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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사상가/인문학자
· ISBN : 9791160870442
· 쪽수 : 264쪽
책 소개
목차
역자 서문
서문
제1장 이주(移住)의 연속
제2장 지역 연구
제3장 현장 연구
제4장 비교의 틀
제5장 학제간 연구
제6장 은퇴와 해방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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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책속에서
내가 아일랜드 국적을 취득한 데는 개인뿐 아니라 정치적인 이유도 있었다. 당시 베트남에서는 전쟁이 계속되고 있었고, 인도네시아에서는 반공산주의 군대가 권력을 장악하고 100만 명에 이르는 공산주의자 및 동조자들을 학살한 참이었다. 그런 일을 보면서 나는 좌익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개인적인 이유도 있었다. 동생들은 이미 영국 국적을 유지하기로 결정했는데, 나는 태어났을 때 아일랜드 성인 오고먼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신 아버지를 생각해서라도 아일랜드 국적을 따야 할 것 같았다.
부모나 조부모 중 한 분이 아일랜드에서 출생했다는 걸 증명하면 아일랜드 국적은 쉽게 취득할 수 있었다. (우리 아버지는 당시 할아버지가 근무하신 페낭, 어머니는 런던에서 태어나셨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아일랜드 민족주의자들이 영국에 반항해 일어난 1916년 부활절 봉기 당시 반도(叛徒)들이 출생신고서가 있는 건물을 불태워 버렸다. 하지만 어머니 친구 중에 취미로 워터포드 군의 가계를 연구하는 분이 계셔서 그 분으로부터 위와 같은 내용을 듣게 되었다. 나는 지역 국회의원에게 그 분이 해주신 이야기를 전했고, 그의 도움으로 1967년에 처음으로 아일랜드 여권을 발급받았다.
내가 처음 학교에 간 것은 1942년쯤인 것 같다. 당시 아버지는 샌프란시스코에서 투병 중이셨고, 어머니는 1943년에 여동생을 낳으셨다. 남편과 아기를 돌보느라 너무 힘들었던 어머니는 기운이 넘쳐서 늘 티격태격하는 두 아들을 오늘날 실리콘 밸리의 변방 로스 가토스(Los Gatos) 외곽에 있는 컨트리 스쿨이라는 기숙학교에 보냈다. 북유럽 출신의 엄격한 두 여성이 운영하던 이 학교는 지금도 그 자리에 있지만 도시가 많이 커져서 지금은 거의 시내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다. 미국은 우리에게 아주 낯선 곳이었고, 부모님도 너무 보고 싶고, 체벌도 자주 있었다. 나는 야뇨증이 있어서 교칙에 따라 거의 매일 아침 수업을 빼먹고 이불을 빨았는데, 이것 때문에 애들이 늘 심하게 놀리고 괴롭혔다. 그 학교에서는 배운 게 하나도 없다.
엄청난 분량의 고대 문학을 읽은 것은 또 다른 경험이었다. 두 위대한 비기독교 전통에 푹 빠지는 느낌이랄까. 장학생들은 학교의 우등생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선생님들이 민망해서 빼놓고 가르치는 성적인 장면을 비롯해 거의 모든 자료를 읽을 수 있었다. 그 분들이 중시하는 고대 문화와 우리가 배우는 현대 문화는 서로 많이 달랐다. 학교에서는 몸을 내보이는 걸 부끄러워하거나 옷으로 감추라고 배웠지만, 고대 그리스의 조각들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아주 아름다운 신체들을 당당히 표현하고 있었다. 1950년대 영국에서 동성애는 여전히 범죄 행위였고, 발각되면 몇 년씩 투옥될 수도 있었지만, 고대 신화는 소년이나 청년과 사랑에 빠지는 신들의 이야기로 넘쳐났다. 고대사에는 젊은 두 연인이 용감하게 전쟁에 나가거나 서로의 품에 안겨 죽은 이야기들이 등장했고, 아름다운 사랑의 여신과 활과 화살로 무장하고 그녀를 돕는 장난꾸러기 소년신도 있었다. 그런 이야기에 비해 기독교는 재미없고 편협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