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서양철학 > 현대철학 > 알프레드 화이트헤트
· ISBN : 9788997332090
· 쪽수 : 352쪽
· 출판일 : 2012-05-31
책 소개
목차
책머리에 | 4
제1부 | 창조적 충동
강의 1·중요성 | 11
강의 2·표현 | 53
강의 3·이해 | 91
제2부 | 활동
강의 4·전망 | 135
강의 5·과정의 형식 | 173
강의 6·문명화된 우주 | 209
제3부 | 자연과 생명
강의 7·생명 없는 자연 | 253
강의 8·살아 있는 자연 | 285
제4부 | 맺는말
강의 9·철학의 목적 | 323
참고문헌 | 331
찾아보기 | 338
역자후기 | 346
리뷰
책속에서
이 일련의 강의 전체에서 내가 목적하는 바는 인간의 규제된 활동에 전제되어 있는 경험의 일반적인 특성들 가운데 몇 가지를 검토해 보는 일이다.
나는 여기서 체계적인 철학을 구축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짤막한 연속 강의에서 그와 같이 야심적인 목표를 달성하려고 하는 것은 무리이다. 모든 체계적인 사고는 전제에서 출발해야 한다. 또한 위에서 언급했듯이 우리의 논의는 명시된 목표에 표현되어 있는 것보다 더 기본적인 관념들을 부수적으로 활용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자료들에 대한 언어적인 설명은 체계화의 과정 - 그 어떤 체계화의 과정이건 간에 - 을 거치면서 다듬어지고 윤색되고 질서 지어져야 한다.
모든 체계적인 사고는 현학적인 색조를 띠고 있게 마련이다. 그것은 우리가 관념이나 경험, 암시 같은 것들을 생각하고 있는 것은 에서 그가 궁극적 관념들의 의미를 확정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런 방식을 통해서이다. 그리고 이렇게 의미가 부여된 관념들로 이루어진 체계적인 주장은 정합성(coherence)을 지닌다고 말한다. 물론 아니라고 하는 꼼꼼한 변명과 함께 그런 것들을 제쳐놓아 버린다. 체계란 중요한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경험 속으로 밀려들어오는 갖가지 사고를 조작하고 이용하고 비판하는 데에 필요하다.
특정한 분자가 하나 있다고 해보자. 그것은 자연의 부분이다. 그것은 수백만 년 동안 운동해 왔다. 어쩌면 그것은 멀리 떨어진 성운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것은 이제 신체 속으로 들어온다. 그것은 어떤 식용 식물의 요소로서 들어올 수도 있고, 공기의 부분으로서 폐 속으로 들어올 수도 있다. 그것이 입을 통해서 들어온다거나 피부를 통해 흡수될 때 정확히 어떤 지점에서 신체의 부분이 되는 것인가? 그리고 그 후 정확히 어느 순간부터 신체의 부분이 아닌 것이 되는가? 여기서 정확성은 결코 문제가 될 수 없다. 그것은 단지 어떤 일상적인 규약에 의해 성립될 수 있는 것일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신체의 대한 다음과 같은 정의에 도달한다. 즉, 인간의 신체는 표현의 일차적인 장場이 되는, 세계의 한 영역region이라는 것이다.
예컨대 분노는 신체적인 흥분을 야기하며 이런 흥분은 다시 그에 상응하는 언어 형식이나 그 밖의 어떤 격렬한 행동 양식으로 표출된다. 이렇게 표출되는 신체적 기능의 특수한 종류를 분석하는 일은 생리학의 다양한 부문에 종사하고 있는 생리학자들에게 맡겨 버릴 수 있다. 철학은 전문적인 탐구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 철학의 과제는 탐구할 영역을 지적해 주는 데 있다. 어떤 영역들은 수세기 동안 개척되지 않은 상태로 있다. 효과적인 출발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이들에 대해서는 관심이 집중된 적이 한 번도 없었을지도 모른다.
과학이 성장해감에 따라 인간의 정신은 그 이해의 폭에 있어 위축되고 있다. 19세기는 개미탑을 연상시키는 위대한 성취의 시대였다. 이 시대는 다양한 관심거리와 다양한 가능성들에 대한 민감한 식별력을 지닌 지식인들을 배출하지 못하였다. 이 시대는 비판과 타파로 일관하였다. 그러나 이해하려고 했어야 옳았다. 밖에서 바라볼 때, 이 시대가 갖고 있던 관심의 세부적인 구획setting은 그 시대의 모든 세대에 있어서 깊은 이해와 사소한 구획이 조잡하게 뒤섞여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나 존재의 본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모든 세부적인 오류들 너머에 있으면서, 그 세대에 있어 식별될 수 있는 삶의 향상의 주요 원천이 되고 있는 그런 깊이의 본질적인 특성을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여기에는 또 하나의 조건, 즉 ‘향상이란 것이 있다면’이라는 조건이 첨가되어야 한다.
19세기에, 그 후계자를 낳는 고통의 마지막 국면을 맞았던 르네상스 그 자체는 지성적 관심의 적절한 팽창을 가로막는 여러 한계를 수반하고 있었다. 그것은 문명의 유일한 모태로 간주되는 그리스 학문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유럽이 그리스에게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빚을 지고 있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그리스적 사고는 그리스 - 히브리 - 이집트적 사고로 확장되었을 때조차도, 인간 의식의 주변으로 밀어닥치는 중요성의 다양한 양태들 중에서 오직 하나의 유한한 측면만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