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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동양철학 > 유교철학/주역 > 공자/논어
· ISBN : 9791169191326
· 쪽수 : 605쪽
· 출판일 : 2023-07-20
책 소개
목차
▸머리말
▸서론
제1장 공자와 프랑스 계몽철학자들
제1절 라 모트 르 베예와 ‘중국의 소크라테스’ 공자
1.1. 기독교신앙 없이 구원받은 철인치자로서의 공자제자들
■ 공자철학의 분석
■ 중국과 일본의 문화적 대비와 비교종교학적 불교논의
1.2. 라 모트 르 베예와 베르니에의 공자 추앙
■ 라 모트 르 베예의 공자 추앙
■ 프랑수아 베르니에의 공자 숭배
제2절 무차별적 관용론과 무신론적 공자해석
2.1. 피에르 벨의 무신론적 중국관과 무차별적 관용론
■ 무신론자들의 ‘무제한적 관용과 덕성의 나라’ 중국
■ 극동사회의 종교적 본질: 유신론과 무신론의 초월
■ 공자의 무제한적 관용론
■ 기독교적 불관용에 대한 벨의 비판과 무신론적 불교이해
■ 데카르트주의자들의 공자 비판과 벨의 반격
■ 벨의 무신론적 공자이해
2.2. ‘종교적으로 미적지근한’ 유럽적 관용사회의 비전
■ 종교적으로 ‘미적지근한’ 무신론사회의 개념
■ 무차별적 관용과 유럽의 세속적 근대사회 비전
■ 벨의 마음속에 감춰진 무신론적 극동사회
■ 강제개종 활동에 대한 반대
■ 벨의 무차별적 관용론의 국제적 영향과 파장
2.3. 벨의 중국 동경과 계몽군주론
■ 보댕의 주권론에 대한 제한군주론적 해석과 호평
제3절 유럽중심주의적 위정척사파의 저항
3.1. 페넬롱의 헬레니즘적 반反공자주의
■ 「공자와 소크라테스의 대화」
■ 대화에 대한 분석
■ 『텔레마크』와 페넬롱의 정치적 몰락
3.2. 말브랑쉬의 신新교부철학적 중국성리학 비판
■ 말브랑쉬의 배경과 그의 신학적 철학의 요지
■ 『기독교철학자와 중국철학자의 대화』(1708)의 집필 배경
■ 『대화』의 내용
■ 리理와 기氣 개념의 재再정의를 통한 ‘신의 본성’의 정의
■ ‘리理’를 신과 등치시키려는 말브랑쉬의 기도
■ 『독자를 위한 조언』의 내용
3.3. 몽테스키외의 유럽중심주의와 중국 비방
■ 몽테스키외의 중국비방에 대한 그간의 학술적 평가
■ 몽테스키외 정치철학의 복고반동성
■ 몽테스키외의 자의적 전제정론과 자가당착적 중국전제정론
■ 풍토결정론적 중국전제정론과 그 이론적 파탄
■ 중국인 비방: “지구상에서 가장 사악한 국민”
■ 자기부정
■ 중국의 규범혼합론과 중국선교 불가론
제4절 볼테르의 ‘중국이상국가론’과 혁명적 공자철학
4.1. 중국의 경제·기술에 대한 볼테르의 정보 부족
■ 중국의 과학기술에 대한 볼테르의 무지
■ 진실: 중국의 과학기술적 우위
4.2. 볼테르의 중국 예찬과 몽테스키외 비판
■ 볼테르의 수많은 공자 논의와 중국 논고들
■ 볼테르의 몽테스키외 비판
4.3. 볼테르의 근대기획: 유교적 인도주의와 관용 이념
■ 볼테르의 지극한 공자 숭배
■ 볼테르의 유교적 인도주의와 관용 이념
■ 『예수회 회원들의 중국으로부터의 추방 이야기』의 분석
4.4. 유교문명에 대한 볼테르의 찬양과 변호
■ 볼테르의 유신론적 중국관
■ 볼테르의 중국선교 폐지론과 유교적 유럽혁명의 이념
■ 『중국의 고아』와 유교문명 예찬
제5절 ‘유럽의 공자’ 케네와 근대경제학의 탄생
25.1. 근대적 중농주의 자유경제론의 창시자 케네
■ 케네의 중농주의 경제학과 마르크스의 평가
■ 케네의 중농주의 자유경제론과 중국경제의 관계
5.2. 케네의 중국모델과 중농주의적 자유경제론
■ 케네의 경제연구와 중국문화와의 접촉
■ 『경제표』의 모델로서의 중국경제
■ 튀르고의 중국인들과 『부의 형성과 분배에 관한 성찰』
■ 케네의 중농주의 모델은 중국이라는 것에 대한 정황증거
