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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한국고대~고려시대 > 한국고대사 > 한국고대사 일반
· ISBN : 9791185614120
· 쪽수 : 480쪽
· 출판일 : 2025-12-05
책 소개
목차
발간사
서문
Ⅰ. 고조선을 찾아서
1. 고조선 위치와 한국 문명
2. 왕검성을 찾는 방법
Ⅱ. 원전(原典)을 벗어난 기존 학설들
1. 고조선 중심이 한반도가 될 수 없는 이유
2. 고조선 중심이 요녕이나 하북성 동북이 될 수 없는 이유
Ⅲ. 황하에 있었던 고조선 국경 갈석산(碣石山)
1. 중국과 한국의 갈석(碣石) 위치 주장
(1) 중국의 갈석(碣石) 위치 주장
(2) 한국의 갈석(碣石) 위치 주장
2. 갈석산 관련 제설(諸說)의 문제점
(1) 평양 낙랑군 수성현 갈석산 설(說)
(2) 하북성 진황도시 창려현 인근 갈석산 설(說)
(3) 하북성 보정시 내원현 백석산 설(說)
(4) 하북성 석가장시(石家莊市) 고성구(藁城區) 무차산(無此山) 설(說)
(5) 산동성 빈주시(濱州市) 무체현(無縣) 설(說)
(6) 하남성 형양시(滎陽市) 광무산(廣武山) 설(說)의 타당성 검토
Ⅳ. 하북성 내륙에 있었던 발해(渤海)
1. 내륙해 발해(渤海)에 관한 기록들
2. 현재보다 12m 낮았던 중원 땅
3. 한무제가 설치하려 했던 창해군은 하북성 남부 고발해(古渤海)
Ⅴ. 산서성에 있었던 만리장성과 요동(遼東)
1. 만리장성 서쪽 끝은 바다, 동쪽 끝은 산서성 요동(요수)
(1) 동쪽이 아닌 서남쪽 바다에 이른 장성
(2) 요동(遼東)의 기준인 요(遼: 요주遼州)의 위치
(3) 후한(後漢) 시기 중산(中山) 지역에 있던 장성과 연(燕)의 위치
2. ‘요수(遼水)?요동(遼東)’과 ‘요서(遼西)’의 구체적 위치
(1) 동쪽으로 곧게 흐르던 요수(遼水)
(2) 요동(遼東)은 하북성 남부 장하(河) 인근
(3) 요서(遼西)는 산서성(山西省) 태원시(太原市) 동남
Ⅵ. 하북성 석가장시에 있었던 패수(浿水)
1. 낙랑군의 이주와 패수
2. 패수 관련 기록 분석
Ⅶ. 황하 이남에서 산서성으로 이주한 연(燕)나라
1. 문헌에 등장하는 연(燕)의 위치
2. 연(燕)의 시기별 위치 분석
3. 연(燕)이 공격한 조선 서부는 기자조선=중산=동호=오환
4. 연(燕)이 차지한 조선 서방(동호, 중산)의 위치
Ⅷ. 고조선과 왕검성(王儉城) 중심지 하북성
1. 상(은)나라 북쪽에 있던 고조선과 예맥계 국가들
2. 상족(商族)이 이주한 조선 위치 추정
3. 왕검성(왕험성)과 관련된 초기 기록과 왕검성 비정의 전제 조건
(1) 왕험성이 있던 창려(昌黎)와 관련된 기록
(2) 왕검성(왕험성)과 관련된 기록
(3) 왕험성(王儉城) 비정의 전제 조건 정리
4. 고조선의 위치에 관한 기록과 고조선 위치 비정
Ⅸ. 고조선 중심지(1) - 북경 유리하 유적(서주연도 유적)
1. 유리하 유적(琉璃河遺蹟, 서주西周燕都遺蹟) 개황(槪況)
2. 유리하 유적을 서주(西周)의 연나라 도성(燕都)으로 비정한 문제점 - 문명문 분석
(1) 연(燕) 소공(召公)의 봉지(封地)는 북경이 아닌 황하 이남
(2) 극뢰(克 ) 명문(銘文) 해석 문제
(3) 언( )을 연(燕)과 동일시 한 문제
(4) 한(漢)과 다른 고조선 고유 문자의 존재
(5) 필자의 반론 정리
3. 유리하 유적을 서주(西周)의 연나라 도성(燕都)으로 비정한 문제점 - 고고학적 분석
(1) 북경은 북방 빗살무늬(승문繩紋, 지자문之字紋) 도기 문화권
(2) 북경은 서주(西周) 문화와 구분되는 토착 문화(張家園上層文化) 지역
(3) 서주(西周) 초기 북경 지역 민족 분석
4. ‘주나라 초 연나라가 북경에 있었다는 주장(주초연국북경설周初燕國北京說)’ 재고의 필요성
Ⅹ. 고조선 중심지(2) - 보정시 연하도 유적
1. 연하도 유적(燕下都遺蹟) 개황(槪況)
2. 전국시대 연나라 도성(戰國 燕都) 비정의 문제점
(1) 명도전(明刀錢) 분석
(2) 동검(銅劍)과 동모(銅) 분석
XI. 유리하 유적과 연하도 유적의 왕검성 가능성 검토
1. 상(商) 서주(西周) 시기 화북 지역 중심지 북경 유리하(琉璃河) 유적지
2. 전국시대 화북 지역 중심지 보정시 연하도 유적지
XII. 맺음말
XIII. 부록
1. 기존 학설과 본 책의 관점(차이점) 정리
2. 진(秦) 한(漢) 시기 형세도(본 책 내용 기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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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책속에서
고조선(위만조선)이 망한 뒤 세워진 낙랑군, 낙랑군(고조선) 유민이 중심 세력이 되어 건국된 진한과 신라, 신라를 이은 고려, 고려를 이은 이씨조선의 역사적 부침에 따른 강역 변동 과정에 대해 그동안 고찰 역시 깊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는 한반도를 중심으로 이전 왕조들의 강역을 살펴왔기 때문인데, 이러한 한반도를 중심으로 고조선 강역을 찾는 한계는 고조선 영토를 고려의 강역 중심으로 추정하는 관습에서 줄곧 벗어나지 못한 사실에 기인한다.(제1장)
1920년대 이후 대부분 학자들이 ‘확고하게’ 받아들인 ‘낙랑군 평양설’에는 두 가지 중대한 문제가 있다. 첫째는 평양 지역에서 낙랑 시기 이전인 기원전 2세기 이전 유물이 발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둘째는 문헌 기록상 낙랑이 동시대에 ‘국가(國)’와 ‘군(郡)’ 형태로 각각 다른 지역에 존재하고 있었음이 확인된다는 점이다.(제2장)
고조선 국경에 있던 갈석산이 중원 내륙의 황하(河) 또는 황하가 산서성 남부 기주(冀州)에 이르러 넓게 퍼지는 구하(九河)의 시작점에 있다는 기록(至於碣石疏九河)을 근거로 한다면, 이 하남성 황하 남안의 광무산(廣武山) 이외의 다른 지역은 갈석산으로 보기 어렵다.(제3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