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예술/대중문화 > 미술 > 미술가
· ISBN : 9791193707722
· 쪽수 : 198쪽
· 출판일 : 2024-12-31
책 소개
목차
인사말 / 민병로(전남대학교5ㆍ18연구소 소장) / 04
작가의 말 / 김호석 / 06
2080년을 위한 그림 전을 준비하며 / 김호석 / 09
기획글 / 김허경 / 11
전시작품 / 16
평론글 / 47
ㆍ철학으로 읽는 김호석 작품론 / 박구용 / 48
ㆍ2080을 위한 그림 / 장요세파 / 70
ㆍVoices of Resistance / Yu Yeon Kim / 86
ㆍ무등 / 이은하 / 93
평론가와 함께하는 <검은 울음> 학술심포지엄 발표 자료 / 97
ㆍ김호석의 <불나방, 진드기>에 대하여… / 김병헌 / 98
ㆍ꼬리가 기억하는 역사 / 홍지석 / 103
ㆍ일관된 시선과 태도를 상기하다 / 고영재 / 109
ㆍ죽창보다도 더 강렬한 에너지를 담다-<청죽>과 <혈죽> / 김영순 / 114
ㆍ수묵의 철학적 변용-대(竹) / 김허경 / 120
ㆍ김호석의 ‘광주민주화운동사’ / 조인호 / 126
ㆍ전통의 현대적 계승 / 임종영 / 130
ㆍ‘끝’, 형용할 수 없는 것에 대한 표상 / 김희송 / 135
ㆍ역사·인물·자연에 대한 통찰과 울림 / 박성천 / 140
ㆍ김호석의 ‘무등’과 ‘낫이 울다’ / 정인서 / 147
학술 심포지엄 토론 / 155
ㆍ학술 심포지엄 토론 내용 전사 / 156
현장사진 / 190
작가 약력 / 192
저자소개
책속에서
철학으로 읽는 김호석 작품론
박구용(전남대·시민자유대학)
이 글의 주된 목적은 김호석의 작품론의 밑그림을 철학적 몽타주로 구성하는 것이다. 여기서 구성될 김호석의 작품론은 그의 작품을 비체계적인 방식으로 접근한다. 일반적인 작품론은 한 작가의 작품 내용과 형식을 하나의 양식이나 규범으로 체계화한다. 체계적으로 구성된 작품론은 철학적 이념이나 미학적 개념을 상징적 질서에 맞게 위계적으로 배열한다. 이 과정에서 체계적 작품론으로 포섭되지 않는 작품은 배제되거나 은폐될 위험이 크다. 이와 달리 몽타주 형식의 작품론은 체계화될 수 없이 흩어져 파편화된 작품들을 알레고리적 방식으로 연결하는 비평이다. 이렇게 철학적 몽타주로 구성된 김호석의 작품론은 작품들 사이의 차이와 낯섦에 대해 열려 있는 일종의 에세이다.
이 에세이는 무등일보가 2023년 5월에 마련한 대담 ‘수묵거장 김호석과 철학자 박구용의 예술산책’을 기초로 다시 쓰였다. 여기에 직접 인용한 것은 이 대담에서 작가가 한 말을 일부 다듬은 것이다. 대담에서 작가론에 가까운 이야기는 대부분 삭제했다. 따라서 이 글은 김호석 작가 자신이 쓰는 자서 작품론이면서 동시에 박구용의 김호석 작품론이기도 하다. 앞에서 언
급한 것처럼 이 글은 알레고리적 비평에 기초한 작품론이기 때문에, 비체계적이고 탈중심화되어 흩어져 있는 개념들로 작품들을 연결하고자 한다. 따라서 여기서 배치, 배열된 개념들 사이의 관계 역시 언제나 다르게 위치할 수 있다.
김호석의 ‘검은 울음’1. 빛과 어둠
김호석의 작품 세계는 현대적 의미의 도시가 태어나는 모습에서 시작한다. 1979년 희망과 절망, 빛과 어둠의 교차로에서 그는 <아파트>(130*226, 종이에 수묵 채색, 1979)를 그린다. 사회간접 자본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려는 정부와 최대의 이익을 추구하는 자본가의 이익 연합에, 성장의 과정에서 새롭게 형성된 탈문화적 중산층이 끼어들면서 아파트는 도시를 점령해
가고 있었다. ‘철근과 콘크리트’라는 새로운 건축 소재를 통해 균질화된 공간을 만들어 내는 단지형 아파트는 새로운 유형의 성이 되었다. 단지 안의 사람이 시민이라면 단지 바깥의 사람은 민중이 된다. 김호석은 아파트 단지의 시민과 바깥의 민중을 도시의 풍경으로 담아낸다.