■ ‘자연의 도’(무위이치)와 ‘레세페르’의 복잡한 관계
■ 케네의 자유시장 개념에 영향을 미쳤을 여러 서적들
5.3. 케네의 『경제표』와 그 분석
■ ‘경제표’
■ 자유시장을 통한 물가안정의 절대적 요청
■ ‘경제표’의 경제정책의 중국적 유래
5.4. 『중국의 계몽전제정』과 유럽 대개혁: 유럽제국의 중국화
■ 케네가 『중국의 계몽전제정』에서 직접 인용하는 주요서적들
■ 유럽 ‘계몽군주정’의 모델로서의 중국의 ‘법치적 전제정’
■ 중국예찬
■ 공자경전과 탈脫희랍적 중국화의 소망
■ 중국의 자유상공업에 대한 예찬
■ 중국인들의 ‘사기성’ 악명에 대한 변호
■ 황제의 권력에 대한 중국헌법의 견제장치들
■ 중국의 과잉인구에 대한 케네의 오판과 그릇된 방책 제시
■ ‘프랑스의 중국화’로서의 프랑스 대개혁론
■ 중국은 유럽계몽의 모델이자 케네의 모델
제6절 루소의 중국 칭송과 비방의 자기분열
6.1. 루소의 중국 비방과 자기분열증
■ 중국의 평화주의와 군사적 허약성에 대한 루소의 비난
■ 전쟁기술과 무용武勇의 고양은 ‘문명의 소산’이 아니라 ‘전쟁의 산물’
■ 중국의 평화주의
■ 루소의 ‘복고적 군국주의’와 중국 평화주의에 대한 비방
6.2. 루소의 중국 찬양
■ 『정치경제론』과 『에밀』에서의 중국찬양
■ 루소를 단순한 중국비방자나 중국모방자로 보는 오류
6.3. 루소의 정치경제론과 중국의 영향
■ 가정과 국가의 구분론
■ 루소의 자기모순: 가정비유적 국가론
■ 루소의 ‘중국 표절’
제2장 ‘필로소프들’의 공자숭배와 중국열광
제1절 중농주의자들과 기타 중국예찬자들
1.1. 르 마키 다르장송의 『중국인 편지』
■ 굴절과 갑론을박
■ 다르장송의 『중국인 편지』
1.2. 뒤부르의 『유럽의 중국 스파이』와 구다르의 『중국 스파이』
■ 뒤부르의 『유럽의 중국 스파이』
■ 구다르의 『중국 스파이』와 프랑스대혁명의 예감
1.3. 니콜라 보도의 『경제철학의 초보입문』
1.4. 니콜라-가브리엘 르클레르크의 『대우大禹와 공자』
■ 중농주의자 르클레르크의 『대우大禹와 공자』
1.5. 에티엔느 드 실루에트의 『중국의 저울』
■ 실루에트의 『중국인의 통치와 도덕의 일반이념』(1729)
■ 『중국의 저울, 또는 한 중국인의 교육에 관한 편지』(1764)
1.6. 멜롱의 『상업평론』과 푸아브르의 『어느 철학자의 여행』
■ 프랑수아 멜롱의 『상업에 관한 정치평론』
■ 피에르 푸아브르의 『어느 철학자의 여행』
제2절 디드로와 엘베시우스
2.1. 드니 디드로의 공자 찬양
2.2. 클로드 엘베시우스의 중국정치 찬미
■ 『정신론』(1763)과 중국 찬양
■ 입장 변화
▸맺음말
▸참고문헌
▸찾아보기
저자소개
책속에서
머리말
영국 식자들은 공자철학과 중국문화예술을 공공연하게 찬양하며 수용하기도 했지만, 거센 이교논란에 오갈이 든 적잖은 영국철학자들은 공자철학을 몰래 표절해서 자기의 이론으로 둔갑시켜 독창적 이론인 양 발표했다. 공자와 공자철학을 공공연하게 예찬한 솔직하고 용감한 영국 철학자들은 존 웹, 나다나엘 빈센트, 아이작 보시어스, 윌리엄 템플, 버젤, 존 트렝커드, 토마스 고든, 매슈 틴들, 토마스 첩(Thomas Chubb), 유스터스 버젤, 데이비드 흄 등이었다. 표절자들도 못지않게 많았다. 베이컨, 밀턴, 컴벌랜드, 로크, 섀프츠베리, 허치슨, 아담 스미스 등이 그들이다. 흄도 그의 도덕철학의 많은 부분에서 우리가 그 시대를 고려할 때 양해할 수 있는 ‘불가피한’ 부분적 표절자였다. 이런 까닭에 필자는 『근대 영국의 공자 숭배와 모럴리스트들(상·하)』(2020·2023)에서 베이컨, 밀턴, 로크, 섀프츠베리, 흄, 스미스 등의 공자학습과 극동문화 수용정도를 밝히기 위해 그들의 독서·학습·교육과정, 서신이나 미셀러니와 잡문들, 심지어 개인 장서까지도 파헤쳐야만 했다.
