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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 (지은이)    정보 더보기
본명은 무현(武鉉)으로 1903년 5월 24일 서울 서대문 오궁골에서 태어났다. 송동양, 수양산인, 앵봉산인, 석파 등 필명을 사용했다. 배재고보 재학 당시 3·1 운동을 체험한 뒤로 학교를 중퇴하고 사회운동에 투신했다. 1922년 이적효, 이호, 최승일, 김영팔 등과 프롤레타리아 문예 단체인 염군사를 조직했으며 기관지 ≪염군≫을 기획했다. 1923년 무렵 일본으로 건너가 노동자 생활을 하면서 경험의 폭을 넓히고 귀국했다. 1925년 7월 ≪개벽≫ 현상 공모에 <늘어가는 무리>가 당선하면서 등단했다. 이후 1935년까지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KAPF)에 참여, 아동 문예 운동과 연극 운동, 소설 창작에 힘썼다. 카프가 해산한 뒤 1937년에는 동양극장 문예부원으로 활동하며 대중극 대본을 창작했다. 해방 이후 월북해 1946년 작가동맹상무위원을 시작으로 조선연극인동맹위원장, 2∼4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영화 촬영소 소장 등 요직을 거쳤다. 대표작으로는 소설 <용광로>, <석공조합대표> 등과 희곡 <호신술>, <황금산>, <역사>, <백두산은 어디서나 보인다> 등이 있다. 정신 질환을 앓다가 1978년, 76세를 일기로 사망했다고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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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찬 (엮은이)    정보 더보기
1957년 전라남도 보성에서 태어났다. 성균관대 독문과와 동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하였다. 1988년 「실천문학」에 평론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문학박사이며 현재 문학평론가,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 평론집 <왔던길, 가는 길 사이에서>, <한국 근대소설의 이념과 체계>, <일본 프로문학과 한국문학>(편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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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식 (엮은이)    정보 더보기
1949년 인천에서 태어나 197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문학평론으로 등단했다. 계간 『창작과비평』 편집주간, 인천문화재단 대표이사, 한국작가회의 이사장을 역임하고 현재 인하대 명예교수이다. 평론집 『민족문학의 논리』 『생산적 대화를 위하여』 『문학의 귀환』 『제국 이후의 동아시아』 『소수자의 옹호』 『문학과 진보』, 연구서 『한국 근대소설사론』 『한국 근대문학을 찾아서』 『한국계몽주 의문학사론』 『문학』 『이순신을 찾아서』 『기억의 연금술』 등이 있다. 대산문학상, 임화문학예술상, 용재학술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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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석 (엮은이)    정보 더보기
서울 출생.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사 과정을 졸업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성공회대학교 강사이다. 저서로 『90년대 문학, 어떻게 볼 것인가』(공저), 『20세기 한국소설』(공편), 『최명익 소설 선집』(공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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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연 (엮은이)    정보 더보기
1996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문학 평론 활동을 시작했다. 서울여자대학교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다. 18회 젊은평론가상을 수상했다. 평론집 『미로 속을 질주하는 문학』, 『사소한 이야기의 자유』, 공저서 『90년대 문학 어떻게 볼 것인가』, 『페미니즘 문학비평』, 『한국문학과 민주주의』, 『전후 동아시아 여성서사는 어떻게 만날까』 공편서 『20세기 한국소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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