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logo
x
바코드검색
BOOKPRICE.co.kr
책, 도서 가격비교 사이트
바코드검색

인기 검색어

일간
|
주간
|
월간

실시간 검색어

검색가능 서점

도서목록 제공

요가 수뜨라

요가 수뜨라

스와미 쁘라바와난다, 크리스토퍼 이셔우드 (지은이), 김병채 (옮긴이)
슈리크리슈나다스아쉬람
18,000원

일반도서

검색중
서점 할인가 할인률 배송비 혜택/추가 실질최저가 구매하기
16,200원 -10% 0원
900원
15,300원 >
16,200원 -10% 0원
0원
16,200원 >
yes24 로딩중
교보문고 로딩중
11st 로딩중
영풍문고 로딩중
쿠팡 로딩중
쿠팡로켓 로딩중
G마켓 로딩중
notice_icon 검색 결과 내에 다른 책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중고도서

검색중
서점 유형 등록개수 최저가 구매하기
로딩중

eBook

검색중
서점 정가 할인가 마일리지 실질최저가 구매하기
로딩중

책 이미지

요가 수뜨라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요가 수뜨라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세계의 종교 > 힌두교
· ISBN : 9788991596658
· 쪽수 : 236쪽
· 출판일 : 2020-08-01

목차

옮긴이의 말·6
영문판 옮긴이의 서문·10
본문
1. 요가와 그 목적·15
2. 요가와 그 수행·101
3. 초자연적인 힘들·183
4 해방·213
옮긴이의 참고문헌·236

