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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사상가/인문학자
· ISBN : 9788952769893
· 쪽수 : 343쪽
책 소개
목차
들어가는 말_20세기 위대한 지성을 만나다
Part1 다시 경험으로
|01| 앙리 베르그송_현실과의 완전한 접촉을 추구하다
|02| 윌리엄 제임스_모든 진리는 상대적이다
|03| 지그문트 프로이트_지식과 진리를 구분하기에 이르다
Part2 과학과 철학의 동행 혹은 배신
|04| 버트런드 러셀_진리에 대한 욕구를 다양한 형태로 구현하다
|05| 에드문트 후설_위기의 과학을 가까스로 구해내다
|06| 마르틴 하이데거_존재의 의미에 대해 밝히려 하다
Part3 소리 이상의 언어
|07|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_어떻게 사고를 ‘청소’한다는 생각을 했을까?
|08| 한나 아렌트_폐허 속에서 국가 재건의 방법을 연구하다
|09| 윌러드 밴 오먼 콰인_철학을 과학적 사고방식의 한 요소로 발전시키다
Part4 자유와 부조리
|10| 장 폴 사르트르_개인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불가능한 목표에 도전하다
|11| 모리스 메를로퐁티_진리란 완전히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다
|12| 알베르 카뮈_반항하는 인간에 대한 믿음을 굽히지 않다
Part5 진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13| 마하트마 간디_도덕적 투쟁을 재발견하다
|14| 루이 알튀세르_마르크스와 구조주의를 연결시키려 하다
|15| 클로드 레비스트로스_인간의 유일한 진리라는 사고를 해체시키다
Part6 인간의 자취가 보이지 않을 때
|16| 질 들뢰즈_‘동물-되기’와 속도의 쾌락을 만들어내다
|17| 미셸 푸코_광기와 이성을 연구하다
|18| 에마뉘엘 레비나스_타인에게서 윤리의 원천을 발견하다
Part7 끝나지 않는 논쟁
|19| 자크 데리다_질문에 거듭 질문을 던지다
|20| 위르겐 하버마스_이성의 소멸을 그냥 두고 볼 수는 없다
맺는말_진리를 향한 모험은 계속된다
리뷰
책속에서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 행위 속에도 자리하고 있었던 이 놀라움의 위력은 20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삼라만상은 왜 이런 식 혹은 저런 식으로 존재하는 것일까?” 이러한 의문은 수없이 다양한 형태를 통해 현대 철학 속에서 여전히 살아 있다.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에서 나치 전범 아이히만의 재판을 보고, 그의 ‘평범함’에 놀란다. 이 사람이 잔혹한 살인마라고? 그는 평범하기 짝이 없는 아무개 씨, 애통하게도 지극히 별 볼 일 없는 사람일 뿐이었다. 이 같은 대조는 놀라움에 뒤이어 뭔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사실 사고한다는 것 자체는 절대 사라질 수 없는 일이다. 이 세상의 부조리 앞에서도 성찰은 계속된다. 철학자들은 언제나 우리의 오류와 우리의 막다른 골목과 우리의 공포까지도 이해하려고 한다. 그 어떤 고립무원 속에서도, 그 어떤 악조건 속에서도 철학은 알고자 하는 욕망을 멈추지 않는다.
프로이트의 업적들 중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분명 무의식의 발견이다. 단, 철학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인간 정신 속에는 무의식이 존재한다”는 주장 속에 진정으로 새로운 점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조건에서 그러하다. 이 주장은 이후에 정신분석학의 기반과 그 이론적 구상을 형성하게 되는 발견이다. 그로부터 100년 뒤 ‘무의식적 사고’라는 말을 일상적으로 듣고 사는 우리로서는, 이러한 주장이 당시 철학자들에게 얼마나 기이하고 물의를 일으키는 발언인지 가늠할 수가 없다.
프로이트가 등장하기 이전에도 무의식이라는 말은 있었지만, ‘의식의 부재’, ‘사고의 부재’라는 의미 외에 다른 뜻은 없었다. 그저 단순히 정신을 잃고 쓰러진 사람을 ‘무의식적’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이 사람은 온전한 정신을 잃고, 주변과의 접촉이 완전히 차단된 사람이다. 생명이 없는 물질도 무의식적이다. 나무 조각은 모든 형태의 의식과 사고가 부재한다. 차원을 달리하여, 도덕심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이 경우, 책임감이 없고 자기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을 ‘무의식적’이라고 판단했다.
옛날에 한 마을이 있었다. 그 마을 남자들 중 어떤 이들은 손수 면도를 하고, 어떤 이들은 이발소를 이용했다. 즉 손수 면도하는 사람의 집단, 이발소를 이용하는 사람의 집단이라는 두 개의 서로 다른 집합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이발소의 이발사는 이 둘 중 어느 집합에 포함될까? 이발사는 손수 면도를 하기 때문에 첫 번째 집합에 속한다. 하지만 자신이 이발사이기 때문에 손수 면도하는 행위는 이발사에게 면도를 시키는 행위이기도 하다. 즉 그는 두 번째 집합에도 속한다. 이런 것이 바로 논리적 난관이다.
이 이야기는 1903년, 러셀이 발견한 가장 단순한 형태의 역설에 속한다. 당시는 특히 독일의 수학자 고틀로프 프레게Gottlob Frege의 이론에 힘입어 집합론이 그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 시기였다. 그런 의미에서 논리학에 대한 프레게의 기여도 역시 상당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프레게는 위와 같은 난관을 예상하지 못했다. 러셀은 프레게에게 편지를 보내 이 같은 역설을 제기했다. 이는 당시 수학자들 이 구축하기 시작한 논리체계를 완전히 뒤흔드는 모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