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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문화/역사기행 > 동서양 문화/역사기행
· ISBN : 9788965292791
· 쪽수 : 376쪽
· 출판일 : 2021-06-10
책 소개
목차
머리말
‘기억과 장소’ :
코리안의 역사적 트라우마와 공간의 의미 _김성민
1장 식민, 역사를 기억하는 방식들
<효창공원>, 기억들의 갈등 공간 _이병수
근대문화유산을 ‘기념’하는 <군산>에서 마주하는 ‘기억의 공간’ _이의진
<서대문형무소역사관>, ‘해방’되지 못한 담장 안의 역사들 _박솔지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일본군 ‘위안부’, ‘우리의 식민’을 넘어서 _박솔지
2장 이산, 망각된 기억과 성찰의 공간
외면되고 있는 일제 강제 동원의 현장, <일본 교토의 단바 망간기념관과 우키시마마루 순난자의 비> _이시종
<신한촌기념비, 우슈토베 고려인 초기 정착 기념비, 코르사코프 망향탑>, 그 비(碑)는 왜 거기 서 있을까? _유진아
<용정>, 항일의 기억과 흔적 _허명철
어서 오세요. 일본 <조선대학교>에 _서정인
<서울 대림동 차이나타운>, 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을 성찰할 수 있는 또 다른 공간 _박민철
3장 분단과 전쟁, 극한의 폭력과 억압된 기억들
<고지전>의 기억과 눈물의 피에타, “우리는 빨갱이랑 싸우는 게 아니고 전쟁이랑 싸우는 거야.” _박영균
포로의 이데올로기, 이데올로기의 포로,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 _김종곤
자기 국민을 공격하는 또 다른 전쟁, <화순 도암면>에서 만난 11사단 사건 _신기철
죽은 자에게 드리운 ‘적’과 ‘평화’의 그림자, 부산의 <유엔기념공원>과 파주의 <적군묘> _정진아
<교동도>, 이산의 한과 전쟁의 기억 _이기묘
4장 국가폭력, 저항의 공간과 민주주의·인권
<명동성당>, 화해와 치유를 위한 민주화의 성지 _도지인
5·18을 기억하는 두 공간, <광주관광호텔>과 <광주교도소> _김정한
남영동 <민주인권기념관>, 고문의 장소에서 인권을 지키는 기억의 장소로 _박성은
<제주4·3평화공원>, 미래로의 지향 또는 강요된 화해 _남경우
5장 역사적 트라우마, 치유로 기억하기
<섯알오름>, 예비검속 양민학살 현장에서 제주의 한(恨)을 마주하다 _김종군
아름다운 연대가 만들어낸 <우토로>의 도전 _김지은
<신망리를 만나다>, 신망리 프로젝트에서 찾은 치유의 길 _신희섭
<전쟁기념관>, 치유와 평화의 공간으로 _김정아
분단의 아픔과 남북을 오가는 물길, <오두산 통일전망대> _이기묘
<기억과 장소>를 만든 사람들
저자소개
책속에서
한반도의 역사적 트라우마의 치유는 바로 이렇게 ‘공간성의 회복’이라는 핵심적 원리로부터 시작될 필요가 있다. 한반도의 다양한 공간들, 나아가 한반도 주위의 코리안과 관련된 다양한 공간들에서는 앞서 말한 트라우마적 사건들, 그 사건이 남긴 후유증과 장애들, 그리고 그러한 상처를 극복하고자 하는 긍정적 욕망들이 ‘동시에’ 담겨 있다. 물론 그러한 공간들이 역사적 트라우마들을 증폭시키는 방식으로 형상화되거나 의미화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특히나 분단과 전쟁을 소재로 한 한반도의 여러 공간들은 그와 관련된 다양한 소재들과 융합하면서 상대방에 대해 적대감, 적대적인 우월성과 대결적인 배타성을 광범위하게 확산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반작용 역시 함께 이루어졌다. ‘자유와 평화’, ‘아픔에 대한 치유와 고통에 대한 공감’, ‘소외된 자들의 역사적 연대와 정의의 실현’과 같은 대안적 가치들을 내재한 공간들 역시 무수하게 생산되었다. 중요한 것은 그 공간을 둘러싼 우리들의 해석이었을 뿐이다.
