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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영미소설
· ISBN : 9788962606966
· 쪽수 : 732쪽
· 출판일 : 2014-12-24
책 소개
책속에서
인간은 누구나 남에게 말할 수 없는 비밀을 간직한 불가사의한 존재라고 생각하면 놀라울 뿐이다. 한밤중에 큰 도시로 들어서면 이러한 생각에 깊이 빠져들기 마련이다. 어둠에 휩싸여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들은 저마다 비밀을 간직하고, 방방마다 비밀을 감추고, 그 안에 고동치는 수십만 개의 심장도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까지 비밀을 숨기며 살아간다. 무시무시한 일, 심지어 죽음조차도 그렇다. 죽음이 찾아오면 그동안 아끼던 삶이라는 책의 책장을 넘길 수도 없고 제때 모두 읽겠다는 헛된 희망을 품을 수도 없다. 찰나의 빛이 들어 감추어진 보석과 다른 값진 것들을 어렴풋이 보여주었던 삶의 깊디깊은 바닷속을 더 이상 들여다볼 수 없다. 고작 한 쪽을 읽었을 뿐인데 책은 순식간에 영원히 닫히고 만다. 수면 위로 빛이 드리우면 바다는 영원히 얼어붙고 나는 영문을 모른 채 바닷가에 서 있을 것이다. 친구도 이웃도, 내가 목숨을 다해 사랑한 연인도 모두 죽는다. 죽음은 모두가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가슴에 간직하고 있는 비밀을 영원한 수수께끼로 남긴다. 내가 지나치는 이 도시의 묘지에 잠든 자 한 명의 은밀한 속내가, 살아 바삐 움직이는 많은 사람보다 더욱 큰 수수께끼가 아닐까? 아니면 그들에게는 오히려 내가 수수께끼일까?
추위와 더러움, 질병, 무지, 가난은 성스러운 존재를 섬기는 귀족들이었다. 모두 엄청난 권력을 지니고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가난이 가장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다. 끔찍한 기계에 빨려 들어가 갈리고 또 갈린 것 같은 몰골의 사람들이 모퉁이마다 몸을 떨고 있었고 문마다 들락날락했으며 창문마다 내다보고 있었고 바람에 흔들리는 모든 자취마다 옷이 펄럭였다. 그들을 갈아버린 기계는 젊은이를 노인으로 만들었다. 아이들의 얼굴이 늙어버렸고 목소리는 거칠어졌다. 아이들과 어른들의 얼굴에 세월이 남긴 깊은 주름과 새로 생긴 주름에는 한숨과 굶주림이 새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