도시의 풍경에는 자연의 선이라고 할 수 있는 곡선이 별로 등장하지 않는다. 수묵 채색으로 담기 어려운 직선들이 서사를 제거한 도시의 풍경에 고통을 담아낸다. 도시는 화려한 만큼 어둡게 그려진다. 내적으로 파괴의 서사를 품고 도시 때문에 초조하게 어둠을 찢어버리려는 작품의 부정성은 사라진 것들, 축출된 것들에 대한 상상을 촉발한다. 이래서일까! <아현동>
(112*145, 종이에 수묵 채색, 1986)은 이제 곧 도시의 공식적인 문화에서 제거될 것들이 자연과 하나가 되는 최후의 낭만을 드러낸다. 기꺼이 몰락하는 것들에서 쾌락을 느끼는 이는 빛과 어둠의 변증법에 저항하기보다 투항하는 길을 택한다. <아파트>와 <아현동>은 같은 도시, 같은 시간에 이루어진 빛과 어둠의 교차로에서 찍어 올린 재현 사진이 아니다. 1979년부터 1986년 사이에 그려진 도시의 풍경에는 도시가 제거하는 것들의 아우성도 없지만 새로이 들
어서는 것들에 대한 거짓 축복도 없다. 날카로운 직선과 기하학적 발묵법은 성급한 판단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김호석에게 1980년대 서울은 더 이상 겸재 정선이나 단원 김홍도에게 재현 예술의 충동을 불러일으키던 빛나는 도시가 아니었다. 김호석의 도시 풍경은 빛나는 것들 속에서 어둠을, 사라져 가는 것들 속에서 빛을 그려낸다. 재앙 속에서 그려진 사라져가는 것
철학으로 읽는 김호석 작품론 49들의 아름다움은 아주 먼 훗날까지 언젠가 되돌아갈 ‘미래의 고향’에 대한 상상의 가능성이다. 진정한 실천적 낙관이 낭만적 염세 속에서 피어난다.
2. 검은 먹과 작품의 힘
수묵화는 붓과 먹이 종이 위에서 펼치는 생명 서사이자 사랑 서사이다. 재료와 예술 양식 사이의 관계가 와해한 지 오래지만, 김호석은 여전히 재료의 시작, 곧 아르케ἀρχή, archē로 계속해서 되돌아간다. 그에 따르면 먼저 종이는 문화의 바탕이자 근본이다. 따라서 한지는 한민족 문화의 기초다.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는 한지가 한지가 아니라고 한다. 한국 고유의 전통 한지 원형이 왜곡된 것이다. 김호석은 먼저 한지의 원료가 되는 닥나무부터 원형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지 제조 방식도 변질되었기 때문에 원천 기술을 찾아서 복원해야 한다고 한다. 그에 따르면 세계에서 가장 질기고 두꺼우며 희고 광택이 있는, 그러면서 보존성이 가장 우수했던 한지의 원형은 다양한 방식으로 변질된 가짜 한지보다 더 현대적이다.
재료의 원형이자 아르케에 대한 김호석의 열정은 과거에 대한 회상과 무관하다. 재료의 원형 탐구는 기법에 대한 작가의 책임 의식에서 시작한다. 작품 탄생의 또 다른 주체인 재료에 대해 모르는 작가는 전승된 것들의 수공업적 지침에 매달리는 공예 작가보다도 한참 못 미치는 기술자일 뿐이다. 전통의 탯줄을 끊는 힘을 가지고 어떤 것으로도 대체될 수 없는 예술 작품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 김호석은 작품화 과정 바깥에서 이루어지는 재료들에 대한 기술적 처리 과정에 몰두한다. 그래서 김호석은 직접 기른 쥐의 꼬리로 붓을 만든다. 재료에 대해 물신주의에 가까운 집착이 정당성을 갖는 것은 무엇보다 그 재료가 품고 있는 정신적인 요인 때문이다.
