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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1~100권 박스 세트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1~100권 박스 세트 (무선) - 전10권

다니자키 준이치로, 모옌, 아니 에르노, 오스카 와일드, 어니스트 헤밍웨이, 메리 셸리, 메도루마 슌, E. L. 닥터로, 피에르 드리외라로셸, 존 더스패서스 (지은이)
문학동네
115,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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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1~100권 박스 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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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제목 :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1~100권 박스 세트 (무선) - 전10권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영미소설
· ISBN : 9788954619615
· 쪽수 : 400쪽
· 출판일 : 2012-11-01

책 소개

현재 학계와 문단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학자와 비평가들이 작품 선정에서부터 번역에 이르기까지 주도적으로 참여한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1∼100권 박스 세트'. <노인과 바다 >, <물방울>, <도깨비불> 등 모두 10권으로 구성되었다.

목차

091 노인과 바다
092 물방울
093 도깨비불
094 프랑켄슈타인
095 래그타임
096 캔터빌의 유령
097 만(卍).시게모토 소장의 어머니
098 맨해튼 트랜스퍼
099 단순한 열정
100 열세 걸음

저자소개

다니자키 준이치로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86년 도쿄 니혼바시에서 태어났다. 제일 고등학교를 거쳐 도쿄 제국 대학 국문과에 입학하였으나 학비를 마련하지 못해 퇴학당했다. 1910년 『신사조(新思潮)』를 재창간하여 「문신」, 「기린」 등의 작품을 발표하며 문단에 등장했고, 소설가 나가이 가후로부터 격찬을 받으며 작가로서의 지위를 확립했다. 1915년 열 살 어린 이시카와 치요코와 결혼했는데, 시인인 친구 사토 하루오가 그의 부인과 사랑에 빠지자 아내를 양도하겠다는 합의문을 써 『아사히신문』에 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문화 예술 운동에도 관심을 가진 그는 시나리오를 써 영화화하고 희곡 『오쿠니와 고헤이』를 발표한 뒤 직접 연출하기도 했다. 1924년 『치인의 사랑』을 신문에 연재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나 검열로 중단되었다. 1942년 그는 세 번째 부인이자 그가 희구하던 여성인 마쓰코와 그 자매들을 모델로 『세설』을 쓰기 시작했다. 간사이 문화에 대한 애정이 짙게 배어 있는 『세설』은 몰락한 오사카 상류 계츨의 네 자매 이야기, 특히 셋째인 유키코의 혼담을 중심으로 당시의 풍속을 잔잔하게 전하는 풍속 소설이다. 1943년 『중앙공론』 신년호와 4월호에 게재되었고 7월호에도 실릴 예정이었으나 <시국에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발표가 금지되어 전후에야 비로소 작품 전체가 발표되었다. 훗날 마이니치 출판문화상과 아사히 문화상을 받았다. 1948년에는 제8회 문화 훈장을 받았고 1941년 일본 예술원 회원, 1964년 일본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미국 문학예술 아카데미의 명예 회원에 뽑혔다. 1958년 펄 벅에 의해 노벨 문학상 후보로 추천된 이래 매년 후보에 올랐으며 1965년에 8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 밖의 대표작으로는 『치인의 사랑』, 『만』, 『킨쇼』, 『열쇠』, 『장님 이야기』, 『미친 노인의 일기』 등이 있고, 무라사키 시키부의 『겐지 이야기』를 현대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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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옌 (지은이)    정보 더보기
