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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외국에세이
· ISBN : 9791185153124
· 쪽수 : 224쪽
· 출판일 : 2017-01-17
책 소개
목차
11 연필 | 15 지우개 | 19 볼펜 | 23 연필깎이 | 26 크레용 | 30 원고지 | 34 공책 | 38 펜촉 | 42 컴퍼스 | 46 잉크 | 50 만년필 | 54 풀 | 58 분필 | 62 주머니칼 | 66 자 | 70 초록빛 | 72 가위 | 76 수첩 | 80 가제본 | 82 압정 | 86 동그란 고무줄 | 90 압지 | 94 책받침 | 98 문진 | 102 봉투 | 106 편지지 | 110 별보배조개 | 112 카본지 | 116 아일릿펀치 | 120 스탬프대 | 124 붓 | 128 셀로판테이프 | 132 호치키스 | 136 앨범 | 139 벼루 | 143 인주 | 147 일곱 가지 도구 | 149 종이칼 |152 라벨기 | 156 스크랩북 | 160 책상 | 164 책장 | 168 서랍 | 170 등사판 | 174 필통 | 177 색연필 | 180 문구점에 없는 문방구 | 182 일기장 | 186 원통 | 190 편지꽂이 | 193 클립 | 197 명함 상자 | 201 주판 | 205 돋보기 | 208 지구본 | 212 문화를 지키는 힘
216 저자 후기
220 역자 후기
리뷰
책속에서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지우개의 수난은 숙명인가
학교에 다니는 아이의 필통 안 지우개를 떠올려보자. 지우개가 지우개답게 쓰이는 경우는 과연 얼마나 될까. 지우개 위에 얼굴을 그려놓은 정도는 그나마 낫다. 구멍을 뚫고 연필심을 몇 번씩 찌른 흔적이 마맛자국처럼 남아 있거나 어지간히 분한 일이라도 있었는지 물어뜯은 듯한 이빨 자국이 나 있기도 하다. 이렇게 지우개를 제 쓰임새대로 사용하지 않는 것은 아이들 세계만은 아니지 싶다. 전에 책을 낼 때 제법 나이가 든 출판사 사람과 레이아웃을 상의한 적이 있다. 그때 그가 가방에서 꺼낸 셀룰로이드 필통 안에는 자, 연필, 가위 따위와 함께 지우개가 들어 있었다. 로이드 필통 안에는 자, 연필, 가위 따위와 함께 지우개가 들어 있었다. 서로 의논하며 레이아웃 용지에 연필로 선을 긋고 잘못 그으면 지우개로 지우는 일이 끝나고 그가 돌아간 뒤 지우개가 굴러다니기에 다음에 만날 때 돌려주려고 주웠다. 그랬더니 아이들과 똑같이 연필로 찌른 주사 자국이 있었고 전화번호로 보이는 숫자도 적혀 있었다. 뒤쪽에는 편집부에 일하는 사람이 모델인지 아가씨 옆얼굴이 그려져 있었다. 순간 웃음이 터질 것 같았다. 지우개는 잘못 쓴 부분을 지워주는 고마운 물건임에도 장난질과 괴롭힘을 당하는 숙명을 짊어지고 있구나. 적당한 부드러움과 크기, 저렴한 가격 때문에 더 괴롭히기 쉬운 걸까.
지우개
나도 새로운 곡선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요 얼마 전에 방구석에 쌓아둔 잡동사니 상자를 꺼내 봤더니 판지로 만든 구름자가 나왔다. 전쟁이 끝난 뒤 혹은 전쟁 중에 물자가 부족하던 시기에 산 듯한데 쓸데없는 낭비였다. 왜냐하면 이 나이가 될 때까지 나는 구름자를 써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게 있다는 사실은 어린 시절부터 알았지만 실제로 구름자가 필요할 만한 기회는 없었다. 그림을 그리다가 재미있는 곡선을 그리고 싶다는 욕구가 생겨도 구름자를 사용하려고 한 적이 없었다. 앞으로도 구름자를 쓸 일은 어쩐지 없을 것 같지만 생각해낸 사람에 대해서는 조사해보고 싶다. 오히려 써보고 싶은 것은 자재곡선자다. 이것도 그림을 그리면서 생기는 일인데 곡선을 그리다 보면 무심코 내 버릇이 나오는 통에 거기서 벗어나 새로운 곡선을 그리기가 꽤 어렵다. 그럴 때 이 특수한 자를 쓰면 새로운 곡선을 발견할 수 있을까.
자
초록빛 햇살 담은 내가 만든 포도주 병 펜꽂이
한번은 멀리서 친구가 찾아왔다. 오랜만에 보는 탓인지 전보다 조금 서먹했다. 친구는 내가 권한 포도주를 사양해가며 마시다가 이건 나 같은 사람에게는 너무 고급스럽다고 말하더니 결국 혼자 한 병을 마시고는 얼근해져서 돌아갔다. 이 포도주 병을 씻어 바닥에서 8센티미터 높이에서 자른 뒤 단면을 줄로 정성껏 문질러 펜꽂이로 만들었다. 벌써 십몇 년 전 일이다. “쓴 글자는 남는다Literae scriptae manent”란 나를 깨우치는 말을 갖다 붙였다. 놓아둔 자리도 거의 바꾸지 않았으니 날씨가 좋으면 아침마다 펜꽂이에 햇빛이 비쳐 똑같은 초록빛을 보여줬을 텐데 어째서 또 갑자기 깨닫고 감동한 것인지.
초록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