저자소개

크리스토퍼 이셔우드 (지은이)    정보 더보기
영미 현대문학의 주요 작가 중 한명으로, 소설, 희곡, 씨나리오, 산문, 번역 등 다양한 저서를 남겼다. 동성애자임을 숨기지 않고 활동한 첫 세대이자, ‘퀴어’를 대표하는 인물로 동성애자 인권 운동에도 크게 기여했다. 영국 체셔에서 태어나, 케임브리지 대학을 중퇴하고 런던 대학에서 의학을 전공하던 중에 첫 소설 『모든 공모자들』을 출간한다. 그해 학업을 중단하고 이듬해 베를린으로 떠나, 나치 정권이 수립되는 1933년까지 머물며 후일 대표작이 될 글들을 활발히 집필한다. 베를린을 떠난 직후 『노리스 씨 기차를 갈아타다』(1935) 『베를린이여 안녕』(1939) 등을 잇달아 출간하며 크게 성공을 거두고 ‘영국 문학의 미래’로 각광받는다. 이 두 작품은 후에 『베를린 이야기』로 묶여, 뮤지컬 「까바레」, 영화 「까바레」 「나는 카메라」로 거듭 만들어지고, 『타임』 선정 ‘20세기 100대 영문 소설’로도 꼽혔다. 1939년 미국 캘리포니아로 이주하여 여생을 보내는데, 말년까지도 장편소설 『싱글 맨』(1964), 회고록 『크리스토퍼와 그의 부류』(1976) 등을 펴내며 다방면에서 왕성하게 활동한다. 1986년 캘리포니아 쌘타모니카에서 81세를 일기로 사망했고, 시신은 교편을 잡았던 캘리포니아 주립대에 기증되었다. 『싱글 맨』은 교통사고로 연인을 보낸 한 남자의 하루를 그린 작품이다. 소설은 평범한 일상의 순간순간을 진중한 성찰과 섬세한 문장으로 채우며, 담담하고 절제된 감정과 통렬한 분노와 슬픔이 부딪히며 빚는 삶의 결을 세심하게 포착해낸다. 작가는 “하고자 한 대로 구현된 유일한 작품”이라고 밝히며 가장 아끼는 글로 꼽기도 했다. 2009년 동명의 영화로 제작되어 다시 널리 주목받았으며 『가디언』 선정 ‘100대 영문 소설’로도 꼽혔다.
펼치기
스와미 쁘라바와난다 (지은이)    정보 더보기
인도에서 태어남, 1914년 켈커타 대학을 졸업하고 라마크리슈나 교단에 들어감. 서부 뱅갈에서 라마크리슈나 교단의 지부를 맡고 있다가 1923년 미국으로 이주함. 샌프란시스코의 Vedanta Society의 보조 minister로 있다가 1930년 남캘리포니아에 Vedanta Society를 설립함. 베단따에 관한 많은 저서들을 쓴 학자이자 스와미.크리스토퍼 이셔우드와 프레데릭 맨체스터의 프로젝터들을 도움.
펼치기
김병채(크리슈나다스) (옮긴이)    정보 더보기
경상북도 영일군 오천면에서 태어났다. 지금은 포항이다. 1972년 경북대학교를 졸업하고 난 뒤 다수의 직업을 거친 후 서울의 대기업에서 근무를 하였다. 마음의 행복 이상의 것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윗사람들을 보았을 때 그들은 행복한 것 같지는 않았다. 신을 만나면 그것이 충족될 것 같았다. 어느 날 회사로 돌아가는 길에 명동 성당에 들러 성모상 앞에서 기도를 하였다. “신을 보는 삶을 주소서. 그렇지 않다면 이 삶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럴 수 없다면 저의 생명을 거두어 주소서.” 회사 생활은 나의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회사를 그만두었다. 더 확신을 갖기 위하여 믿음이 가는 수녀님에게 물었다. “제가 회사를 그만두는 것이 어떻습니까?” “물론입니다.” 충남에 있는 수덕사 근처에서 생활했다. 덕산 성당 신부님으로부터 신학교에 들어갈 것을 권유받다. 신을 위한 일을 하는 것보다는 신을 만나고픈 열정이 더 강했다. 그곳에서 몇 개월 지내다 제주도로 가서 약 2년간 생활하였다. 주로 서귀포에서 살았다. 자유로운 생활은 했지만 찾고자 했던 행복은 보이지 않았다. 내가 무모한 생활을 시도했다는 느낌도 들었다. 앞길이 도무지 보이지 않았다. 강원도로 가서 장터의 상인이 되고자 하는 계획을 하였다. 그때 너무나 놀랍게도 대학의 친구가 제주시 삼도동의 나의 주소지로 찾아왔다. 그는 제주시의 나의 주소를 모른다. 어떻게 물어 찾아왔다. “지도교수님께서 오라신다.” 너무나 고마운 두 분이다. 특히 나의 친구는 친구가 아니라 은인이다. 부산으로 가서 대학교 강사 생활을 몇 년 했다. 몇 년 뒤 창원에 있는 국립 대학교 교수가 되었다. 가르치다가 명상에 무엇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송광사 주위의 암자에 기거하기도 하였다. 법정 스님에게 제자로 받아달라는 부탁을 드리기도 하였다. 성당 고해소 신부님에게 물었다. “신이 어디에 계십니까?” “산과 들에 있지요.” 세상에 산과 들이 얼마나 많은 데, 어느 산 어느 들 말입니까? 1988년 말 붓다가 태어난 곳인 인도로 명상을 배우러 갔다. 뉴델리에 기거하면서 슈리 오로빈도 아쉬람에 자주 갔다. 그곳의 한 이방인에게 길을 물었다. “제가 어디로 가면 좋습니까?” “알란디로 가세요.” 알란디의 숙소의 관리인께서 따라오라고 하셨다. 지하의 서고로 안내되었다. 책을 한 권 꺼내 드니 나에게 내밀었다. 갸네쉬바리 성자가 쓴 바가바드 기타였다. 처음으로 바가바드 기타와 마주했다. 켈커타에서 마더 데레사의 축복을 받기도 했다. 비파사나 아카데미에서 명상을 배웠다. 마음을 붙잡았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니 내가 묘한 상태로 이동하는 것 같았다. 그때는 윗입술 위에 집중했다. 전적으로 집중하자 명상하는 자가 사라지고 그곳의 세포가 살아 움직였다. 숨을 내쉬자 세포가 산 같이 커졌다. 들이쉬자 산이 없어졌다. 이 신기한 현상에 온통 몰입되었다. 그때는 오전이었다. 오후 명상 시간에 큰 일이 일어날 것 같았다. 자리에 앉아 명상을 하자마자 곧 거대한 산이 있다가 없다가 하다가 드디어 새로운 차원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명상자는 사라졌다. 광활한 빛의 하늘이 거기에 있었다. 나는 엑스터시의 바다에 빠졌다. 너무나 놀란 나는 그곳의 성자분께 달려가 물었다. “그것은 사마디입니다.” 그 당시에는 영성의 세계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었다. 누구나 명상을 한다면 이 경험을 한다고 알고 곧 잊어버렸다. 봄베이의 한 요가 연구소에서 외국풍의 연구원에게 인도에서 가장 성스러운 곳을 물었다. “티루반나말라이에 있는 아루나찰라 산입니다. 거기에 라마나 아쉬람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아루나찰라 산자락에 고요만이 있었다. 그곳으로 순례를 온 구루와 한 무리의 제자들은 말을 하지 않았다. 눈을 마주하는 것이 전부였다. 다른 곳들에서는 무엇을 하라고 하는데 이곳에서는 무엇을 하라고 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진리에 이른다는 것을 그 당시에는 몰랐다. 그곳에서 한 달가량 머물렀다. 깨닫는 것을 다음의 생애들로 미루어야 될 것 같았다. 고국으로 돌아오기 직전에 북인도의 갠지스 강가인 하리드와르로 라마나 마하리쉬의 제자 파파지를 만나러 갔다. 그분이 말씀하시는 요지는 마음이 나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 말의 의미를 이해했다. 그래서 나는 마음을 내려놓았다. 그러자 순식간에 앞에 계시 든 분이 사라졌다. 방이 사라졌다. 질문하고 있던 본인이 사라졌다. 이 현상계를 완전히 벗어났다. 빛이 끝없이 펼쳐진 하늘 같은 것만 거기에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나는 모른다. 이 현상계에 돌아오자 방이 보였다. 앞에 스승님이 보이셨다. 질문하는 내가 의식되었다. “그것이 깨달음입니다. 그대는 붓다입니다. 찾을 것이 더 없습니다. 당장 고국으로 돌아가십시오.” 붓다라는 말은 자신의 바탕을 안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인 것 같았다. 자신의 바탕이 없는 사람이 누가 있는가? 누구나 붓다다.
펼치기

