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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영미소설
· ISBN : 9791173320651
· 쪽수 : 572쪽
· 출판일 : 2025-02-24
책 소개
목차
서문
1부
1 피픽 나타나다
2 내 것이 아닌 삶
3 우리
4 유대인스러운 심술
5 내가 피픽
2부
6 그의 이야기
7 그녀의 이야기
8 통제할 수 없는 현실
9 위조, 편집증, 역정보, 거짓말
10 진심으로 형제를 미워하지 말라
에필로그 - 대체로 말은 현실을 망가뜨릴 뿐
독자에게 보내는 말
리뷰
책속에서
킹 데이비드 호텔의 스위트룸 511호에서 나와 통화했던 필립 로스, 절대 나일 수 없는 그 필립 로스의 의도가 정확히 무엇인지 나는 전혀 알 수 없었다. 그가 내 이름을 물었을 때 내가 곧바로 전화를 끊어버렸기 때문이다. 애당초 전화를 하지 말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일에 신경을 쓸 이유가 없어. 당황하지 마. 웃기잖아. 모르긴 몰라도, 아마 동명이인일 거야. 설사 그게 아니더라도, 예루살렘에서 그자가 내 행세를 하고 있다 해도, 굳이 뭘 어떻게 해보려고 할 필요는 없어. 내가 끼어들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이 눈치챌 테니까. 이미 앱터와 아하론이 알아챘잖아. 이스라엘에는 나를 아는 사람이 많으니, 결국 놈은 정체가 들통나서 체포될 거야. 놈이 나한테 무슨 짓을 할 수 있겠어?
“물론입니다. 홀로코스트 직후 이스라엘은 유대인들이 그 참혹한 일의 충격에서 회복할 수 있는 유대인 병원이었습니다. 홀로코스트 때 워낙 끔찍하고 비인간적인 일을 당했으니, 유대인의 정신과 유대인들 자신이 분노, 굴욕, 슬픔의 유산에 완전히 무릎 꿇었다 해도 놀랄 일은 아니었을 거예요.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정말로 회복했거든요. 아직 1세기도 지나지 않았는데. 기적, 아니 기적보다 더한 일이었습니다. 이제 유대인의 회복이 기정사실이 되었으니, 우리의 진정한 삶과 진정한 고향, 조상들이 살던 유럽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습니다.”
“진정한 고향?” 내가 이 전화를 할까 말까 고민했다는 사실을 이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퍽이나 진정한 고향이네요.”
“내가 되는 대로 아무 말이나 하는 게 아닙니다.” 놈이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대다수 유대인은 중세 이후 유럽에 있었습니다. 우리가 유대인 문화라고 생각하는 거의 모든 것은 유럽에서 그리스도교인들과 함께 살던 수 세기 동안 생겨난 거예요.”
그는 삼십 분 동안 일산화탄소를 뭉클뭉클 흘려보내면서 비명이 잦아들기를 기다렸다가, 살아 있는 사람들을 들여보내 죽은 자들을 끌어내고 다음 사람들을 위해 방을 치우게 했다. “그 쓰레기들 빨리 치워.” 그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실려 오던 시절에는 하루에 열 번, 열다섯 번씩 이런 일이 되풀이되었다. 술기운 없이 정신이 맑을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항상 활기가 넘쳤다. 기운차고 건강한 청년. 훌륭한 일꾼. 한 번도 아픈 적이 없고, 심지어 술을 마셔도 재빠른 움직임에는 변함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더 빨라졌다. 쇠파이프로 남자들을 후려치고, 임신한 여자의 배를 칼로 가르고, 눈을 파내고, 채찍질을 하고, 귀에 못을 박았다. 한 번은 송곳으로 누군가의 엉덩이에 구멍을 뚫기도 했다. 그날은 그냥 그러고 싶어서 그렇게 했다. 고함을 지를 때는 우크라이나어로. 우크라이나어를 모르는 사람의 머리에는 총알을 박아주었다. 정말 굉장한 시절이었다! 그런 시절은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거야! 겨우 스물두 살의 나이로 그는 그곳의 주인이었다. 아무나 붙잡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채찍이든, 권총이든, 칼이든, 곤봉이든 아무거나 휘두르면서 젊고 건강하고 강한 존재가 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