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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사회학 > 사회학 일반
· ISBN : 9791189799304
· 쪽수 : 228쪽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첫 번째 이야기_
이거 봐, 세상은 역시 무탈하지 않아
[환경] 환경 앞에선 정말 모두가 평등할까?
_더위로 인한 죽음은 천재지변이 아니다
[지역 격차] 한국 사회에서 ‘지방’은 어떤 의미일까?
_서울 사람은 절대 모르는 차별이 있다
[교육] 공정한 시험은 가능할까?
_‘억울하면 합격하라’는 말은 틀렸다
[가족] 과연 ‘정상 가족’이 존재할까?
_뭉치면 행복하다는 건 이제 옛말
두 번째 이야기_
이 세상 모든 존재에 대해 예의가 필요하다
[동물] 동물에게는 권리가 없을까?
_살아 있는 모든 것에 대해 예의가 필요하다
[난민] 왜 그렇게 난민을 혐오할까?
_대한민국 난민 인정률 0.4%, 그래도 난민이 싫다면
[장애인] 당연한 권리를 왜 장애인에게는 특혜라 할까?
_호의를 베풀었더니 권리인 줄 아느냐는 이들에게
[노동자] 평범한 노동을 하찮게 대하는 사회, 이대로 괜찮을까?
_오늘도 배달 노동자는 목숨을 건다
세 번째 이야기_
불평등을 없애는 유일한 방법, 끝까지 의심하기
[부동산] 내 집 마련에 목숨 거는 세상, 이대로 괜찮을까?
_모두가 건물주를 꿈꾼다
[소득 불평등] 정말 ‘계급’은 사라졌을까?
_‘노오력’을 해도 달라지는 게 없다면
[종교] 종교에 의지하는 사회가 건강할까?
_북유럽 사람들은 좀처럼 기도하지 않는다
[미디어] 언론과 가짜 뉴스, 이대로 괜찮을까?
_뉴스를 검색할수록 차별에 물든다
[정치] 정치와 상관없는 개인이 존재할까?
_‘그런다고’ 세상이 달라진다
에필로그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모두에게 연봉 1억을 보장하라고 했는가. 단지, 누구라도 위기 상황에서 추락하지 않을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하라고 했을 뿐인데 우리 사회는 그러지 못했다. 여기는 유토피아가 아니라면서 불평등의 크기를 줄이는 데 무심했던 이들이 만들어 놓은 사회는 단 한 번의 충격으로도 뒤집어지게 되었다. 바늘구멍을 통과한 자들에게만 화려한 조명을 비추는 세상은 그 외의 사람들에게는 무심하다. 2주간의 격리만으로도 일자리를 잃는 이들에게 주목하지 않는다. 푸석한 사회가 흔들리니 약자들부터 추락하고 있지만, 사회를 좋은 방향으로만 보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이를 외면한다. 좋은 시민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세상을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볼 줄 알아야 하는데, 한국은 소수만이 해낼 수 있는 아름다운 이야기로 다수가 처한 나쁜 현실을 덮는 데 익숙하다. (프롤로그)
“태양에도 특허를 내나요?” 소아마비 백신을 개발한 조너스 소크Jonas Salk 박사가 특허권을 누가 가지게 되는지를 묻는 기자의 물음에 한 대답이다. 인류를 구하는 백신은 아무런 조건 없이 빛을 제공하는 태양처럼 공공재의 가치를 지녀야 한다는 뜻이었다. 상업적 이득을 포기하고 제조법을 무료로 공개한 소크 박사 덕분에 전 세계는 소아마비의 공포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태양이 공공재란 건, 어마어마한 자연적 실체 앞에서 인간은 누구든지 평등하다는 뜻일 게다. 그런데 공공재인 태양은 개인이 지닌 조건에 상관없이 인류 모두에게 공평하게 영향을 미칠까? … 정말 환경 앞에서 인간은 평등할까? 미세먼지만 예로 들어도 ‘만드는’ 사람이 따로 있고 ‘마시는’ 사람이 따로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공기가 특정인이 사유할 수 없는 공공재라는 사실은 분명하지만, 모두가 나쁜 공기를 동일하게 마시지는 않는다. 사회경제지표는 열악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미세먼지 때문에 더 많이 죽는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환경-환경 앞에선 정말 모두가 평등할까?)
나는 원인을 ‘성실하게 공부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식의 자기 계발 담론이 지나치게 부유하는 데서 찾았다. 자기 계발이 개인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수준을 넘어서 타인을 재단하는 기준으로 자리 잡으면 여러 문제가 발생한다. 특히, 잘못된 사회구조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향해 개인의 잘못이라며 탓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명성 높은 대학에 진학한 다음 전문직 종사자가 되어 안정적으로 살겠다는 바람이 왜 문제겠는가. 하지만 모두가 이런 전투적인 목표 의식을 가져야 마땅하다고 강조하며 세상의 불평등을 제대로 이해하지 않으려는 사회는 곤란하다. 빈곤을 개인의 책임으로 귀결시키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열악한 처우를 ‘학교에서 공부 안 한 결과’로 여기는 사람이 대다수인 공동체는 어떨까? 열심히 공부했기에 차별에 찬성한다는 이들이 정치인이 되고 교육자가 된다면, 사회 양극화는 그저 별수 없는 세상의 이치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이러면 불평등의 크기가 줄어들 리 없다. 차별을 차별이 아니라고 여기는 고정관념은 세상을 병들게 만든다. (교육-공정한 시험은 가능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