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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인문 에세이
· ISBN : 9788976822802
· 쪽수 : 696쪽
책 소개
목차
『루쉰전집』을 발간하며 … 11
•집외집습유보편(集外集拾遺補編)
1901년
재정정 『서하객유기』 목록 및 발문 … 27
1903년
중국지질약론 … 30
1908년
파악성론 … 58
1912년
『웨둬』 발간사 … 87
군부 통언 … 91
신해유록 … 93
1913년
국무원에 올리는 국가 휘장 도안 설명서 … 97
미술보급에 관한 의견서 … 101
스스로 그린 명기 약도 설명 … 109
1915년
‘대운사미륵중각비’ 교감기 … 113
1916년
「교육강요」 폐지에 관한 참고사항 … 115
1917년
콰이지우묘폄석고 … 118
『구미 명가 단편소설 총간』 평어 … 123
‘□굉묘지’고 … 125
[부기] 휘굉묘지 … 127
‘서법지묘지’고 … 131
‘정계선잔비’고 … 135
1918년
‘여초묘지명’발 … 138
여초묘출토 우쥔정만경고 … 145
『묵경정문』 재교열 후기 … 152
『포명원집』 교감기 … 154
수감록 … 156
『미술』 잡지 제1기 … 159
1919년
‘권법과 권비’에 관하여 … 161
[참고] 권법과 권비(천톄성) … 164
수감록 3칙 … 170
그 … 174
촌철 … 176
혼잣말 … 179
1921년
“살아서는 항복해도 죽어서는 항복하지 않는다” … 187
이름 … 189
무제 … 192
1922년
『수초당서목』 초록 교정 설명 … 196
『당인설회』 진상 폭로 … 198
1923년
『소설세계』에 관하여 … 205
웨이젠궁 군의 ‘감히 맹종하지 않는다’를 읽은 이후 몇 가지 성명을 발표하다 … 210
[참고] 감히 맹종하지 않는다!(웨이젠궁) … 213
이씨 소장본 『충의수호전서』 새 판각 제요 … 222
『중국소설사략』에 제사를 써서 촨다오에게 증정하다 … 224
시미즈 야스조에게 부쳐 … 225
1924년
광둥성 신후이 뤼펑쭌 군에게 답하다 … 226
‘우스갯소리’에 대한 우스갯소리 … 228
기괴한 일력 … 230
대척여인 100회본 『충의수호전』 장회 제목 교감기 … 232
볼기 이백 대는 볼기 백 대의 오류 … 233
문학구국법 … 235
1925년
통신(쑨푸위안에게 답함) … 238
[참고] 루쉰 선생의 농담(Z.M.) … 238
베이징여자사범대학 학생들을 위해 교육부에 올리는 문건 두 편 … 241
『중국소설사략』 재판 부기 … 246
1927년
‘출판계로 가면서’ 코너의 ‘전략’ … 248
『강동화주』 소인 … 253
새로운 세상물정 … 256
중산대학 개교 치사 … 270
상하이와 난징 수복 경축 저편 … 272
소설목록 두 가지에 관하여 … 277
서원절지 … 291
서원절지(2) … 295
서원절지(3) … 299
지식계급에 관하여 … 302
세상의 도를 구제하려는 문건 4종 … 313
‘병과 갑’ 평어 … 322
[참고] 병과 갑(지롄) … 322
1928년
‘모 신문 스크랩 주석’ 평어 … 325
[참고] 모 신문 스크랩 주석(서우롄) … 326
‘행로난’ 평어 … 330
[참고] ‘행로난’(루셴취안) … 331
‘표점부호 금지’에 대한 평어 … 335
[참고] 표점부호 금지(첸쩌민) … 335
지롄이 보내온 편지에 대한 평어 … 337
[참고] 통신(지롄) … 338
‘오류 본보기’ 편집자 주 … 344
[참고] 오류 본보기(위시) … 344
통신(장멍원에게 답함) … 353
[참고] 우상과 노예(시핑) … 354
보내온 편지(장멍원) … 362
‘이번이 세번째’에 대한 평어 … 367
[참고] 이번이 세번째(원후이) … 368
샤오전과 캉쓰췬에게 답함 … 370
[참고] 편지 개요(샤오전, 캉쓰췬) … 371
‘신문 스크랩 한 조각’ 습유 … 373
[참고] 신문 스크랩 한 조각(잉양) … 374
‘나도 푸단대학에 대해 말한다’ 문장 뒤의 부기 … 385
[참고] 나도 푸단대학에 대해 말한다(판추지) … 385
통신(장다성에게 답함) … 397
[참고] 보내온 편지(장다성) … 399
‘덜렁이’에 관하여 … 403
‘도쿄통신’ 평어 … 406
[참고] 도쿄통신(어쥔) … 407
근하신년 … 415
1929년
『근대미술사조론』 독자 여러분께 드리는 글 … 417
‘공자가 남자를 만나다’에 관하여 … 424
1930년
류우지가 보내온 편지에 대한 의견 … 458