그러나 프랑스인들은 영국인과 달랐다. 프랑스인들은 그 화끈한 민족성대로 모두가 다 공자를 공공연하게 찬양하고, 그의 철학을 큰 소리로 연호했다. 공자를 비판하는 경우에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프랑스 철학자들 중에는 전략적 고려에서 공자나 중국에 대한 입장을 잠시 숨기고 그 공표를 유예하는 경우나 오락가락한 경우는 있었지만 이교논란을 피하기 위해 비겁하게 공자로부터 배운 사실을 몰래 감추거나 공자를 슬그머니 표절하는 철학자는 한 명도 없었다. 프랑수와 케네는 공자나 중국에 대한 열광적 동조 입장을 홍보전략적 고려에서 잠시 숨겼지만 나중에 적절한 시기가 되자 공자와 중국에 대한 찬양을 공개적으로 몽땅 쏟아놓았다. 유일하게 루소만이 중국문화에 대해 찬양과 비방을 오가며 ‘양가치적’ 또는 ‘정신분열증적’ 태도를 보였다. 거의 모든 프랑스 철학자들이 이렇게 자신들의 입장을 노골적으로 밝혔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극동과 공자의 영향을 살피기 위해 그들의 개인장서나 편지 뭉치, 교육·학습과정까지 샅샅이 뒤질 필요는 없었다.
프랑스에 대한 공자철학과 극동문화의 영향도 영국에 대한 영향과 달랐다. 영국을 혁신해서 근대화한 극동의 영구적 영향은 태생적 자유·평등사상, 탈脫기독교적·탈희랍적·세속적 윤리도덕, 혁명권(저항권)이론, 신사紳士이념, 내각제, 공무원임용고시와 관료제 등이었던 반면, 프랑스에 대한 극동의 근본적 근대화 영향은 인간사회의 인간화(탈脫종교화·탈脫주술화·세속화), 자유시장, 농본주의(중농주의), 신분 철폐, 보편적 관용사상, 탈脫기독교적 인도주의, 세계주의, 예술(로코코) 등의 분야였다. 여기에 『근대 독일과 스위스의 유교적 계몽주의』에서 다루는 독일·오스트리아·스위스가 극동으로부터 수용한 또 다른 중국적 근대요소들(복지국가, 관료제, 필기시험, 귀족신분의 무력화와 퇴출 등)이 보태졌다. 물론 세 나라가 활발한 사상·문화교류 속에서 중국으로부터 앞서거니 뒤서거나 받아들인 정치적·경제적·문화적 영향들은 상호 융해되어 ‘유럽적 근대’를 만들어냈고, 이를 바탕으로 유교제국의 ‘원형적 근대’보다 더 ‘높은 근대’로 도약했다.
