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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외국에세이
· ISBN : 9791185153216
· 쪽수 : 240쪽
· 출판일 : 2018-05-08
책 소개
목차
Ⅰ 개는 인생의 짝꿍
오직 한 명의 말벗
검둥이와의 이별
개를 기르지 못하는 불행
개에게 배우다
개는 인간을 사랑한다
개는 주인의 병을 걱정해준다
속옷 도둑과 똥개
‘흰둥이’와 ‘먹보’와의 나날들
글자 쓰는 개의 슬픔
먹보야, 어디에 갔니?
이상한 개의 두 집 살림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Ⅱ 고양이는 흥미로워
아시나요? 고양이 집회
기특한 고양이 아내
가엾은 암고양이의 최후
Ⅲ 원숭이는 연인
새빨간 얼굴의 원숭이는……
원숭이의 로맨티시즘
원숭이가 나에게로 왔다
왠지 원숭이는 내게 반해버린다
원숭이와의 슬픈 추억
Ⅳ 내 전생은 너구리
당신은 여우형인가, 너구리형인가
너구리 일가
자화상: 너구리가 붙어 있는
Ⅴ 내 대신 죽은 구관조
구관조와 고독한 작가
수술 이후…… 구관조는?
Ⅵ 외로운 새들
소아적 호기심
작은 새의 눈
집오리는 날씨상담새
Ⅶ 삶을 채색하는 생물
왜 판다만 인기가 있을까
말이 깔볼 때
한 마리의 송사리
바이러스는 인류의 자기조절자
벌레의 웃음소리
Ⅷ 식물도 마음이 있다
시들었을 줄기에서
나무들과 이야기할 수 있다
생명의 온기
식물의 신비한 힘
끝내며 내세에는 사슴이 되렵니다
후기 슈사쿠 문학의 원점, 동물 _ 가토 무네야
해설 동물은 남편의 형제였다 _ 엔도 준코
연보
출처
리뷰
책속에서
개는 인간의 슬픔을 달래준다
양친의 사이가 차츰 나빠져 이제껏 즐거웠던 가정이 저물녘 갑작스레 해가 기운 것처럼 어두웠다. 소년이던 그때는 이유를 전혀 알지 못했다. 다만 그저 당혹스러워 숨죽인 채 하루하루를 보냈다. 아버지가 상냥하게 대해주면 어머니를 배신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고, 어머니에게 응석을 부리면 아버지를 거스르는 것 같아 신경이 쓰였다. 그렇다고 친구들이나 선생님에게 마음의 고통을 상담할 수는 없었다. 말한들 또래 아이들이 이해할 리 만무했다. 학교를 가고 오는 길, 항상 내 곁을 어슬렁어슬렁 따라다니던 검둥이. 어두컴컴한 집에 들어가기 싫어 내가 언제까지나 담에 낙서를 하거나 거미집을 엿보고 있으면 그도 멈춰 서서 하품을 하거나 다리로 귀를 긁으며 기다렸다. “집에 가고 싶지 않아!” 검둥이한테만은 나의 슬픔을 털어놨다. “어째서 이렇게 된 걸까?” 그는 눈물 어린 눈으로 지긋이 바라보며 대답했다. “어쩔 수 없어요. 인생이란 그런 거니까요.”
동물도 사랑을 하고 연애를 한다
종종 길에서 지나가는 여자를 겁탈한 강간마를 가리켜 ‘야수 같다’거나 ‘짐승 행위’라고 하는데, 만약 하타 씨의 말이 맞는다면 동물에게 몹시 무례한 표현이지 않은가. 왜냐하면 동물 쪽이 본능을 그대로 따르지 않고 확실히 자신의 취향에 따라 사랑하는 상대를 선택하기 때문이다. “정말인가요?”라고 나는 무심코 소리치고 말았다.
“요사이 인간 쪽이 상대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육체관계를 맺는 것 같습니다. 동물들 사이에는 그런 일이 없나요?”
“없습니다.”
여러분, 들으셨나요? 견공이건 묘공이건 간에, 너구리건 쥐건 간에 제대로 연애 감정이 생겨야 암컷에게 접근합니다. 지금으로서는 인간 쪽이 더 엉망진창인 게 아닐까요? 정말이지 한심한 이야기네요. 하타 씨의 말에 따르면 연애 감정뿐만 아니라 암수 한 쌍으로 서식하는 너구리 같은 동물은 아내가 죽으면 슬픈 나머지 남편은 아무것도 먹지 않아 쇠약해진 끝에 죽기도 한단다.
세상에! 이 속옷들이 다 뭐야?
먹보 녀석은 전부터 목줄을 풀고 도주했다가 남의 집에서 헌 운동화 한 짝이나 장난감 따위를 곧잘 물고 돌아와서는 개집 옆에 숨겨두는 습성이 있었다. 때로는 그걸 코끝에 흙을 잔뜩 묻혀가며 땅에 묻어두는 이상한 버릇도. ‘그렇다면 이 녀석은 두 장의 팬티 외에 몇 장 더 물고 돌아와 땅에 묻었는지도 모른다.’ 돌연 끔찍한 불안이 급행열차처럼 전속력으로 마음속을 통과했다. 요즘 근처에서 여자 속옷을 훔치는 치한이 출몰한다는 소문이 있는데, 어쩌면 먹보 녀석의 짓이지 않을까. 기다려, 이 개가 탈주한 건 어제 하루뿐으로 그전까지는 목줄에 묶여 있었기에 그럴 일 없다는 모순된 생각이 머릿속에서 이리저리 엇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