[참고] 보내온 편지(류우지) … 459
『문예연구』 범례 … 462
루쉰 자서전 … 464
펑후이시에게 제사를 써주다 … 467
『철갑열차 Nr. 14-69』 번역본 후기 … 469
1931년
『타오위안칭 출품 도록』에 부쳐 … 472
케테 콜비츠의 목판화 「희생」 설명 … 474
『용사 야노시』 교열 후기 … 476
리베라의 벽화 「빈민의 밤」 설명 … 480
‘일본 연구’의 바깥 … 482
독일 작가 판화전 소개 … 485
독일 작가 판화전 거행 연기 진상 … 488
1932년
수재가 바로 ‘건국’이다 … 490
『외투』에 부쳐 … 492
『문신』에 대한 나의 의견 … 493
제기 1편 … 495
1933년
문학노점상 비결 10조 … 497
고바야시 동지의 사망 소식을 듣고 … 499
통신(웨이멍커에게 답함) … 501
[참고] 보내온 편지(웨이멍커) … 504
나의 우두 접종 … 508
‘문인무행’을 변론하다 … 521
아녀자들도 안 된다 … 524
1934년
자서전 … 528
『루화』에 관하여 … 531
『무명목각집』 서 … 532
‘현무호 괴인’ 해설 … 534
[참고] 현무호 괴인 … 534
‘『어머니』 목판화 14폭’ 서 … 537
『송은만록』에 부쳐 … 539
『송은속록』 잔본에 부쳐 … 541
『만유수록도기』 잔본에 부쳐 … 543
『풍쟁오』에 부쳐 … 544
『역문』 창간호 전언 … 546
‘잡문’ 짓기도 쉽지 않다 … 548
『개자원화보 3집』에 제사를 써서 쉬광핑에게 주다 … 553
1935년
형세는 반드시 그렇게 되고, 이치는 본래부터 그러했다 … 555
『중국신문학대계』 소설 2집 편찬 감상 … 557
“달을 속이다” … 558
‘모’ 자의 네번째 뜻 … 560
“타고난 야만성” … 562
사지 … 564
중국의 과학 자료 … 566
‘유불위재’ … 567
“황제 자손” 두 부류 … 569
‘진귀함’을 모으다 … 571
1936년
『머나먼 나라』 해설 … 573
차오바이의 목각상에 부쳐 … 575
‘중국걸작소설’ 소인 … 576
『케테 콜비츠 판화 선집』에 제사를 써서 지푸에게 증정하다 … 578
세계사에 보내는 답신 … 579
쉬사오디·예쑤중·황핑쑨에 관하여 … 581
부록 1
1907년
『중국광산지』 자료 모집 광고 … 584
1909년
『역외소설집』 제1책 … 586
『질긴 풀』 번역본 서문(잔고) … 588
1912년
저우위차이 알림 … 590
1919년
무슨 말? … 591
1921년
「악동」 부기 … 595
1925년
『고민의 상징』 광고 … 596
‘웨이밍총간’은 무엇이고, 어떻게 하려 하나?(1) … 597
알림 … 599
루쉰 공고 … 600
『망위안』 출판 예고 … 601
베이징여자사범대학 사태 선언문 … 603
편집자 부기 … 606
「민첩한 역자」 부기 … 608
오류 교정 … 609
‘웨이밍총간’은 무엇이고, 어떻게 하려 하나?(2) … 612
1926년
‘웨이밍총간’과 ‘오합총서’로 간행한 서적 … 615
1928년
본간 단신 … 621
『근대미술사조론』 삽입 도판에 관하여 … 623
[참고] 보내온 편지(천더밍) … 623
편집자 부기 … 625
1929년
삼가 알림 … 626
1930년
쉬스잉에게 주는 도서목록 … 628
1931년
루쉰 공고 … 630
『훼멸』과 『철의 흐름』 출판 예고 … 632
삼한서옥에서 교정 인쇄한 서적 … 634
삼한서옥에서 교정 인쇄한 문예서적 … 637
『‘철의 흐름’ 그림』 특가 알림 … 640
1934년
정정 … 642
『상하이에 온 버나드 쇼』 … 643
『인옥집』 광고 … 644
『목판화가 걸어온 길』 알림 … 646
주간 『극』 편집자에게 보내는 정정 편지 … 648
『십죽재전보』 패기 … 649
1935년
『러시아 동화』 … 651
『역문』 편집자에게 보내는 정정 편지 … 653
1936년
‘30년집’ 편집 목차 두 종류 … 655
『죽은 혼 백 가지 그림』 … 658
『케테 콜비츠 판화 선집』 패기 … 660
『해상술림』 상권 삽화 오류 교정 … 661
부록 2
1898년
자젠성 잡기 … 664
시화잡지 … 666
1900년
아우들과 이별하고 … 668
연밥 … 670
1901년
경자년 조왕신을 보내며 지은 즉흥시 … 672
책의 신에게 올리는 제문 … 673
중제의 송별시 원운에 화답하다(발문도 함께 쓰다) … 676
꽃을 아까워하며 율시 4수 … 678
1902년
정요경을 애도하며 … 682
사진에 제사를 써서 중제에게 주다 … 683
『집외집습유보편』에 대하여 … 686
책속에서
