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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86851685
· 쪽수 : 296쪽
· 출판일 : 2018-02-16
책 소개
목차
머리말_떼어 버릴 수도, 반길 수도, 없는!
프롤로그_ 필요한 건 ‘명약’이 아니라 ‘해석’
내 사주의 특징 │류머티즘과 내게 찍힌 바코드 │대운과 류머티즘
1부 투병(1977~1986)
1. 류머티즘을 만나다
룸메이트, 할머니가 돌아가시다 │드디어 병명을 얻다 │삐뚤빼뚤 쌓아 올린 블럭 │‘명약’은 어디에?
2. 다시 병원으로
‘용한’ 의사 │두 다리에 추를 매달고 │“누구 맘대로 불쌍하다고 해?” │마지막 룸메이트 │병원에서도 그 나름의 일상이 │서서 보는 세상에는
3. 아픈 건 아픈 거고 청춘은 청춘이다
내친 김에 실컷 울자 │몰래 한 가출 │이상한 담판 │불안이 폭발하다 │일상은 힘이 세다
4. 그래도 나는 사는 게 좋다
“니하고 내하고 같이 죽자” │책 읽기 │일기 쓰기 │추억, 자연, 그리고…
2부 동행(1987~1996)
5. 인공관절 수술
‘희망’의 민낯 │병과 ‘함께’
6. 좌충우돌 자연요법
단 한 알의 약도 │고향집에서 │단식 & 알밤 소동
7. 활원운동과 하느님의 목소리
손가락 변형 │‘활원운동’을 만나다 │어, 목이 저절로 돌아가네! │하느님과 대화하다
8. 세상 속으로
“내 뭐하꼬?” │독서지도 워밍업 │드디어 독립
3부 자립(1997~2006)
9. 계산서엔 없는 것
“처음으로 한 개 사람으로 된 것 같은” │초짜 선생
10. ‘수양산 그늘’
‘칠갑산’을 부르며 │아버지의 부재
11. ‘인간적 성숙’
사중 추돌 사고│‘이게 아닌데…’
4부 내 몸의 주인 되기(2007~2015)
12. 30년 만의 자각
대퇴부 복합골절 │한가로운 시간 │내 몸을 내가 모른다
13. 더 이상 망설임 없이
때때로 찾아오는 유혹 │입장이 바뀌니 명료해지는 것 │불청객들
14. 새롭게 보이는 몸과 세상
‘앎의 코뮌’, 감이당으로 │왕초보자의 몸 탐구 │경험에서 지성으로 │“그게 오른 공부다”
15. 초보 학인의 어설픈 공부
『면역혁명』을 읽고│『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고 │크리슈나무르티의 책을 읽고
16. “찬란한 슬픔의 봄”
“향기로운 가을 길을 타~고 갑니다” │‘조숙영’이 아니라 ‘97세 뇌출혈 환자’ │“소롯이 가게 해도고” │“다시 애기가 됐네” │을미년의 봄
17. 『에티카』가 들려준 복음
후회의 진창에 빠져 │필연성을 인식하는 자만이 │마지막 생신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18. 소멸에 대하여
영정 사진 속 어머니 │관이 광중에 닿던 순간 │사랑 앞마루에 앉아
19. 어머니, ‘살아 있는 텍스트’
“신외무물이다!”│어머니의 시조 외기 │“엄마의 광복절”│독서와 글쓰기 그리고…
5부 길 위에서(2015~ )
20. 뜻밖의 뉴욕행
40년간의 ‘습’을 끊다 │내게 이런 용기가? │Queens 워밍업과 센트럴파크 신고식 │주민과 관광객을 오가며
21. 월든 호수 탐방과 맨해튼 가이드
소로를 만나러 │비 내리는 월든 호수 │맨해튼 가이드 │가이드를 마치며
22. 뉴욕에서 만난 나
세 시간의 산책 │일상 속의 내 모습
23. 뉴욕 그 이후
북한산 산행 │탁구 대회
24. 두번째 뉴욕행
또 다른 설렘을 안고 │공부로 만난 친구│대가족생활의 즐거움
에필로그_ 낯선 리듬 속으로
관성 워밍업 │류머티즘과 사주팔자 │“손가락 다 펴서 뭘 하려고요?” │뉴욕은 뉴욕이고 지중해는 지중해
저자소개
책속에서
‘병은 한 가지, 약은 열두 가지’라는 말이 있다. 양방에서 한방으로, 한방에서 민간요법으로, 기도에 굿까지. ‘명약’은 끝이 없었다. 차라리 약이 없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그리고 전지전능하신 신이 있어서 “넌 이제 더 이상 좋아질 수 없다. 그러니 낫겠다는 희망은 버려라”라는 말을 해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철없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선택의 괴로움이 그만큼 컸다. 새 처방으로 바꾸자니 먹던 약을 조금 더 먹어 보면 효험이 있지 않을까 하는 미련이, 하던 처방을 더 지속하자니 안 될 놈을 붙들고 씨름하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이런 것들이 고통을 가중시켰다. 살면서 그때처럼 선택의 어려움을 절감했던 적이 없다. 선택 앞에 괴로워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희망을 품고 그렇게 치료에 매달린 지 2년이 좀 지난 1981년 가을이었다. 추석을 쇠러 온 큰오빠와 올케가 경기도 광주에 ‘용한’ 의사가 있다며 서울로 가자고 했다.(「2. 다시 병원으로」 중에서)
그해 봄, 며칠간 봄비가 제법 내린 어느 날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동촌 거랑에 큰물 나가드라. 거기 니하고 내하고 가서 빠져 죽자. 니 혼자 죽으라 카면 죄 많고 내하고 같이 죽자. 이래 고생시리 사니 죽는 게 안 나을라(낫겠나).”
난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대답했다.
“죽고 싶으면 엄마나 가서 죽어라. 나는 이래도 사는 게 좋다.”
한참 뒤, 어머니가 그러셨다. “그때 니 혼자 집에 두고 다니는 게 영 불안했다”고. 어머니는 그 시절 여기저기 약을 구하러 다니거나 볼일을 보러 다니느라 집을 비울 때, 혹시라도 내가 나쁜 생각을 하는 게 아닌가 그게 불안하셨던 모양이다. 그래서 내 속을 떠보려고 그렇게 말씀하신 거였는데, 내가 어머니의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하자 그 이후로는 안심하고 다니셨단다.(「4. 그래도 나는 사는 게 좋다」 중에서)
이 사건으로 인해 그렇게 충천했던 자신감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불안감이 엄습했다. ‘이런 정도의 충격에도 견디지 못할 몸이라니. 살다 보면 이런 사고가 다시는 없으리라 어떻게 장담하나? 이보다 더 큰 사고가 날 수도 있는데 그땐 어쩌지? 얼마나 많은 돈을 모아 두어야 불안감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살 수 있을까? 5억? 10억? 과연 많은 돈을 가지면 불안하지 않을까? 돈이 편안한 미래를 보장해 줄까? 처음 독립을 할 때, 매월 50만 원만 벌면 족할 것 같았다. 그런데 지금 그때 그 액수보다 더 많이 벌고 있는데도 왜 불안하지? 그렇다면 지금보다 더 벌면, 그땐 또 불안감 해소에 필요한 돈의 액수가 더 커지는 게 아닐까? 결국 경제력이 이 불안감을 씻어 주지는 못하는 것 아닐까? 그럼 어떻게 해야 불안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11. ‘인간적 성숙’」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