이 책에서는 라 모트 르 베예, 베르니에, 라 루베르, 테브노 등이 17세기에 ‘계몽의 파종자들’, 그리고 피에르 벨·볼테르·케네·루소·다르장송·뒤부르·구다르·보도·르클레르크·실루에트·멜롱·푸아브르·디드로·엘베시우스 등의 ‘유교적 근대화론’으로서의 프랑스 계몽철학이 본격적으로 논의될 뿐만 아니라, 위정척사파적 반反계몽주의, 즉 페넬롱·말브랑쉬·몽테스키외 등의 ‘몽매주의’도 본격 분석된다. 아무쪼록 독자들이 이 프랑스 계몽주의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통해 17-18세기 유럽의 근대화 이념의 형성과정에 대한 극동의 영향이 얼마나 강력하고 또 ‘본질구성적’이었는지, 그리고 그들의 열정과 동경이 극동을 향해 얼마나 뜨겁게 들끓었는지, 그리고 공자철학과 극동문화에 대한 그들의 환상과 오해가 어떤 것들이었는지를 밝게 알기를 바랄 따름이다. 나아가 이를 통해 우리가 무시하거나 깔보았던 공자철학과 유교문명이 세계적 비교 차원에서 얼마나 위대한 철학인지, 그리고 얼마나 보편타당한 문명인지를 반사적으로 깨닫게 되기를 기원한다.
『공자철학과 서구 계몽주의의 기원』과 속편 『근대 프랑스의 공자열광과 계몽철학』, 『근대 영국의 공자 숭배와 모럴리스트들(상․하권)』, 『근대 독일과 스위스의 유교적 계몽주의』, 『공자와 미국의 건국(상․하권)』은 공자철학의 서천과 계몽주의의 유교적 기원 및 근대국가의 유교적 본질을 파헤친 5부작이다. 이 책 『근대 프랑스의 공자열광과 계몽철학』은 5부작의 다른 책들과 통시적·공시적으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부디 서양 근대문명의 유교적 본질 측면을 이해하는 데 이 5부작이 필수적이고 충분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트리고와 마테오리치, 기타 기행문을 통해 전해진 공자철학을 최초로 양심적으로 설명하고 기독교철학과 관련시켜 이해하고 높이 평가한 17세기 서양 철학자는 이신론적理神論的 자유사상가로 불리는 라 모트 르 베예(Franςois de La Mothe le Vayer, 1588-1672)였다. 그는 당대의 대철학자로서 국제적으로 고명했고, 무엇보다도 당시 전 유럽에서 위세를 떨치던 ‘태양왕’ 루이 14세의 왕사王師였다.
이처럼 고명한 학문적 권위와 강력한 정치적 영향력을 겸비한 라 모트 르 베예는 기독교를 새롭게 이해하는 데 공자의 이신론적(자연종교적)·본성론적 도덕철학이 도움을 줄 수 있다고 기대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공자를 소크라테스와 같은 선택받은 철학자들의 반열에 올려놓고 공자철학을 높이 평가한 “유럽 최초의 걸출한 사상가”였다.
라 모트 르 베예는 리셀리외의 간청에 따라 원죄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은총 없으면 도덕적 생활을 영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얀세니스트 사상과 대결하며 불교와 유교의 독트린을 찬양했다. 계시된 진리와 교회의 비준보다 일차적으로 인간의 경험과 지성적 가치들에 기초한 본성적 도덕에 대한 그의 의무의식은 프랑스 교회의 정치사회적 지위에 대한 일종의 도전이었다.
1.1. 기독교신앙 없이 구원받은 철인치자로서의 공자제자들
라 모트 르 베예는 1642년에 출간한 자신의 저서 이교도들의 덕성에 관하여(De La vertu des payens)에서 ‘자연법의 국가’, ‘왕의 국가’, ‘그리스의 국가’를 논한 데 이어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디오게네스, 제논, 피타고라스, 에피쿠로스, 피론 등 고대그리스 이교철학자들을 살펴본다. 그는 이 논의에서 소크라테스·플라톤·피타고라스·세네카를 선택하고, 기타 철학자들에 대해서는 기대를 접는다. 하지만 그는 이어지는 절에서 공자를 “중국의 소크라테스(le Socrate de la Chine)”로 특대하고 중국인들 사이에서의 기독교 선교(1615)를 쓴 트리고(마테오리치) 신부를 거듭 거론하며 공자의 도덕철학과 중국의 유자儒者학파를 상론한다.
