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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판타지/환상문학 > 외국판타지/환상소설
· ISBN : 9788959525997
· 쪽수 : 432쪽
책 소개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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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누구도 이런 건 예상하지 못했을 거예요."
나는 성질이 났다. 물론 어머니나 라비아한테 화가 난 건 아니었다. 화가 난 대상은 따로 있었다. 독단으로 떠나버린 아버지, 그리고 우리의 삶을 이렇게 바꿔놓은 운명이었다.
"바예크, 조금만 더 생각해보자꾸나. 그게 엄마가 바라는 전부야. 오늘 밤에 고민을 더 해보고 아침까지도 떠나고 싶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면 그때는 네 길을 막지 않으마."
어머니가 씁쓸히 웃으며 말했다.
그날 밤 늦게 침대에 누워 잠을 이루지 못한 채 밤의 고요에 귀를 기울이고 있을 때, 어머니가 문간에 모습을 드러냈다.
"네 한숨 소리가 신전까지 들리겠다. 마음이 바뀌지 않은 거지?"
어머니가 조용히 물었다. 그건 질문이라기보다 담담한 서술에 가까웠다.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지금 바로 가는 게 낫겠지. 덥지도 않고 시와가 잠들어 있을 때, 내가 마음을 바꿔 먹기 전에 말이야."
어머니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러고는 여행 가방을 내게 건넸다. 그 안에 뭐가 들어 있을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물을 담을 수 있는 부대와 사냥을 할 수 있게 되기 전까지 내 배를 든든히 채워줄 충분한 양의 음식이 들었을 터였다.
"어머니 마음이 바뀐다 해도 달라지는 건 없을 거예요. 전 이미 결심했으니까요."
"그래, 안다, 알아. 넌 네 아버지만큼이나 고집이 세니까."
어머니가 날 잠시 쏘아보았다. 내게 고집을 물려준 건 아버지뿐만이 아님을 지적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아야에게 이야기해야 할까요? 아야가 이해해줄까요?"
"이해해줄 거다."
내 물음에 어머니가 희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나의 여정을 걱정하는 것이 분명했지만 아야를 마음에 들어하신다는 것이 느껴졌다.
"작별 인사를 하는 게 힘들겠니?"
"불가능할 거예요."
"어쨌거나 네가 내린 결정이야."
어머니는 방을 나가셨고 나는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가슴에 벨트를 매고, 허리에는 주머니를 찬 뒤 거기에 작은 동전 주머니를 넣었다. 지금까지 온갖 잔심부름을 하고 마을에서 일을 하며 모은 돈, 지금껏 내가 번 돈이 모두 그 주머니에 들어 있었다. 이번 여정에 이 돈만으로 충분하기를 빌었다.
어머니와 작별 인사를 나눴다. 어머니가 나를 꽉 끌어안았다가 놓아주고는 문밖으로 밀어내다시피 나를 내보내고는 눈물을 글썽이며 돌아섰다. 어느새 나는 사람 한 명 없는 조용한 거리에 나와 있었다. 오아시스 위로 낮게 걸린 달만이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