“이제 감히 중화의 땅 씩씩한 젊은이들에게 고한다. 용감하고 강건하면서 힘을 갖추는 것과 과감하고 의연하면서 싸움을 겁내지 않는 것은 본래 인생에서 의당 갖춰야 할 자질이지만 특히 이러한 자질은 자국을 보호하는 데 그쳐야지 무고한 나라를 병탄하는 데 써서는 안 된다. 자립하여 나라를 튼튼히 하고도 남은 용기가 있다면 마땅히 폴란드의 장군 벰29)이 헝가리를 돕고, 영국 시인 바이런30)이 그리스를 도운 것처럼 자유를 위해 자신의 원기를 펼치고 압제를 전복시켜 하늘과 땅 사이에서 그것들을 제거해야 한다. 무릇 위기에 처한 나라가 있으면 모두 함께 그 나라를 도와야 한다. 먼저 우방국을 일어나게 하고 다음으로 기타 국가에까지 도움이 미치게 한다. 그리하여 인간 세상에 자유가 충족되도록 하여 호시탐탐 탐욕을 채우려는 백인종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노예를 상실하게 하면 황화론이 비로소 실현될 것이다. 그럼 오늘날과 같은 시대에도 강포함을 부러워하는 마음을 거두어들이고 자위自衛의 중요함을 설파할 수 있을 것이다. 아아! 우리 중화의 땅도 침략을 한 번 받은 나라이니 스스로 반성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파악성론」 중에서)
“나는 몇 년간 잡지와 신문을 보면서 점차 기괴한 습관이 생겼다. 그게 무엇인가? 바로 글을 볼 때 먼저 서명署名을 보는 습관이다. 서명을 마주하고 적극적으로 대인선생의 이름을 찾는 것이 아니라 소극적으로 다음 사항을 고려하게 되었다.
1. 스스로 ‘철혈’鐵血, ‘협혼’俠魂, ‘고광’古狂, ‘괴협’怪俠, ‘아웅’亞雄 따위의 이름을 쓰는 사람의 글은 읽지 않는다.
2. 스스로 ‘접서’鰈棲, ‘앙정’鴛精, ‘방농’芳儂, ‘화련’花憐, ‘추수’秋瘦, ‘춘수’春愁 따위의 이름을 쓰는 사람의 글도 읽지 않는다.
3. 스스로 ‘일분자’一分子로 자처하거나, ‘소백성’小百姓으로 겸양을 떨거나, ‘일소’一笑로 비하하는 따위의 이름을 쓰는 사람의 글도 읽지 않는다.
4. 자신의 호를 ‘분세생’憤世生, ‘염세주인’厭世主人, ‘구세거사’救世居士 따위로 붙인 사람의 글도 읽지 않는다.
이와 같은 이름은 일일이 다 거론할 겨를이 없을 정도다. 임시로 떠오른 것이지만 지금 생각나지 않는 필명도 많다. 더러 혼자서 이렇게 생각해 보기도 한다. ‘나의 이런 생각은 기실 너무 독단적이고 너무 강퍅하잖아. 다른 사람이 알면 틀림없이 고개를 가로저을 거야.’
그러나 오늘 송나라 사람 유성兪成 선생의 『형설총설』의 한 대목을 읽고 나서는 현대에 사는 나조차도 깜짝 놀랐다. 지금 그 내용을 아래에 초록해 둔다.”(「이름」 중에서)
“루쉰이 삼가 의견을 드립니다.? 제 『중국소설사략』은 강의를 하던 시절 호구지책을 마련해야 해서 계속 편집한 책입니다. 당시에는 경제 능력이 한정되어 있어서 수집한 서적이 모두 좋은 판본이 아니었습니다. 이에 어떤 책은 글자가 바뀐 것도 있었고, 어떤 책은 서문이나 발문이 빠진 것도 있었습니다. 『옥교리』2)도 제가 본 것은 번각본으로 작가와 저작 연대를 모두 조사해 볼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때 저는 명나라 때 판각한 원본을 구할 수 있으면3) 판식板式, 인장, 서문 등을 통해 어쩌면 저작 연대와 작가의 진짜 성명을 추정해 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이 희망은 지금까지도 달성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근래 3년 동안은 더 이상 강의를 하지 않고 있어서 소설사와 관련된 자료에도 마음을 쓰지 않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무슨 새로운 자료는 전혀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현재 소설사를 연구하는 사람이 이미 많아졌고, 아울러 각종 새로운 부문도 개척되었기에 지금 바로 류우지 선생의 편지를 『위쓰』의 지면을 빌려 공개하겠습니다. 이를 보고 『옥교리』에 관한 자료를 갖고 있는 독자들께서 유익한 글을 보내 주시기를 희망합니다. 이는 아마도 『위쓰』에서도 발표를 바랄 것입니다. 1930년 2월 19일”(「류우지가 보내온 편지에 대한 의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