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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개신교) 신앙생활 > 간증/영적성장
· ISBN : 9788953114135
· 쪽수 : 440쪽
· 출판일 : 2010-11-08
책 소개
목차
1부 아버지의 길을 따라 가다
1. 하나님, 고통을 느끼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2. 나의 아버지, 나의 어머니
3. 아버지의 길을 따라 가다
4. 고통에 대해 처음 배우다
5. 고통 연구의 대가들
2부 나환자와 함께하다
6. 다시 인도로 돌아가다
7. 나환자를 접하다
8. 갈고리 손을 펴주다
9. 낙담하지 않고 끝까지 돌봐주다
10. 세상에 내보내다
11. 나병 연구, 세상에 알려지다
12. 미국으로 건너가다
13. 나병에서 당뇨병으로
3부 고통 속에 감추어진 보물들
14. 고통은 마음에서 나온다
15. 고통을 느끼는 것에 감사하라
16. 고통에 잘 대처하라
17. 고통을 더하는 것들, 외로움
18. 고통 뒤에 진정한 기쁨이 있다
후기: 현대의 나병, 에이즈
책속에서
교회가 나환자를 끌어안은 것에 관한 또 하나의 좋은 추억 거리가 있다. 인도의 존 카르메건이라는 환자에 관한 이야기다. 그가 우리를 찾아왔을 때는 이미 병이 많이 진전된 상태여서 수술로도 그를 도울 수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에게 머물 곳을 주고 새 생활 센터의 일자리도 주었다. 존은 처음부터 말썽꾸러기였다. 얼굴이 검은 그는 나병에 걸리기 전부터 인종 차별에 맞서 대항했다. 그러나 이제 마비 증상 때문에 그가 웃으려고 하면 마치 추파를 던지는 것같이 보였다. 그리고 사람들이 그를 보면 종종 깜짝 놀라거나 무서워했기 때문에 그는 절대로 웃지 않았다. 게다가 나의 아내 마거릿이 그의 시력을 보호하기 위해 한쪽 눈꺼풀을 부분적으로 꿰매서 외모가 더욱 흉측하게 보였다.
우리는 존이 마을에서 다른 아이들의 물건을 훔치는 것을 여러 차례 보았다. 그는 동료 환자들을 잔인하게 대했으며 모든 권위를 부정했다. 심지어 배가 고프다고 데모를 일으키기도 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재활 불가능한 사람이라고 포기했다.
그러나 브랜드 할머니의 생각은 달랐다. 존의 구제 불가능성에 매력을 느끼셨는지 어머니는 그를 복음 전도를 위한 특별한 대상으로 삼으셨다. 어머니는 존을 보살피며 그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셨다. 그래서 결국 그는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우리는 건축 자재로 쓰이던 시멘트 통에서 그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그러나 회심이나 세례가 존의 인격에 즉각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 그는 나와 다른 보건 관계자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당신들은 이 일을 하면서 돈을 받잖아요. 당신들이 이 일을 하는 것은 당신들이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이거나 나를 염려하기 때문이 아니라 돈을 받기 때문이 아닌가요? 흉측한 얼굴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아무도 우리 같은 나환자를 원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어느 날 존은 요양원 마당에서 우리 교회에 대해서도 똑같은 비난을 퍼부었다. “당신들은 돈을 받기 때문에 나 같은 사람과 함께 성찬식을 갖는 거죠. 그것이 당신들의 직업이니까요. 만일 내가 시내로 가면 어떻게 될까요? 그 사람들도 나를 받아들일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나는 그에게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얼마 뒤 나는 벨로어에 있는 타밀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존에 관해서 말해 주었다. “누구나 그가 나병에 걸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의 얼굴은 흉하게 일그러졌고 시력도 좋지 않습니다. 그리고 두 손은 오그라들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여러분께 확실히 말씀 드릴 수 있는 것은 그의 병이 더 이상 진행되지 않고 멈추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절대로 병을 옮길 위험이 없습니다. 그가 이 교회를 방문해도 되겠습니까?” 장로들이 그의 방문을 허락했다.
