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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한국사 일반
· ISBN : 9791186351550
· 쪽수 : 231쪽
· 출판일 : 2022-12-27
책 소개
목차
머리말 7
1. 함안 역사의 첫머리 말이산고분군 9
탁월한 입지 선정 12
오랜 기간 조성된 가야 대표 고분군 13
한반도 최초로 말갑옷이 나온 마갑총 14
‘메이드인아라가야’ 말갑옷 16
금은 장식 고리자루큰칼도 18
계획에 따른 질서정연한 배치 19
아라가야의 순장은 언제부터 21
순장에도 공식이 있었을까 23
순장의 시작과 끝은 24
청동기문화와의 연관성 암각화고분 25
거대한 봉분의 숨은 비결 27
가장 높고 크고 기다란 고분은? 29
남문외고분군, 말이산고분군과 하나가 되다 30
아라가야를 잘 갈무리한 함안박물관 32
불꽃무늬가 새겨진 다양한 토기 34
멋진 산책이 함께하는 말이산고분군 38
2. 아라가야의 왕성이 있었던 가야리 유적 39
3. 국제회의가 열렸던 당산유적 43
4. 신라가 쌓은 아라홍련의 고향 성산산성 47
가야가 쌓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49
신라 목간이 출토된 성산산성 50
700년 잠에서 깨어난 아라홍련 52
5. 고려 시대의 역사 인물 55
홍건적을 물리친 이방실 장군(1298~1362) 57
일찍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윤환(1303~1386) 66
고려 충신 이오 68
고려 충신 조열 71
고려 충신 조순 73
6. 조선 시대의 역사 인물 75
생육신 어계 조려 77
용퇴하고 무진정을 지은 조삼 80
서원을 최초로 세운 주세붕 83
주재성과 무기연당 87
7. 임진왜란 영웅들 95
김언수| 박제인| 박진영| 방흥| 안민| 안신갑| 안황| 안희| 오운| 유숭인| 윤탁연| 이간·이희 형제| 이령| 이만성| 이명호와 동생들| 이숙| 이정| 이집·이분형| 이칭| 이휴복| 정구룡| 제말| 조민도| 조방| 조붕| 조신도| 조응도| 조종도| 조탄| 차천홍·차억세| 황경헌| 동래할멈| 조준남·조계선부자| 주익창·주필창 형제부부
8. 임진왜란 영웅들의 낙동강 뱃놀이 151
전란을 이겨낸 위로와 자축의 모임 153
미래세대까지 함께한 자리 157
지금도 이어지는 그날의 모임 159
9. 칠원에도 민란이 있었다? 161
10. 일제에 맞선 함안의 인물들 165
독립운동자금을 내놓은 주시성 167
몽골에서 독립운동을 벌인 대암 이태준 168
사랑의 독립운동가 산돌 손양원 173
노령에도 만세시위에 앞장선 안지호 의사 176
일제 경찰을 응징한 조삼귀 여사 179
11. 경남 최초 최대였던 함안의 3.1만세운동 183
경남 최초 칠북 연개장터의거 185
두 차례 벌어진 대산면 평림 의거 187
칠북면 이룡 의거 187
3000명에 이른 함안읍 의거 188
함안에서 가장 큰 군북 의거 190
네 차례 시위를 벌인 칠원 의거 191
군북공립보통학교 항일시위 192
법수면민 항일시위 193
12. 대한민국의 운명이 걸린 1950년 함안 전투 195
섬진강을 넘어온 북한군의 기습 197
함안 서부 산악 지대 전투 199
함안 동부 평야 지대 전투 201
마무리는 소규모 근접전으로 203
13. 기록의 고장 함안 205
가장 오래된 읍지 『함주지』 207
유일한 지역 문학·인물사전『금라전신록』 213
조선 후기 함안의 풍물을 담은 『함안총쇄록』 216
14. 한강 정구 놀던 별천계곡 명승지 221
후배 군수들도 즐겨 찾은 자리 223
곳곳에 한강 정구의 자취가 226
후배 군수도 흔적을 남겼고 228
한강을 기리는 뒷사람들의 자취도 230
저자소개
책속에서
30년 전 당시에는 동북아시아 전체에서도 이런 실물은 귀한 것이었고, 한반도에서도 거의 원형 그대로 나타난 것은 함안이 최초였습니다. 앞서 경주·동래·합천 등에서 정체를 짐작할 수 없는 물고기 비늘 모양의 작은 쇳조각이 출토된 적이 있었는데, 마갑총에서 원형에 가까운 말갑옷이 출토되면서 그것들이 말갑옷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마갑총 말갑옷은 이런 역사적 가치가 인정되어 지금 보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함안 역사의 첫머리 말이산고분군)
순장이 없어지는 과정도 차이가 납니다. 가락국은 지배계층이 무너지면서 순장이 줄어들고 사라졌습니다. 순장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있는 능력이 없어진 것입니다. 고구려 광개토왕의 서기 400년 침공이 결정적이었습니다.
반면 아라가야는 지배계층이 건재하고 커다란 고분은 계속 지어지는데도 6세기 초반에 순장이 축소·소멸되었습니다. 순장할 능력은 그대로였지만 해당 지역 공동체에서 순장의 당위성과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갈수록 옅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함안 역사의 첫머리 말이산고분군)
왕성에 걸맞은 커다란 규모의 취사 전용 건물터도 확인됐습니다. 길이 11m와 너비 5m에 이르는 기다란 네모꼴인데 암반을 파내어 만들었습니다. 취사 공간임을 알려주는 아궁이와 구들·굴뚝, 물을 담아둘 수 있도록 암반을 파서 만든 구덩이, 그리고 취사용 토기와 그릇받침도 같은 자리에 있었습니다.
(아라가야의 왕성이 있었던 가야리 유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