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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조선사 > 조선전기(개국~임진왜란 이전)
· ISBN : 9791156122463
· 쪽수 : 468쪽
· 출판일 : 2023-04-09
책 소개
목차
책머리에
프롤로그
I부 세조 말년: 출곡천교出谷遷喬(1467~1469)
01_원각사의 낙성, 세조 13년 4월 8일
02_이시애의 반란, 세조 13년 5월 16일
03_이시애 난의 토벌에 관한 유자광의 첫 상소
04_유자광의 출생
05_세조의 신임
06_유자광, 병조 정랑이 되다
07_세조, 유자광을 과거 출신으로 만들다
08_남이와 유자광
II부 예종과 성종 초기: 좌충우돌左衝右突(1469~1477)
09_남이를 반역죄로 고발하다
10_예종 사후 왕위계승 문제와 구성군 준
11_유자광, 한명회를 탄핵하다
12_유자광의 한명회 탄핵 상소문
13_성종의 친정 시작과 유자광
14_성종 7년 8월 10일에 올린 유자광의 상소
15_조정의 모든 대신을 적으로 돌리다
III부 성종 친정 초반: 과유불급過猶不及(1478~1485)
16_출신이 다시금 문제되다
17_성종 8년 7월, 승정원 승지들의 반목
18_유자광, 현석규를 탄핵하다
19_거듭 현석규를 탄핵하다
20_유자광의 상소가 빚은 논쟁과 위기
21_도승지 임사홍
22_이심원과 남효온의 상소
23_이심원과 남효온에 대한 훈신들의 반격
24_유자광과 임사홍
25_승자도 패자도 없는 싸움
26_유자광의 복직
IV부 성종 후반기: 맹호복초猛虎伏草(1486~1494)
27_서자 신분이 다시 문제되다
28_중국에 사신으로 가다
29_의주 방어책을 올리다
30_다시 논란이 된 장악원 제조 임명
31_성종의 죽음과 정치적 유산
V부 연산군 전반기: 권토중래捲土重來(1494~1498)
32_모친상 중에 닥친 국상
33_성종의 장례 문제
34_삼년상 후 정계 복귀
35_유자광과 무오사화
36_무술년 옥사, 사림의 기억 조작
37_김일손의 사초를 최초로 공개한 사람
38_무오사화의 추이와 유자광의 역할
39_사화의 여진, 유자광의 ‘죽림칠현’ 공격
VI부 연산군 후반기: 불중지결不重之結(1499~1506)
40_서거정의 수직론과 유자광의 실각
41_수직론을 반박하고 대간과 전면전을 벌이다
42_총신 그러나 균열의 시작
43_폐비 윤씨의 처우를 둘러싼 논란
44_갑자사화의 실상과 성격
45_이세좌와 이극균
46_몸을 낮춘 유자광
VII부 중종 초기: 고성낙일孤城落日(1506~1512)
47_유자광, 반정에 참여하다
48_대간의 총공세와 고립무원의 유자광
49_무오년 사초 문제를 누가 누설했는가?
50_유자광에서 잘못되었습니다
51_희망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52_죽은 후에도 시빗거리
에필로그_영원한 이방인
참고문헌
찾아보기
책속에서
유자광이 국왕의 특별한 은혜로 중앙정계에 진입한 세조 말년은 서얼금고庶孽禁錮를 명시한 《경국대전》이 그 모습을 갖출 즈음이었다. 조선왕조 최초의 〈서얼허통절목〉이 공식적으로 등장한 명종 8년(1553)은 유자광이 죽은 지 40년쯤 후였다. 유자광은 하필 서얼에 대한 차별과 멸시가 심해지던, 일시적 허통도 사실상 매우 어렵던 시기에 정계에서 활동한 것이다.
이시애 난이 터졌던 세조 13년(1467) 당시 유자광은 갑사에 지나지 않았다. 당시 남원에 있던 유자광은 호기 넘치는 상소를 올려 이시애 난을 신속하고도 과감하게 토벌해야 할 필요성을 논하였다. 이 상소는 유자광이 조선왕조의 정치무대에 등장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시애 난 이후의 정국 운영에서도 이 젊은 인재들을 앞세워 한명회나 신숙주와 같은 원로 공신 세력을 견제하려는 정치적 의도도 지니고 있었다. 또한 반란이라는 비상한 사태가 조선왕조 인재 발탁의 정규적 루트를 벗어나 바람직한 인재를 파격적으로 등용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