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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정치학/외교학/행정학 > 각국정치사정/정치사 > 미국
· ISBN : 9788972975984
· 쪽수 : 864쪽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_ 전쟁과 평화의 60년을 가로지르며
1장_ 1943년의 일주일
지옥의 바닥|무조건 항복|포인트블랭크 작전|커티스 E. 르메이|수재 청년 맥나마라|레슬리 그로브스와 맨해튼 계획|9월 11일
2장_ 절대무기
트루먼의 결정|스팀슨의 방어|일본이 아니라 모스크바를?|망각|그로브스의 썰매|분노의 재림|함부르크 공습|드레스덴 이후|폭격수들의 베이브 루스|원죄
3장_ 냉전의 시작
국가안전법 제정|스팀슨의 9월 11일|제임스 포레스털|케넌의 실수|근원적 편집증|펜타곤 내부의 전쟁|봉쇄와 공군의 탄생|러시아인들이 쳐들어온다!|해군 대 공군|그 경찰
4장_ 자기충족적 편집증
스탈린|수소폭탄|폴 니체|NSC-68|한국이 우리를 구했다|트루먼의 또 다른 결정|핵실험|덕 앤드 커버|대량보복전략|날아간 기회|국방 인텔리들|톱해트 작전|게이더 보고서
5장_ 전환점
펜타곤의 삶|베를린|전쟁이 일어날 것이오|리치몬드를 향하여|양쪽이 움직이도록 하라|새로운 첩보의 필요성|맥나마라와 르메이|전면적인 공격|케이슨 메모|심연의 끄트머리|아메리칸 대학교에서|우리가 그를 사랑하는 이유
6장_ 악령 퇴치
파멸의 현장|광대 르메이|마음의 오류들|거대한 흰 고래|맥나마라의 최후|무장해제에서 군비제한으로|베리건 형제|탄도탄요격미사일의 등장과 폴 니체의 재등장|닉슨과 레어드|결정적인 타격|펜타곤 폭격?|공격 한번 못해 보고
7장_ 상류로
핵무기 전도사|광인 이론|슐레진저 독트린|럼스펠드와 체니의 등장|지미 카터의 질문|얼어붙은 미소|사람들이 듣는다|두려워 마라!|우리가 이겼고 당신이 졌으니 서명하시오|동결|전폐론자|피난처|고르바초프의 등장|포레스털 질문의 해답
8장_ 끝없는 전쟁
칼에서 쟁기로|다시 스팀슨|작전명 ‘정당한 명분’|바보들의 게임|새로운 세계 질서|어떤 중국어 단어|골드워터-니콜스 법|이민자의 아들|클린턴의 영광|군대와 동성애자|트루먼과 클린턴의 차이|핵태세 검토 보고서|발칸 전쟁|사도 가족|911테러
에필로그_ 새로운 세계 질서
미국의 기억|전쟁의 정상화|즉각적 재연|국가 안보?|복수|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감사의 글
주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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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펜타곤 건물의 기공식은 1941년 9월 11일에 거행되었다. 그런데 이로부터 정확히 60년 후에 거의 분 단위까지 일치하는 시각에 아메리칸항공 77편이 알링턴 국립묘지 방향의 펜타곤 외벽을 향해 돌진했다. 세계가 2001년 9월 11일의 사태를 파악한 것처럼 보이면서, 역사상 단연 최강의 군사력을 보유한 미국 군부의 본영인 펜타곤에 뼈아픈 취약점이 있음이 드러났다. 조지 마셜 장군의 전기작가는 911사태가 발생하기 수년 전에 이렇게 썼다. “공중으로부터의 가상의 적들에게 확실한 표적이 될 그곳은 미합중국의 적들에 대한 저항을 확산시키는 것처럼 보였을 뿐만 아니라 마치 공격을 유도하는 듯했다. - p.12~13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은 미국으로서는 일종의 제2의 탄생을, 즉 미국이 세계를 좌우하는 새로운 시대―헨리 루스의 유명한 표현대로라면 ‘미국의 세기’―의 개막을 의미했다. 앞서 나는 작가로서 자기중심주의에 빠진 듯이 의미 있는 어떤 날―무조건 항복을 요구한 날, ‘포인트블랭크 작전’ 개시일, 펜타곤 준공일, 로스앨러모스에서 본격적으로 원자폭탄 제조 연구가 시작된 날―과 내 자신의 생일이 모두 같은 날인 1943년 1월 22일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어쩌면 1943년을 1945년의 탄생에 앞선 회임의 시작으로 보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태어날 때 ‘역사상 가장 위대한 것’으로 찬양받던 핵무기는 두 세대가 지난 오늘날에 이르러서야 기형적인 모습이었다고 온전히 인식될 수 있었다. “일본에 민간인이란 없다”는 말로 미루어 보면, 원자폭탄은 태내에서조차 기형적인 모습을 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 p. 161
닉슨의 목적은 북베트남과 그 후원자인 소련에게 겁을 주어 자신이 그들에게 핵무기를 투하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닉슨은 1953년에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북한에 원자폭탄을 투하하겠다고 위협함으로써 결정적으로 소련이 북한에 압력을 넣어 전쟁이 끝났다고 생각했고, 다시 그 전략을 써먹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닉슨의 핵무기 사용 위협은 그 치밀함과 통제력이 아이젠하워에 비하면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닉슨은 자신의 그런 허세가 통했다고 생각하는 오류를 범했다. 앞에서 이미 살펴봤듯이 한국전 휴전을 공산주의자들이 받아들이기로 결정한 이유는 핵무기 위협보다는 크렘린에서 벌어진 스탈린의 죽음과 더 관계가 있었다. 닉슨의 경우에도 상황이 비슷하기는 했다. 닉슨의 공격 몇 주 전인 9월에 북베트남 지도자 호치민이 사망했던 것이다 - p.503~5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