■ 공자철학의 분석
라 모트 르 베예는 이교도들의 덕성에 관하여의 제2부 「공자, 중국의 소크라테스에 관하여(De Confutius, le Socrate de la Chine)」라는 절에서 공자철학을 다룬다. 일단 그는 아우구스티누스를 원용해 기독교세계에서 훌륭한 이교철학을 긍정적으로 검토해야 하고 또 해도 되는 토대를 마련한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신국론에서 어떤 철학이 우리 종교와 일치성을 가장 많이 갖는다고 말할 수 있는지를 알기 위해 다양한 철학 학파들을 검토하면서, 자신에게 잘 맞는 일반적 판단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그는 그리스를 선호하지 않고 그리스 철학자들이 자신들의 지혜를 숭상하게 하는 지역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 그러면서 그는 스키타이·인도·페르시아·이집트, 또는 다른 어떤 나라의 사람이든 간에 만물의 창조주인 유일신의 권능과 선을 가르친 모든 사람은 기독교적 신앙의 빛에 가장 가깝게 접근한 사람들로서 다른 사람들보다 선호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바로 내가 많은 그리스 사람들에 대해 언급한 다음 이어서 한 중국인에 대해 말하는 이유이다.
그런데 르 베예는 이미 제1부 「왕의 국가(De le’Estat de la Loy)」 절에서 트리고와 마테오리치의 보고를 근거로 ‘중국인이 자연법에 대한 준수를 통해 구원받았음’을 미리 인정했었다.
트리고 신부는 중국의 선교사들 중 하나인 마테오리치 신부의 비망록에 따라 많은 덕스러운 중국인들이 단순한 자연법의 준수와 그들이 하늘과 땅의 창조주로 인정하는 유일신의 특별한 원조에 의해 드물지 않게 구원받았음을 의심치 않는다.
라 모트 르 베예는 많은 중국인들이 기독교 없이도 단순한 자연법 준수에 의해 기독교도들과 유사하게 구원받았다는 것을 화두로 공자철학의 평가를 개시한다.
이 신부들(트리고와 마테오리치)이 확신하는 것처럼, 내가 이 책의 제1부에서 이미 지적한 바는 적잖은 중국인들이 자연법의 순박한 준수 속에서 도덕적으로 잘 살았고 드물지 않게 그들의 창조자의 자비와 특별한 지원으로 영원한 구원을 얻었다는 점이다. 트리고 신부가 자신의 이 견해에 대는 근거는 다른 모든 민족 가운데 중국민족이 겉으로 보기에 자연본성적 빛(la lumiere naturelle)을 가장 잘 따를 수 있게 되어 있고, 종교문제에서 오류를 가장 덜 범한 민족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그리스·로마·이집트 사람들이 이전에 종교의식을 통해 어떤 초자연적인 일을 이루었는지를 알고 있다. 반대로 중국 사람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자신들이 상제上帝(le Roi du Ciel)라고 부르는 유일신만을 인정했다. 이것을 우리는 4,000년 이상 된 그들의 연대기를 통해 알 수 있으며, 중국인들 가운데 상제를 배척한 이교도는 없었다. 나머지 행동들은 바른 이성이 규정하는 것과 가장 일치한다.
르 베예는 이어 중국에서 ‘반신半神(demy-dieus)’으로 섬겨지는 공자의 지위를 논한다.
동양이 가졌던 가장 선한 사람, 그리고 가장 위대한 철학자는 공자라고 불렸던 중국 사람이었으며, 중국 사람들은 공자에 대한 숭배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어서 공자상像을 몇몇 제자들의 상과 함께 사당에 세워 놓고 있다. 그렇다고 중국 사람들이 공자를 신으로 여기지는 않으며, 공자에게 기도를 드리지도 않는다. 하지만 중국 사람들은 상제(le souverain Estre) 다음으로 자신들이 성인들이라고 믿는 위대한 인물들을 그런 식으로 공경하며 반신半神으로 여긴다.
르 베예는 그가 공자를 ‘중국의 소크라테스’라고 부르게 된 두세 가지 이유를 밝힌다.
이 철학자의 삶에 대한 여러 정황들 가운데 내가 공자를 ‘중국의 소크라테스’라고 자신 있게 부를 수 있는 두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공자가 세상에 태어난 시기로서 그리스 소크라테스의 시기와 거의 다르지 않다. 트리고 신부의 계산에 따르면 공자는 기원전 551년에 태어나 70년 이상 살았으므로 공자의 사망 시기가 소크라테스 세대의 시기와 일치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거의 말할 것이 없다. 여기서 나오는 결론은 같은 세기에 중국과 그리스의 모든 이교도 중에서 가장 덕스러운 두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들의 또 다른 공통점은 지금 우리에게 더욱 와 닿는 도덕을 매우 주도면밀하게 선양하기 위해 별로 유용하지 않은 학문들을 무시했다는 점이다. 공자가 소크라테스와 마찬가지로 도덕에 권위를 부여함으로써 하늘의 철학을 땅으로 내려오게 했다고 말할 수 있듯이, 물리학·천문학 및 유사한 학문들에 대한 호기심은 당시 이들에 의해 거의 무시되었다.
