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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영미소설
· ISBN : 9788976828538
· 쪽수 : 384쪽
· 출판일 : 2024-04-26
책 소개
목차
I. 창(窓) 7
II. 시간이 흐르다 207
III. 등대 239
도슨트 최은주과 함께 읽는 『등대로』
나는 지금, 바로 이 순간에 한 번만 존재한다 7
느릿하게 이어지는 일상의 상태 • 7
여기 있다는 것과 저기 있다는 것: 공간에 대하여 • 11
우리, 순간의 존재들 • 22
결혼 이야기 • 30
그림은 마침내 완성되었다 • 33
리뷰
책속에서
겨드랑이에 책을 한 권 끼고 노란색 슬리퍼를 신은 카마이클 씨가 그녀의 질문에 건성으로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느릿느릿 발을 끌며 지나가는 지금 그녀가 감지한 것은, 자신이 의심받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그녀가 무언가를 주고자 하는 욕망, 누군가를 돕고자 하는 이 모든 욕망이 허영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녀가 그렇듯 본능적으로 베풀고 도움으로써 사람들이 그녀에 대해 “아, 램지 부인 말씀이지요! 램지 부인은 정말 소중한 분이랍니다… 말할 것도 없이 램지 부인이시지요!”라고 말하고, 그녀를 필요로 하고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그녀를 찾고 그녀를 추앙하길 바라는 것이 그녀 자신의 자기만족을 위해서였나? 그녀는 은밀히 이것을 원했던 게 아닌가? 그래서 방금처럼 카마이클 씨가 그녀를 피해 허구한 날 아크로스틱을 했던 어느 구석으로 달아날 때, 그녀는 단지 본능적으로 자신이 다시 한 번 무시당했다고 느꼈을 뿐만 아니라, 어떤 부분에서는 자신이 옹졸하다는 것, 그리고 인간관계라는 것이 너무도 결함투성이고 야비하며 최선이라고 해 봤자 자기본위임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녀는 이 뒤엉킨 생각 안에 어떤 가시가 있는 게 아닐까 짐작했고, 그 가시를 발라내다 보니 그것이 언젠가 어떤 여자가 ‘램지 부인이 자기 딸의 애정을 빼앗아 갔다며’ 자신을 원망했던 일과 연관된 것임을 깨달았는데, 자신에 대한 그 비난이 다시금 기억이 난 것은 도일 부인이 했던 어떤 말 때문이었다. 말인즉슨, 지배하기 좋아하고, 간섭하기 좋아하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남들이 하게끔 만든다는 것이었는데, 램지 부인은 자신에게 제기된 그런 혐의가 정말로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사람들 눈에 내가 ‘그렇게’ 보이지 않을 방법이 없잖아? 아무도 내가 남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려고 갖은 애를 쓴다며 비난할 순 없어. 난 오히려 종종 내 초라한 모습이 부끄러운걸. 나는 남들에게 위세를 떨거나 전횡을 휘두르는 사람이 아니야. 물론 병원과 하수 시설과 낙농장에 관한 얘기는 비교적 사실에 가깝지. 그런 것들에 관해서라면, 난 확실히 내 의견을 열정적으로 표명하고 있고, 기회가 있다면 사람들의 목덜미를 움켜잡아 끌고 가서라도 그들이 직접 보도록 만들고 싶으니까. 섬 전체에 병원이 한 개도 없다니. 부끄러운 일이고말고. 런던에서 집으로 배달되는 우유는 흙먼지로 사실상 갈색이 되어 있어. 그건 법으로 금해야 해. 여기 이 섬에 모범적인 낙농장과 병원을 건설하는 것. 그게 내가 직접 하고 싶은 두 가지 일이야. 그런데 어떻게? 이 많은 아이들을 키우면서? 아이들이 좀 더 자라면, 아이들이 모두 학교에 다니게 되면, 어쩌면 그땐 여유가 좀 생길지도 모르지.
그는 멋진 눈을 가졌지만 자기가 알았던 사람들 가운데 정말이지 가장 매력 없는 인간이라고 릴리 브리스코는 생각했다. 그런데 어째서 그녀는 그가 한 말을 신경 쓰는 걸까? 여자들은 글을 쓸 수 없어요. 여자들은 그림도 그릴 수 없어요. 그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온들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어차피 그건 분명히 그에게도 진실은 아니고, 그는 그저 어떤 이유로든 그것이 자신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한 것일 텐데. 그런데도 그녀는 왜 바람에 시달리는 옥수수처럼 온몸을 바짝 굽혔다가 오직 안간힘을 쓰고 다소 고통스럽게 노력해야만 이러한 굴욕에 서 몸을 일으킬 수 있는 걸까? 그녀는 다시 한 번 이겨 내야 한다. 식탁보 위에 장식용 잔가지가 있고, 내 그림이 있고, 나는 나무를 중앙으로 옮겨야 해. 중요한 건 다른 게 아니라 바로 그거야. 그에게 화를 내지도 않고, 그와 언쟁하지도 않고, 그저 내게 중요한 것을 유지하고 지킬 수는 없을까? 그녀는 자문했다. 그리고 만약 조금이라도 복수하고 싶다면, 그를 비웃으면 되지 않을까?
“아, 탠슬리 씨.” 릴리가 말했다. “부디 절 등대에 데려가 주세요. 정말 가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