“수묵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신적인 요소입니다. 먹은 관솔(송진이 많은 소나무)을 태운 그을음을 재료로 만들어서, 불의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먹을 물에 녹여 사용하는 것이 수묵화이므로, 50 김호석의 ‘검은 울음’불과 물이라는 상극相剋 이 만나 조화를 이루는 과정이죠. 이처럼 서로 대립하는 성질이 조화를 이루면서 작품이 완성됩니다. 저는 이 과정이 인간의 정신을 반영하는 중요한 예술적 형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대립과 모순을 극복하고 새로운 조화를 창조하는 것이 수묵화의 본질 아닐까요?”
작품의 재료와 정신 사이에는 표현과 구성이 자리한다. 김호석의 재료에 대한 집착에 가까운 열정은 그로부터 자기 자신에 몰입하는 것을 차단한다. 이는 <아현동> 이후 그에 작품에서 표현주의적 자극이 거의 사라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굴비>(200*116, 종이에 수묵, 1986)와 <악!>(240*120, 종이에 수묵, 1988)도 이전의 <굴비>(105*150, 종이에 수묵 채색, 1985)나 <악!>(143*104, 종이에 수묵 채색, 1983)에 비해 표현을 더욱 억제함으로써 오히려 더 표현적인 깊이를 가진다.
먹은 부피를 가진 물리적 점이면서 동시에 부피를 갖지 않는 기하학적 점이다. 물리적인 점으로서 먹은 스스로 선을 만들고 면을 만든다. 처음 찍은 점은 그 스스로 다음 점을 찾아서 선을 그리고 면을 구성한다. 이는 작가의 작품 구성이 미메시스적 충동에 따라 기교 없이 이루어지는 것을 말해준다. 김호석의 작품은 그래서 검은 먹이 그리는 예술이다.
“먹 점 한 점을 강조했는데, 이 먹 점은 곧 출발이면서도 마지막이다. 먹이라는 것은 단순한 점이 아니라, 그림을 시작할 때 찍는 한 점 안에 이미 동서남북의 방향성이 담겨 있어야 한다. 또한 크기와 위치가 적절해야 점이 살아난다. 이 점 하나를 잘못 찍으면, 그림 자체가 형식적이고 생명력 없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 결국 근본적인 성찰이 중요하다. 처음의 기본 원칙이 마지막에는 최고의 기교 없는 ‘무기교의 기교’로 완성되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종이에서 모든 색과 형식을 제거하고 남겨진 하나의 검은 점에 집중했다. 이 검철학으로 읽는 김호석 작품론 51은 점이 어떻게 변모하고 새롭게 해석될 수 있는지 공유하고 싶다.
아주 무지無知 한 마음으로 접근한 작업이다.”
작가에게 붓은 자신의 기량과 능력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도구이다.
당연히 능숙하게 다룰 줄 알아야 하지만, 작품의 힘은 단순히 기술적인 능력에서 나오지 않는다. 김호석 작품에서 검은 먹은 기술적인 면을 능가하는 예술 작품이 지닌 힘의 원천이다. 작가는 붓을 사용해 그림을 그리지만, 붓 자체는 작품 속에 남지 않는다. 붓은 작가의 능력이지만 먹은 세계의 힘이자 작품의 힘이다. 폴 세잔Paul Cezanne의 작품에서 솟아오르는 힘이 세잔의 주관적 세계의 표현이 아니라 객관적 세계의 미메시스적 리듬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모리스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Ponty의 해석처럼 김호석의 작품이 지닌 힘의 원천도 검은 먹이 그리는 세계에 있는 셈이다.
“우연히 길을 걷다가 문득 뒤를 돌아봤는데, 전혀 돌아볼 이유가 없는 장소였어요. 그런데 돌아보는 순간, 내가 평소에 고민하던 것이 눈앞에 탁 나타나는 거예요. 그 순간, ‘아, 이게 나에게 걸어 들어왔구나’라는 느낌이 들었죠. 마치 어떤 장면이 스스로 내 안으로 들어와서 작품이 되는 것처럼요. 또 한 번은 어떤 공간에서 ‘날 수 없는 새’를 그리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새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그 순간 내 눈앞에서 총성이 울리며 새들이 툭툭 떨어졌어요. 그 순간이 나에게 걸어 들어오지 않았다면, 그 풍경은 결코 그림이 될 수 없었을 겁니다.”
<날 수 없는 새-임진강 풍경>(170*93, 종이에 수묵 채색, 1991)와 <개죽음>(170*81, 종이에 수묵, 1991)으로 이어지는 다양한 동물화는 고통에 대한 작품의 ‘미메시스mimesis’를 품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