첫 번째 이유는 소크라테스가 9세였을 때 공자가 사망해서 삶의 시기가 조금은 겹친다는 말이다. 두 번째 이유는 따지고 보면 아주 중요한 말인데, 그것은 공자가 지식의 중심을 사물에 대한 앎인 ‘지물知物’에서 사람에 대한 앎인 ‘지인知人’으로 지식혁명을 일으킨 것과 소크라테스가 자연철학에서 ‘너 자신을 알라’는 구호로써 인간의 도덕에 대한 앎으로 선회한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공자와 소크라테스의 이 ‘철학혁명’의 공통점은 나중에 윌리엄 템플이 다시 논하게 된다.
르 베예는 그렇다고 중국인들이 기하학·산술·의학·점성학과 자연사물의 연구 및 예술 등을 소홀히 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이런 분야도 중국에서는 발달해 있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공자 이래 중국에서 윤리학이 다른 모든 학문에 대해 점하는 우월적 지위를 설명한다.
공자는 사람들에게 윤리학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고 자신보다 앞선 철학자들의 아름다운 모든 문장을 4권으로 만들고 나서 자기 나름의 사상을 다섯 번째 책으로 편찬했다. 이렇게 해서 공자는 다른 모든 학문 위에다 도덕과학(la science des moeurs)을 올려놓았다. 공자 이후의 사람들은 도덕에 관해 연구해야만 중국에서 학사나 박사가 될 수 있었다. 중국에 3개의 철학파가 있음은 분명한 사실인데 ‘선비들의 학파(儒家)’라고 불리는 공자학파는 다른 두 개의 학파보다 우월하므로 이 제국에서 훌륭한 모든 사람은 공자의 학문을 직업으로 삼고 있다.
르 베예는 트리고와 마테오리치가 준 정보에 따라 중국제국이 철인치자가 다스리는 나라임을 확신하고 이를 아주 특이한 점으로 간주한다.
내가 또한 매우 특이하게 여기는 점은 이 철학자의 제자들이 지식과 현명의 특별한 명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국법에 의해 이들만이 정사를 맡고, 왕국의 권위를 바탕으로 절대적 권력을 행사하는 만다린·관료·문인들은 이 학파에서만 배출되었다는 점이다. 군대의 통솔에 있어서도 다른 모든 학파는 이 공자학파보다 열등하기 때문에, 명령을 내리는 사람들은 이 학파의 철학자들이며, 모든 부대에서 이들의 처분을 영예롭게 실행한다. 확실히, 지배권을 철학의 손 안에 위치시키고 무력을 평화적으로 이성에 복종하게 만든 것은 공자에게 작은 영광이 아니다. 왕들에게 철학하게 하고 철학자들이 지배하게 하는 것보다 더 큰 그 무슨 행운을 도대체 바랄 수 있을 것인가? 이런 보기 드문 정신은 중국 안의 이 두 가지 지복至福을 결합해야 한다. 공자의 덕목으로 최고 주권자 자신도 그의 가르침에 맞지 않는 어떤 명령도 내리지 않고, 왕국의 모든 관리와 마찬가지로 모든 치자가 반드시 공자의 제자들이기 때문에, 아주 커다란 이 제국을 지배하는 사람들은 철학자들밖에 없다고 말할 수 있다.
르 베예는 인덕仁德을 제일의 덕목으로 치는 공자의 경험주의적 철학자들을, 소크라테스·플라톤이 말하는, 지혜(소피아)를 제일의 덕성으로 치는 합리주의적 철학자로 오인하고 중국의 ‘군자’(군주·신사 위정자)를 플라톤의 ‘철인치자’로 만들어놓고 있다. 그러나 이런 약간의 오해를 제외하면 그는 대체로 중국과 공자제자들의 정치적 역할에 대한 개념적 이해에서 곧은길을 따라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