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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로 가야지

가야로 가야지

(쉽고 재밌는 가야역사)

김훤주 (지은이)
피플파워
1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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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로 가야지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가야로 가야지 (쉽고 재밌는 가야역사)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한국고대~고려시대 > 한국고대사 > 가야
· ISBN : 9791186351604
· 쪽수 : 248쪽
· 출판일 : 2023-09-25

책 소개

대중적인 언어로 알기 쉽게 정리한 전체 가야 역사서. 현장 탐방을 할 때 안내서로 활용해도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꾸몄다. 아울러 가야를 알리고 역사에 대한 자긍심을 높이는 데 일조할 수 있기를 바라는 소박한 기원도 함께 담았다.

목차

머리말

제1부 가야는 어떤 나라였을까?
훑어보기
가야는 이름 부자
대표하는 이름이 따로 있었다
가야의 활동 무대는 어디까지?
가야의 시작은 언제부터?

가야의 역사(전기)
철의 왕국 가야의 탄생
가야의 화폐는 무엇이었을까?
가야 철소재의 인기 비결은
김수로와 석탈해 대결의 의미는?
언제까지나 걸을 순 없었던 꽃길
농수산물도 풍성했던 철의 나라
중국과 일본의 중계기지 가야
고구려의 낙랑·대방군 함락
위기는 기회로, 기회는 위기로
가락국이 지다

가야의 역사(후기)
새롭게 떠오르는 가야
대가야는 어떻게 가락국을 대신했을까?
미니어처 농기구는 어디에 쓰였을까?
대가야의 번성과 쇠락
가라왕 하지의 사신은 어떻게 중국에 갔을까 ?
언제나 넘버투였던 아라가야는 강했다
아라고당회의를 개최하다
가야의 종말

궁금한 이야기
가야 기록이 부실한 이유는 무엇일까?
포상팔국은 어디에?
포상팔국은 왜 전쟁을 일으켰을까?
과거가 지금에게 건네는 이야기, 순장
순장에도 공식이 있었다
규모가 남다른 대가야의 순장
순장, 그 시작과 끝은
최강 군사력은 어느 가야였을까?
말의 일본 전래와 대가야
말은 화물차다? 장갑차다?
금공품도 전해주고

제2부 가야고분군을 찾아서

경상남도 김해시
구지봉만큼 신성했던 대성동고분군
무덤 위에 무덤을 만들다
봉분은 사라지고 흔적만 남아
청동기시대 무덤인 고인돌도
전국 유일 가야 전문 국립김해박물관
쓰레기장을 품은 봉황동 유적
대성동고분군과 짝을 이루는 왕성 자리
대성동과 어깨를 겨룬 양동리
국제 교류의 중심 김해는 항구 부자
조선 도로보다 튼튼했던 가야 도로
가락국에서 가장 신성한 구지봉
수로왕릉과 허왕후릉의 원래 모습은?
부부인데도 무덤이 떨어져 있는 까닭은?

경상북도 고령군
산성과 왕궁, 그리고 고분군
높이는 그대로인데 지름은 작아지고
공유에서 전유로
신라에서 백제로 다시 신라로
처음엔 아래에 나중엔 위로
무덤에서 웬 음식물이
최초의 왕릉급 제73호분
최초의 석재 대형분 제75호분
가장 크고 도드라진 제5호분
특이한 순장으로 유명한 제30호분
부부 두 쌍이 나란히 제32~35호분
순장이 가장 많은 제44호분
빈 순장곽은 무슨 연유로?
제45호분은 제44호분의 왕비?
불교 수용의 증거 고아리 벽화고분
마지막 왕릉급 고아2리 고분
대가야 흙방울에 담긴 건국신화
새 위계에 걸맞게 건국신화를 새롭게
전라북도 남원시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
전라권 최초의 가야계 국가 사적
중국산 청동거울과 백제산 금동신발
다른 가야의 여러 문물도
활발한 교류의 원인은 풍부한 철 생산
여러 우여곡절이 담긴 제36호분
전라권 가야가 처음 확인된 월산리고분군
온전하게 출토된 중국산 제품들
운봉고원 최초의 대가야계 고분은
바뀐 양식과 바뀌지 않은 양식

전라북도 장수군
백두대간 서쪽의 유일한 가야 세력
동촌리고분군의 말편자
장계분지 가야 고분의 집게·망치·모루
운봉고원보다 많은 제철유적
봉수의 종착지는 장계분지
전북 동부 가야의 자율성은 얼마나?

경상남도 합천군
이주민이 주인이 되다, 옥전고분군
신라계와 백제식은 무슨 이유로?
구슬이 지천으로 널린 구슬밭
작지만 다채로운 합천박물관
살기 좋았던 자리, 성산토성
해인사 국사단에 모셔진 정견모주
월광태자는 월광사지를 거닐었을까?
세 사람의 엇갈린 운명, 신라 충신 죽죽비

경상남도 함안군
탁월한 입지 선정, 말이산고분군
질서정연한 무덤은 다 계획된 것
거대한 봉분의 숨은 비결
말이산과 통합된 남문외고분군
딱 봐도 아라가야, 함안박물관
아라가야의 왕성, 가야리 유적
초대형 고대 건물터 당산유적
성산산성은 가야일까, 신라일까?