“그가 성찬식에 참여해도 되겠습니까?” 나는 그 교회가 성찬식 때 하나의 잔을 공동으로 사용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물어보았다. 장로들이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머뭇거리다가 그 문제를 충분히 상의했다. 마침내 그들은 존이 성찬식에도 참여할 수 있다고 결정했다.
며칠 뒤, 나는 존을 데리고 그 교회로 갔다. 그 교회는 하얀 색 도료가 칠해진 평범한 벽돌 건물로 물결 모양의 양철 지붕이 덮여 있었다. 우리 두 사람 모두에게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나는 나환자가 처음으로 그런 종류의 공공장소에 들어가려고 할 때 느낄 수밖에 없는 정신적인 충격과 망상증이 어떤 것인지 거의 상상할 수 없었다. 우리는 교회 뒤에 함께 서 있었다. 존의 마비된 얼굴에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그러나 그가 떠는 모습은 그의 마음속 동요를 분명히 드러내 주고 있었다. 나는 교인들 중 단 한 명도 존에게 거부 반응을 보이지 않기를 조용히 기도 드렸다.
회중이 일어서서 첫 번째 찬송을 부를 때 뒤쪽에 앉은 한 인도인이 몸을 돌리더니 우리를 보았다. 우리의 모습은 어울리지 않는 한 쌍이었다. 어떤 백인 외국인이 이상하고 흉측한 누더기 같은 피부의 나환자와 나란히 앉아 있었으니 말이다. 나는 그 순간 숨을 죽였다.
마침내 일이 일어났다. 그 사람이 자기 찬송가를 내려놓더니 환하게 웃으면서 자기 옆 자리를 두드리며 존에게 오라고 손짓했다. 존의 놀라움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머뭇거리던 그는 발을 질질 끌며 반보 걸음으로 그 사람이 앉아 있는 줄로 가더니 그 옆에 섰다. 나는 안도의 숨을 쉬며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그 하나의 사건이 존의 생애에서 전환점이 되었다. 의학적 치료, 애정 어린 보살핌, 재활 훈련 등이 각각 나름대로 그에게 도움을 주긴 했으나 그를 진정으로 변화시킨 것은, 불구가 된 그리스도인 형제를 자기와 함께 떡을 떼자고 부른 한 나그네의 초청이었다. 존은 그 예배를 통해 기쁨으로 환하게 빛나는 새 인생을 시작했다.
미국으로 이주한 후 수년이 지난 어느 날, 벨로어를 방문할 일이 있었다. 그리고 겸사겸사 장애인들을 고용하기 위해 세운 공장을 둘러보았다. 그곳 관리인은 타자기에 쓰이는 작은 나사못을 생산하는 새로운 기계를 보여 주고 싶어 했다. 디젤 냄새를 풍기는 시끄러운 공장을 지나가다가, 그는 큰 목소리로 나에게 자기 공장의 최우수 근로자를 소개해 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 일꾼은 스웨덴의 타자기 회사가 인도 전체에서 결함이 가장 적으면서 가장 많은 부품을 만드는 사람에게 수여하는 최우수상을 받은 사람이었다.
우리가 작업 현장에 도착했을 때, 그가 돌아서서 우리에게 인사했다. 그런데 그것은 틀림없이 존 카르메건의 일그러진 얼굴이었다. 그는 뭉툭한 손에 묻은 기름때를 닦더니 내 손을 잡고 흔들었다. 싱긋 웃는 그의 모습은 내가 지금까지 본 것 중에서 가장 추하면서 동시에 가장 사랑스럽고 가장 빛나는 미소였다. 그는 자기에게 상을 안겨 준 바로 그 작고 정밀한 나사못을 한 움큼 내게 쥐어 주면서 검사해 보라고 했다.
상대방을 용납하는 단순한 제스처 하나는 결코 크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존 카르메건에게 그것은 결정적이었다. 벨로어의 작은 교회에서 보여 준 그 사랑 덕분에 존의 해묵은 상처는 완전히 치유되었다. 아마 난생 처음으로 그는 수치와 거부의 무거운 짐으로부터 참 자유를 얻었을 것이다. 그는 인간으로서 다시 태어남을 느꼈다. 그의 질병의 흔적은 변하지 않았지만 성경 말씀처럼 “온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어 쫓는다.” 나아가 흔적까지도 내어 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