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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32040356
· 쪽수 : 284쪽
· 출판일 : 2022-06-30
책 소개
목차
크레파스
해설 누아르가 된 소설 ・ 김형중
작가의 말
채영주 20주기 기념 선집 간행사
책속에서
“백인 남자 승객 한 명이 버스로 올라왔어요. 그는 버스 안을 한눈에 둘러본 다음 흑인 여자가 앉아 있는 자리 앞으로 와서 섰어요. 두 번의 정류장을 지나도록 그는 줄곧 그녀만을 내려다보며 서 있었어요. 그리고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아세요. 그가 문득 다짜고짜 여자를 때리기 시작한 거예요. 뺨을 때리고 머리채를 흔들고 발길질을 하고, 갖은 지독한 욕지거리까지 늘어놓으면서 말예요. 물론 그 남자는 그녀가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어요. 남자도 그녀를 알지 못했죠.”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군요. 이 손찌검하는 버릇까지. 냄새가 그처럼 싫으시다면 무슨 조치를 강구해보도록 하겠어요. 매일 밤 샤워를 하고는 있지만 이제부터는 향수라도 더 뿌리도록 하죠. 옷은 밤마다 빨래 통으로 집어넣구요. 하지만 이것 한 가지는 분명히 아셔야 해요. 엄마 몸에서 구역질 나는 냄새가 났던 것이나 제게서 검둥이들의 냄새가 나는 것은 우리 잘못이 아니에요. 우리를 이 구역질 나는 땅으로 끌고 들어온 건 바로 아버지란 말씀이에요.”
그들의 보고를 가만히 듣고 있자니 유진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들이 새삼스럽게 이곳에 모여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들의 보고는 그들에 의해서 얘기되기 전에 이미 한인 신문에 상세하게 보도가 되었을 것이 분명했다. 현금 상자 도난 사고 같은 것이 보도되지 않았을 리가 없었고 마리포사에서의 사건은 유진도 이미 신문을 통해서 알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무슨 까닭으로 이 자리에서 그 이야기들을 떠들어대며 다시 서로의 분노를 부추겨대는 것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