책속에서

1. 이제 요가의 가르침을 시작한다.

요가는 “합일”을 의미한다. 그것은 영어 단어 “yoke”의 산스끄리뜨이다. 또한 요가는 영적 합일의 방법을 의미하기도 한다.
요가를 통해 개인은 이렇게 덧없어 보이는 우주의 바탕을 이루는 실재인 신성과 하나가 되고자 하는 많은 방법들 중 하나이다. 그런 합일을 이룬다는 것은 완벽한 요가의 상태에 이르는 것이다.
기독교에는 이에 부합하는 용어인 “신비의 합일”이 있다. 그 용어는 비슷한 생각을 표현한 것이다.
이 수뜨라들에 대한 고전 논평가들 중 한 명인 보자는, 빠딴잘리의 요가라는 단어 사용을 “아뜨만(실재)을 비아뜨만 즉 눈에 보이는 것과 분리하려는 노력”이라고 정의하였다.
요가를 수행하는 사람을 요기라 한다.


2. 요가는 마음1의 생각의 물결들2의 정지이다.

빠딴잘리는 마음 즉 찟따는 마나스, 붓디, 아함까라라는 세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였다.
마나스는 감각들에 의해 외부 세계로부터 수집된 인상들을 받아들이는 기록 능력이다.
붓디는 이런 인상들을 분류하고 그것들에 반응하는 분별력이다.
아함까라는 스스로 이 인상들을 주장하고 그것들을 개별적 지식으로 저장하는 자아 감각이다. …


3. 그러면 그는 자신의 진정한 성품(아뜨만3)에 있다.

마음의 호수가 깨끗하고 잔잔해지면, 사람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 항상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인 자신을 알게 된다. 그는 자신이 아뜨만임을 알게 된다. …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
이 포스팅은 제휴마케팅이 포함된 광고로 커미션을 지급 받습니다.
도서 DB 제공 : 알라딘 서점(www.aladin.co.kr)
최근 본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