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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교육학 > 교육 일반
· ISBN : 9788968800009
· 쪽수 : 311쪽
· 출판일 : 2013-02-28
책 소개
목차
여는 글 낡은 습속을 넘어서
|1부| 우리 교실 들여다보기
네모난 교실, 네모난 시간표, 학교 종이 땡땡땡!
- 근대 교실의 시공간과 학교교육
교사들은 왜 가르치려고만 할까?
- 교사, 가르치는 존재에 대한 성찰
공부에는 때가 있다는 말은 여전히 옳을까?
- 학생, 배우는 존재에 대한 성찰
왜 새로운 교과서는 교실수업을 바꾸지 못하나?
- 성전聖傳적 교과서 넘어서기
교실 대화는 일상 대화와 어떻게 다를까?
- 교실수업의 언어적 상호작용
|2부| 가까이서 멀리서
철 지난 행동주의는 왜 여전히 살아 있을까?
- 행동적 수업 목표를 넘어서
수업 지도안은 만국 공통일까?
- 수업 지도안 꼼꼼히 들여다보기
수업연구대회 수업은 정말 우수한 수업일까?
- 수업연구대회에 말 걸기
교실수업을 비교육적으로 만드는 주범이 정말 대학 입시일까?
- 평가 제도와 수업 방식의 관계
교육공학이 교사를 대체하는 일은 가능할까?
- 테크놀로지와 교실수업의 변화
|3부| 새로운 성찰과 실천을 위하여
교과는 고정불변의 가치인가?
- 교과를 넘어서는 상상력
가르치는 활동은 과학인가, 예술인가?
- 수업의 과학성과 예술성
학습자 중심 교육의 진정한 의미를 알고 있는가?
- 학습자 중심 교육에 대한 성찰
가르치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나?
- 목적형 VS 개방형 교원양성체제
혁신학교, 한국 학교 변화의 희망이 되기를 희망하며
- 혁신학교라 불리는 새로운 학교개혁운동의 의미
닫는 글 일상을 바꾸는 실천 운동으로서 학교변혁운동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나는 익숙한 일상을 낯설게 보는 시선이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교육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꼭 필요하다고 본다. 이런 시선이 왜 필요하고 중요할까? 우리들 대부분이 낡은 습속의 늪에 안주하면서 구질서를 재생산하고 있음을 간파하기 위해서이다. 우리의 행동은 반성과 성찰보다는 어릴 때부터 몸에 내면화된 습속의 지배를 너무 많이 받는다. 문제는 습속의 힘이 너무 근본적이어서 그런 사실조차도 인지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것이 습속이 지니는 무서운 보수성이다. 예컨대, 우리가 반복하는 오래된 전통들을 생각해 보라. 우리는 현재 교실의 시공간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교사는 가르치는 존재라는 역할 수행을 의심하지 않으며 공부에는 때가 있다는 철석같은 신념으로 마시멜로의 이야기를 학습자들에게 반복적으로 들려준다. 그리고 교과서를 잘 정리하여 전달하고 대학수학능력시험 유형의 객관식 문제를 열심히 풀게 하면서 자신이 맡은 학생들을 좋은 대학에 보내는 것이 교사와 학교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대학에 가면 좋은 직장을 얻을 수 있고 좋은 직장을 얻으면 여생을 편히 보낼 수 있다는 전통적인 믿음하에. 그러나 우리의 관습적 실천을 정당화해 주던 전통적인 학업-취업 루트는 그 유용성을 거의 상실해 가고 있다. 반복되는 경제 위기와 높은 청년 실업률은 현재의 사회 시스템과 그것을 재생산하는 교육 시스템이 근본적 위기에 봉착했음을 드러낸다. 세상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시대는 새로운 실천을 요구한다. 중앙집권적이고 통제적이며 표준적인 개혁과 같은 전통적 방식으로는 혁신을 이룰 수 없다. 그것 또한 위기를 재생산하는 낡은 습속의 일종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새로운 실천은 우리 몸에 배어 있는 익숙한 습속을 철저히 낯설게 보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무지한 스승은 도대체 어떻게 학생들에게 성공적인 학습이 일어나도록 만들었을까? 그가 가르친 것은 구체적인 학습 내용이 아니다. 그가 유일하게 무엇인가를 가르쳤다면 그것은 누구나 스스로 배울 수 있다는 평범한 사실을 환기시키고, 배우는 것이 가치 있다고 학습자의 의지를 각성시킨 것이다. 이 무지한 스승의 모습에서 필자는 미래 교육의 출구를 본다. 교사가 학생보다 많은 것을 알고 지적인 우위에 서서 계몽적인 가르침을 할 수 있는 시대는 종언을 고하고 있다. 아마도 그런 역할에서 휴먼로이드 로봇은 인간의 능력을 곧 뛰어넘을지 모른다. 이런 시대에 인간 교사가 할 수 있고 해야 할 유일한 인간적인 활동은 배우는 삶이 가치 있고 추구할 만한 것이며, 그러므로 그런 삶을 살도록 학생들의 의지를 각성시키는 것이 아닐까?
자신은 배우기를 즐기지 않으면서 계몽의 경계선인 교탁과 책상을 사이에 두고 학생에게 배움을 강요하는 그런 관계는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 인간에게 주어진 보편적 능력을 신뢰하고 배움의 의지를 작동시키는 탈근대의 꿈을 향해 교사들은 가르치기를 잠시 멈추고, 스스로가 학습하기를 즐기는 존재인지를 자문할 필요가 있다. 이 질문에 긍정적으로 답할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우리는 왜 우리 자녀들을 로봇이 아닌 인간이 가르쳐야 하는지에 대한 문명사적 의문에 대해서 답할 수 있는 용기를 얻는 셈이다. 당신은 어떤 교사인가?
대학수학능력시험은 학교교육의 변화를 가져오지 못했다. 교사들이 새로운 시험문제에 따라 교실수업을 변화시키는 속도에 비해서 참고서 시장이나 사교육 종사자의 적응 속도가 훨씬 빨랐다. 수능시험은 ‘박사 과외’와 같은 새로운 유형의 과외를 탄생시켰으며 월 1천만 원대 이상의 수입을 올리는 입시 기술자들이 등장했다. 이렇게 사교육 시장이 탄력적으로 적응하는 동안에 교사들의 수업 방식은 이 제도의 도입이 의도했던 조사, 탐구, 토론과 같은 새로운 수업 방법으로 바뀌기보다는 수능형의 좀 더 비싼 새로운 참고서와 문제집을 풀어 주는 것으로 수렴되어 갔다. 새로운 평가 방식의 도입은 새로운 수업 방식을 잉태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