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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사회학 > 사회학 일반
· ISBN : 9788964621011
· 쪽수 : 584쪽
· 출판일 : 2018-06-04
책 소개
목차
감사의 말
한국어판 서문
제1장 서론: 복수의 여신에서 자비의 여신으로
제2장 분노: 나약함, 갚아주기, 지위 격하
1. 분노: 잃어버린 고리
2. 분노: 인지, 느낌, 에우다이모니즘
3. 분노의 요소
4. 분노와 피해 갚아주기
5. 세 가지 길: 이행
6. 합리적 감정으로서의 이행-분노: 분노의 도구적 역할
7. 신의 분노
8. 분노와 젠더
9. 분노와는 다른 ‘반응적 태도’: 감사, 슬픔, 혐오, 증오, 경멸, 시기
10. 분노를 지키는 문지기: 평온한 성품
제3장 용서: 계보학적 탐구
1. 용서와 계보학
2. 유대교의 테슈바: 작위 및 부작위에 관한 점수 매기기
3. 기독교의 교환적 용서: 내면세계의 점수 매기기
4. 무조건적 용서
5. 반대편 갈래: 잃어버렸다 되찾은 아들, 말러가 말하는 사랑의 종교
6. 유대교 전통의 소수의견
7. 인간의 취약성 인정하기?
부록: <진노의 날>
제4장 친밀한 관계: 분노의 함정
1. 취약성과 깊이
2. 친밀성과 신뢰
3. 잘못된 사회적 가치관: 망신주기와 통제
4. 자녀에 대한 부모의 분노: 잃어버렸다 되찾은 딸?
5. 부모에 대한 자녀의 분노
6. 감사와 상호성
7. 연인과 배우자: 긴장
8. 연인과 배우자: 배신, 결별
9. 자신에 대한 분노
10. 가족관계에 관한 법
제5장 중간 영역: 스토아주의로 충분하다
1. 매일매일 분노
2. 중간 영역에 관한 스토아주의자들의 주장
3. 일상적 상호작용에서 나타나는, 실수로 엉뚱한 사람 탓하기와 편파적으로 평가하기
4. 중간 영역의 중간: 직장동료와 지인들
5. 무상의 감사
6. 복지에 대한 침해: 법으로 넘기기
7. 평온한 성품
제6장 정치적 영역: 일상에서의 정의
1. 에우메니데스
2. 이번에도, 왜곡된 사회적 가치
3. 부당한 행위와 법의 통치: 보복이라는 과제, 교화라는 과제
4. 비-분노와 형법
5. 자비: 사후조치를 사전조치와 연결하기
제7장 정치적 영역: 혁명적 정의
1. 고귀한 분노?
2. 이행의 이야기: 페이턴의 『울어라, 사랑하는 조국이여』
3. 혁명적 비-분노: 이론과 실천
4. 만델라의 이상한 아량
5. 용서 없이는 미래도 없다?
제8장 결론: 세상의 눈
부록 A: 감정과 『생각의 격변』 부록 B: 분노와 비난 부록 C: 분노와 그 종류
옮긴이의 말│후주│참고문헌│찾아보기
리뷰
책속에서
제 관점에서 보면, 분노는 지위에만 강박적으로 집착하지 않고 처음 분노가 일어나게 된 계기의 가치를 존중하는 한 적절한 감정이 될 수 있습니다. 같은 가치에 초점을 맞추는 사랑과 슬픔은 전적으로 적절한 경우가 많고요. 분노가 문제적인 이유는 피해를 갚아주겠다는 소망 때문입니다. 앞서도 살펴보았듯 이 소망은 분노라는 개념에 내포되어 있죠(이행-분노라는 경계선상의 드문 사례를 제외하면 말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처음에는 분노가 사람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한 방편이 되어준다는 게 의심의 여지 없는 사실입니다. 분노라는 감정의 강렬함과 거기에 깃들어 있는 인과응보의 마법적 공상은 분노하지 않는 한 아예 아무런 행위를 하지 않았을 법한 사람들도 계속 움직이게 만드는 힘이 됩니다(분노라는 신호가 없으면 부당행위의 존재나 그 규모를 눈치 채지 못하는 사람들한테도 마찬가지고요). 세상에는 사랑만으로도 충분히 해결되는 일이 많지만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니까요. 하지만 일단 움직이기 시작한 순간부터는 분노가 던지는 미끼를 물고 공상적 응징으로까지 나아가지 않는 게 좋습니다.
그러나 혐오와 분노에는 공통점도 대단히 많습니다. 분노가 지위에 초점을 맞춘다면요. 이행을 향해 가는 분노는 이성적 분노라고 부를 수도 있으며, 악행에 초점을 맞추어 사회적 선을 증진시키는 방식으로 잘못을 시정하려 합니다. 반면 지위에 초점을 두는 분노는 ‘지위의 격하’ 혹은 자아가 입은 피해에 반응하여, 균형을 바로잡기 위해 (가해자라고 생각되는) 사람을 약화시키거나 그 지위를 떨어뜨리고자 합니다(그 사람이 한 행동이 아니라 사람 자체를 대상으로 삼는다는 점에 주목하십시오). 이런 분노는 매우 흔한 것으로 혐오와 가까운 곳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타인을 점액이 뚝뚝 흐르는 바퀴벌레나 딱정벌레라기보다는 악한으로 본다는 차이점은 있으나 그의 ‘지위 격하’를 소망하기에, 이런 분노는 결국 상대를 비천하고 저열한 존재로 표상하게 되죠. 이처럼 분노의 초점은 눈치 채지 못하는 사이 행위로부터 사람에게로 옮겨가고 투사적 혐오와 분노는 서로 떼어놓기가 매우 힘들어집니다.
하지만 어쩌면, 처음부터 본질적으로 종교적인 배경을 갖고 있던 용서의 몇 가지 특성은 그 체제의 핵심적 측면을 거부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사실 적절치 않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런 부적절성을 발견하면, 우리는 용서의 전통적 껍질을 버리고 그 알맹이만 취하는 게 정말 가능하냐는 질문에 적어도 회의적인 입장을 취하게 되죠. 그러나 용서를 우리가 숨 쉬는 공기 혹은 우리가 물고기였다면 헤엄쳐 다녔을 물처럼 자연스러운 것이라고만 계속해서 느끼면 이런 수준의 진지한 비판정신에는 절대 도달할 수 없습니다. 저는 용서에서의 교환성이라는 개념이 특정한 체제 내에서 발전되어 나온 것이며, 용서의 몇 가지 측면은 그런 체제로부터 떼어내도 살아남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과연 어떤 측면을 떼어내야 하는지, 그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지는 계속 탐구해봐야 할 문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