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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교양 인문학
· ISBN : 9788986377484
· 쪽수 : 280쪽
· 출판일 : 2015-05-20
책 소개
목차
들어가는 말
I 시간의 조망
II 시간 속의 구속
III 과거, 현재, 미래
IV 정체성, 사랑, 시간
V 시간의 정치학
VI 시간 속의 도덕
VII 심리적 시간
VIII 성장과 노화
IX 성취
X 시간과 예술
XI 자연스러운 시간과 부자연스러운 시간
XII 기억
XIII 인간 삶의 음악
맺는 말
옮긴이의 말
책속에서
계획을 세우는 타당한 이유는 많은데, 그 가운데 하나가 미래를 현재나 과거만큼 충분히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즐기는 것 대부분을 특별하게 여긴다. 파리에서의 일주일. 일반화된 하나의 개념처럼 생각만 해도 기분 좋은 이 계획은 그러나, 생트샤펠 방문하기, 루브르와 클뤼니에서 각각 오후 한나절 보내기, 실컷 돈 쓰기, 생루이 섬 산책하기, 오페라 카페에서 칵테일 한 잔 후 오페라 관람하기, 그런 다음 오래된 레알 근처에서 양파 수프 먹기, 지하철로 자르댕 데 플랑트나 뱅센 동물원까지 가서 오전 보내기 같은 세부 계획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때에는 더욱 즐거워진다. 이런 식으로 투영한 나날들은 현실과 이상의 기쁜 조합이 된다. 거대하고 텅 빈 하늘처럼 투명하고 대수롭지 않았던 미래가, 이제 수십 가지 의미 있는 형상을 띠게 된다. 사람들은 계획이 자신을 구속하지 않을까 의심한다. 그러나 아무리 깎아 말해도 그런 경우는 전혀 없다고 할 수 있다. 계획을 세운다고 해도 언제든 계획에서 벗어날 수 있다―계획을 어기는 것 자체가 즐거운 자유 행위가 되니까. 그러나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면 당신은 미래를 텅 빈 벌판으로 남겨두는 셈이다. 현재에는 쓸모가 없는 벌판, 예측할 수 없는 당신의 기분에 몰수당한 텅 빈 가능성의 벌판으로. 당신은 시간을 모욕하고, 시간은 햇빛 가득할 수 있었을 그 얼굴을 당신에게서 돌려버린다. 그리고 당신은 과거와 현재라는 시간의 나머지 두 차원이 다르게 될 수 있었거나 되어야 했던 과거와 현재만큼 의미 있지는 않다고 스스로 위안한다.
나이가 들수록, 우리의 젊음은 소리 없이 시간 속으로 확장되는 반면, 우리의 노년은 거꾸로 축소된다. 대학을 막 졸업한 스물두 살 때,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열여덟 살에도 비슷한 결론을 내렸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리고서 내 젊음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40대인 지금의 나는 서른셋까지의 내 삶을 청년기의 황혼으로, 서른셋부터 서른여섯까지를 “수업시대(Lehrjahre)”로, 서른일곱부터는 젊은 성년 남자라고 생각하고 있다. 한때 나는 30대 후반을 노년에 포함시켰지만, 지금 노년은 허둥지둥 물러나 예순다섯 너머의 덤불 속으로 들어가버렸다. 나는 이 과정이 일종의 포물선을 그리며 내 평생 계속될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쉰 살이 되었을 때는 아마도 마흔을 뒤돌아보면서, 어쩌면 시샘 섞인 너그러운 마음으로, 그때는 경험이 부족하고 싱그러운 시기였다고 생각할 것이다. 나와 나 비슷한 사람들은 일종의 영원한 중년을 살고 있다. 그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우리가 몇 살이든 간에, 우리는 항상 시간의 중간에 있고, 우리 미래의 무게는 과거의 무게와 똑같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명과 황혼을 제대로 감상할 줄 아는 훌륭한 감식가는 못 된다. 대체로 새벽까지 내처 자느라 여명을 놓치고, 느릿느릿 깨어나는 몸 안에서 의식이 머뭇거리며 돌아오는 것을 잘 모르듯, 그림자 없이 솟아오르는 하루에 대해서도 모른다. 그러나 저녁의 박명까지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것은 그다지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천 가지 색조로 수놓인 하늘을, 현실을 바꾸고 확장하는 볼거리를, 인간이 만든 그 어떤 것보다 아름답게 평화에 대한 시각적 은유를 제공하는 광경을 우리는 왜 거의 날마다 무시하는 걸까? 그것이 하필 우리가 바쁘거나 피곤한 순간에 덮친다는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우리가 사는 온대 기후대에서는 하지에서 동지까지 그 시간이 매번 바뀌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 저녁 박명은 우리가 불안정한 이성적 존재로서 인정하려 들지 않는 두 가지를 던져주기 때문에, 우리가 일부러 피하는 게 아닐까 한다. 그 두 가지란 돌이킬 수 없는 우주적 변화(즉 어둠으로의 변화)의 전망, 그리고 깊은 모호함의 느낌―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어느 정도 다르게 보이는 대상에 대한 느낌―이다. 우리는 정오와 자정의 인간이기에, 그런 확실성의 열렬한 동조자이기에, 조롱받고 시들어가는 그것을 차마 볼 수 없는 것이다.
박명 가운데 1분 남짓한 짧은 시간을 나는 특히 좋아한다. 그 시간에는 빛이 없는 색깔처럼 보이던 것이 어느새 색깔 없는 빛으로 보인다. 저녁 어스름처럼, 그 앞의 시간도, 다른 모든 시간에는 숨어 있던 풍경들을 불러낸다. 낮에 속한 것도 아니요 밤에 속한 것도 아닌, 반은 형체 없는 간절한 그 존재들은 우리 정신 속에 자신을 닮은 존재들을 그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