전시관의 첫 화두는 ‘자유와 평화를 향한 80년(1908 ~1987)’이다. 경성감옥부터 서울구치소까지 이어지는 이 공간의 역사를 압축적으로 표현한 문구다. 하지만 전시관의 내용 전반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일제강점기의 역사다.
특히 지하 전시실은 일제의 취조 공간을 재현하면서 일본 제국주의의 폭압성을 극적으로 폭로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고문’이라는 한 단어로 요약되는 보안과 청사 지하실은 과거의 사실을 반영하고 있지만, 한편으로 불편한 마음이 들게 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고문은 일제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독립된 땅에 세운 국가에서도 고문은 중단되지 않았다. 일제에 항거해 세운 나라는 민주투사를 잡아 가두고 고문했다. 그렇기에 ‘고문 육성 증언’ 영상을 본 후 ‘지금의 우리나라를 있게 해준 독립운동가분들을 생각하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쳐보’길 권하는 관람 안내는 쉽게 공감되지 않는다. 지하 전시실은 지난 역사의 아픔과 상처를 이해하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현재의 고민 지점을 던져주기보다 일본이라는 하나의 적대의 선을 긋고 관람자를 ‘지금의 우리나라’라는 국가에 일치시키려 한다.
우리의 근현대사에서 일제강점기는 분명 아픈 역사였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바람직한 해원의 지점을 찾지 못하고 숱한 문제들이 현존하는 현재의 역사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일제 식민이라는 역사는 계속해서 되새겨지고 잊지 말아야 함을 소리 높이는 기억들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기억이, 되새김이 지금의 우리에게 그저 과거의 시간을 반복재생하며 분노하게 하도록 던져주는 것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조선족”이라는 용어는 중국 동포들이 가장 일상적으로 스스로에게 붙인 집단정체성이자 가장 친근한 자신들의 집단명이다. 여기에는 중국 현대사에서 나름 성공적인 소수민족으로서의 삶을 살았던 자신들의 자부심이 담겨 있다. 또한 전적으로 중국으로 동화되지 않고 한반도와 중국 사이에서 변용된 문화를 생산하고 축적한 긍지 역시 전제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들에게는 조선족은 대한제국 시기 이전의 ‘조선’이 아닌 현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조선’과 연결되면서 비하와 혐오의 의미가 개입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개입이 결코 그들의 실제와는 상관없는 우리의 일방적인 편견임은 물론 사실이다. 대림동 차이나타운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곳이 결코 강력범죄의 온상일 수는 없다. 오히려 대림동은 소수자 집단이 주류 집단과 마찰 없이 어울리고 공존하면서 자기 지배를 수행하는 공간인 셈이다. 대림동 차이나타운의 의의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박해를 받은 특정 집단들은 이른바 역사적 트라우마라는 정신적 외상을 가지게 된다. 물에 빠져 죽을 고비를 넘긴 사람이 강가에서 불안감을 느끼듯이 트라우마의 특성은 비슷한 사건을 또 다시 경험할 때 다시금 그 고통이 반복된다. 조선족 역시 마찬가지이다. 재중조선족이 처했던 역사적 극한 상황과 과거의 경험들 모두는 그들에게 역사적 트라우마를 남겼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사회가 전하는 배제와 차별, 나아가 극단적 혐오는 식민지배의 논리와 동일하다는 점에서 또 다시 조선족에게 역사적 트라우마를 환기시켜 커다란 집단적 불안감을 전해줄 것이다. 우리와 같은 동포이자 민족, 더군다나 한반도의 역사적 아픔을 모두 공유하고 있는 조선족에게 말이다. 결국 그들은 자기혐오, 자기부정과 같은 트라우마적 증세를 보일지도 모른다. 20세기의 코리안의 역사적 비극이 21세기의 조선족을 통해 반복되는 것은 분명한 역사적 퇴보이다. 특히 그 가해의 책임이 일정 부분 우리들에게 있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