경상남도 창녕군
두세 집단이 공존한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
특징이 많다는 특징
신라와 친하면서 독자성도 지켰다
또 하나의 비화가야 계성고분군
가야 최대 고분이 여기에
순장 소녀 송현이의 환생, 창녕박물관
가야의 여명을 여는 창녕지석묘

경상남도 고성군
이어붙이기로 초대형? 송학동고분군
일본의 오해가 밝혀지다
여러 계통의 유물이 한꺼번에 쏟아지다
내산리고분군, 해상교역의 주인공들
센 가야 사람들의 자취, 고성박물관
동외동패총과 솔섬 유적
송학동고분군을 지키는 만림산토성

기타 중요 유적
우리 옻칠이 확인된 창원 다호리 고분군
문자 생활의 증거도
2000년 세월에도 온전했던 통나무널
어떻게 살아남았지? 창원 성산패총
일제가 망가뜨린 진주 옥봉·수정봉고분군
백제가 왜 여기에, 의령 중동리고분군
겉은 가야 속은 신라, 양산 북정리고분군
네가 왜 거기서 나와? 산청 전구형왕릉
남강 물길 따라 들어선 산청 생초고분군
임나일본부설을 깨뜨린 운평리고분군
섬진강 서쪽에도 가야가
낙동강 동쪽의 가야 복천동고분군
삼국유사의 그 가야 성산동고분군
신라 지배 아래서도 위세를 유지한 비결

가야 유물 박물관·전시관

저자소개

김훤주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63년 경남 창녕 출생 1999~2023년 경남도민일보 기자 저서 <습지와 인간> <시내버스 타고 길과 사람 100배 즐기기> <이야기가 있는 문화유산 여행길(경상권)>(비매품) <습지에서 인간의 삶을 읽다> <조선시대 원님은 어떻게 다스렸을까> <재미있는 우리 함주지> <쉽고 재미있는 경남의 숨은 매력> <재미있는 우리 칠원읍지> <함안에 담긴 역사와 인물> <가야로 가야지-쉽고 재미있는 가야 역사> 등
펼치기

책속에서

경남 김해 가락국의 쇠락은 대성동고분군을 통해서도 알 수가 있습니다. 가야의 고분이라 하면 우리는 높고 큰 봉분을 떠올리게 됩니다. 봉긋하게 솟아오른 봉분은 5세기 초반에 나타났는데, 처음에는 그다지 크지 않았지만 5세기 중반 즈음부터는 밑지름이 40m가 넘는 초대형 고분까지 등장합니다.
그런데 가장 앞섰던 김해 가락국의 대성동고분군에는 이런 봉분이 보이지 않습니다. 6세기 전반까지 조성된 묘역이지만 그냥 나지막한 구릉만 펼쳐져 있을 뿐입니다. 이 때문에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고분이 어디 있나 하고 두리번거리기도 하지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때의 가락국 최고위 지배계층에게는 그렇게 크고 높은 무덤을 만들 역량이 더 이상 없었기 때문입니다. 앞선 시기 고구려군의 침공이 안겨준 상처가 그만큼 크고 깊었다는 얘기입니다. 대성동고분군의 무덤덤한 무덤들에서 지금 사람들은 한 시절 누렸을 영화의 무상함을 엿보게 됩니다.


눈여겨볼 만한 것으로 순장이 있습니다. 장례를 치르면서 산 사람을 함께 묻는 풍습을 말합니다. 중국과 일본에서도 볼 수 있는데 한반도에서는 가야와 신라에서 확인됩니다. 부여는 순장했다는 기록은 있지만 실물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고, 신라는 임금이 죽으면 남자와 여자를 5명씩 순장했다는 기록과 함께 실제 순장 사례까지 확인이 되었습니다. 반면 가야는 순장에 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지만 발굴로 확인된 사례는 가장 많습니다.


대성동고분군에서 출토된 유물은 자체 생산한 물품뿐만 아니라 왜계, 북방계, 중국계에 이르기까지 다양합니다. 이는 바다 물길을 통해 활발하게 이뤄진 국제 교류를 잘 보여줍니다. 이렇듯 무덤에서 나오는 다양한 유물은 역사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됩니다.
3세기까지 농·어업 도구는 수입한 것이 대부분이고 분량도 많지 않았지만 4세기 후반에는 자체 제작한 것이 대부분이고 수량도 많아집니다. 낙랑·대방의 소멸과 국제 정세 불안 등으로 해양 교역이 어렵게 되자 농업과 어업으로 눈길을 돌렸던 것이지요.
무기와 갑옷·투구와 말갖춤 출토에서도 바뀌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전에는 중국·낙랑 계통의 수입품 위주였으나 김해 현지에서 제작한 무기·갑옷·투구·말갖춤이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하면서 수량도 늘어나게 됩니다. 자체 역량으로 만들어낸 철제 전투 장비가 많이 출토된다는 것은 가락국이 군사적으로도 강국이었음을 일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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