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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교양 인문학
· ISBN : 9788952112088
· 쪽수 : 136쪽
· 출판일 : 2011-04-20
책 소개
목차
대화의 장을 열며
강연자 머리말
1부 강연
2부 패널 질문과 토론
3부 보면서 읽다
리뷰
책속에서
복수로서의 글쓰기, 증언으로서의 글쓰기
오빠는 총상을 당해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집에 있었는데, 제가 집안의 가장이 되어 아무런 빽도 의지할 사람도 없이 그 상황을 겪을 때 힘이 되었던 것은, ‘내가 이것을 잊지 않고 기억했다가 언젠가는 글로 쓰리라.’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때 나만 겪은 것 같은 일들, 남들은 다 남으로 갈 때 나는 북으로 가고, 남들 피난 갈 때 아무도 안 남은 무인도 같은 서울에서 텅 빈 도시를 지키면서 겪은 온갖 일들, 온갖 인간들, 운명의 장난 같은 요행과 불운, 그중에도 가장 견디기 어려웠던 건 내 눈에 인간 같지도 않은 인간 밑에서 버러지처럼 기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한껏 비굴해지고 아부해야 하는 상황, 살아남기 위해서 온갖 수모를 겪어야 하는 순간에도 나에게 그 수모를 견디게 하고, 그래도 마음까지 밑바닥 버러지가 안 되고 최소한의 자존심이나마 지키게 한 것은, ‘그래 내가 이걸 잊어버리지 않고 있다가 언젠가는 글로 쓰리라. 내가 지금 네 앞에서 벌벌 떨고 비굴하게 아부하고, 네가 원하는 거짓말까지 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너를 내 소설 속에서 벌거벗겨 진짜 악인으로 그려내야지.’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박완서: 문학의 뿌리를 말하다』 중에서)
그리고, 위안과 치유로서의 글쓰기
그리고 또 복수로서의 글쓰기를 안 하겠다고 그랬는데, 그러면 그건 화해냐 그렇게 물으신 거 같아요. 글쎄요. 복수. 원한을 풀기 위해서 문학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문학이라는 것은, 세속적인 행복과는 다르지만, 우리 삶을 조금이라고 낫게 하는데 이바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문학의 능력 중의 하나는 남과 입장을 바꿔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생각해요. 사회 갈등이라든가 집안에서의 모든 갈등들에서 조금 마음을 열고 남의 생각을 엿보는 능력, 입장을 바꿔서 생각하는 능력은 문학을 하는 사람뿐 아니라 독자로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혜택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고통에 대해서는 저 자신에게 위로받는 것도 많아요. 또 재미라는 거, 재미가 주는 위로도 많잖아요? 그렇지만 저도 그전에 선생이 되고 싶어 했고, 될 줄 알기도 했는데, 문학은 계도의 능력을 억압적이지 않게, 드러내놓지 않고 행사하는 게 아닌가싶어요. 제가 선생이 되고 싶어 했던 게 문학에도 조금 들어가 있는 것 같아요. 문학을 통해 뭔가 설교를 하는 게 아닌가 싶을 때가 있어요. 제가 문학소녀일 적에 많은 영향을 받은, 제가 즐겨 읽었다기보다는 우리 오빠가 살 만해지면서 나한테 선물해준 톨스토이 전집이 있어요. 그건 지금도 집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톨스토이 문학엔 참 사실적이면서 어딘지 기독교적인 설교의 냄새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실 그게 제가 그렇게 좋아하는 게 아니면서도, 동시에 나에게도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그리고 제 첫 번째 창작집의 이름이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예요. 나도 모르게 제목을 붙였지만, 문학을 통해서 뭘 가르치려는 것도 엿보이고 그렇습니다.
(『박완서: 문학의 뿌리를 말하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