산둥성 가오미(高密)에서 1955년에 태어났다. 2011년에 한국 만해문화대상(문예부문)과 중국 마오둔문학상을 수상하였고, 2012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다. 1966년에 학업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가 농사를 지었다. 1973년 8월에 가오미현 제5 면실유 가공공장에 들어갔다. 1976년 2월에 입대하여 해방군 병사, 분대장, 교관, 간사 등 직책을 역임하였다. 1978년부터 창작을 시작하였고, 1981년에 처녀작 「봄밤에 비는 부슬부슬 내리고(春夜雨)」를 발표하였다. 1984년에 해방군예술대학 문학과에 입학하였고, 1985년에 출세작인 「투명한 홍당무(透明的紅蘿蔔)」를 발표하였다. 1986년에 시리즈 소설인 『붉은 수수 가족(紅高粱家族)』을 발표하여 문단을 뒤흔들었다. 1988년 가을에 베이징사범대학과 중국작가협회가 공동으로 개설한 대학원에 입학하였고, 1991년 봄에 졸업하면서, 문예학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1997년에 검찰일보사로 이직하였다. 2007년에 문화부 중국예술연구원으로 자리를 옮겨 문학원 원장을 맡았고, 현재 베이징사범대학 교수, 박사생 지도교수, 국제창작센터(國際寫作中心) 주임 등을 맡고 있다. 지금까지 장편소설 11편, 중편소설 20여 편, 단편소설 100여 편과 연극, 희곡, 텔레비전 드라마 극본, 산문, 시(詩)와 사(詞)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창작하였다. 중국 내외 많은 대학의 초빙교수를 역임하였다. 아울러 옥스퍼드대학, 미국 시애틀의 시티대학, 프랑스 마르세유대학, 홍콩, 마카오 등지 열몇 개 대학에서 명예박사학위 혹은 원사 칭호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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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에르노 (지은이)    정보 더보기
언제나 역사적 경험과 개인적 체험을 혼합해 자신의 삶을 철저하게 해부해 왔다. 부모의 계급 상승(『자리』, 『부끄러움』)에서 결혼(『얼어붙은 여자』), 성과 사랑(『단순한 열정』, 『탐닉』), 주변 환경(『바깥 일기』, 『밖의 삶』), 임신 중절(『사건』), 어머니의 치매와 죽음(『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 『한 여자』), 유방암 투병(『사진의 사용』)까지 <개인의 기억 속에서 집단의 기억을 복원하고, 개인성의 함정에 매몰되지 않으려는 노력>의 산물인 에르노의 작품은 자전(自傳)에 새로운 정의를 부여했다. <내면적인 것은 여전히, 그리고 항상 사회적이다. 왜냐하면 하나의 순수한 자아에 타인들, 법, 역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노르망디의 소도시에서 태어나 노동자 출신의 소상인 부모 밑에서 유년 시절과 청소년기를 보낸 그는 루앙 대학교를 졸업하고 초등학교 교사로 시작해 정교사, 문학 교수 자격증을 획득했다. 1974년 첫 소설 『빈 옷장』을 발표한 이래 1984년 『자리』로 르노도상을 수상하고, 1987년 어머니의 죽음을 다룬 『한 여자』를 통해 독보적인 글쓰기를 확립했다고 평가받았다. 2008년 『세월』로 마르그리트 뒤라스상, 프랑수아 모리아크상, 프랑스어상, 텔레그람 독자상을 수상했다. 2003년 그의 이름을 딴 아니 에르노 문학상이 탄생했으며, 2022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바깥 일기』와 『밖의 삶』은 여러 해 동안 외부 세계를 관찰해 일기 형식으로 기록한 작품들이다. 이때의 글쓰기는 <집단의 일상을 포착한 수많은 스냅 사진을 통해 한 시대의 현실에 가닿으려는> 시도이자 서로 연결된 존재로서의 자신과 타인을 탐구하려는 시도이다. 그에게 붙잡힌 순간들은 날카롭게 우리를 찌르고, 복잡한 웃음을 일으키며, 때로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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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와일드 ()    정보 더보기
19세기 말 빅토리아 시대의 문학과 문화에 깊은 흔적을 남긴 오스카 와일드는 예술지상주의와 유미주의의 대표적 작가이자 사회를 조롱한 재담가였다. 1854년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는 저명한 의사이자 고고학자였고 어머니는 시인이었다. 부모의 영향 아래 그는 어린 시절부터 문학과 예술에 깊이 빠져들었고, 더블린의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고전문학을 공부한 후 옥스퍼드 대학교 모들린 칼리지로 진학했다. 1878년 시 「라벤나」로 뉴디게이트 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첫 발을 내디뎠고, 1888년에 동화집 『행복한 왕자와 그 밖의 이야기들』을 발표하며 본격적인 작가 활동을 시작했다. 1890년 발표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와일드의 유일한 장편소설이자 가장 논쟁적인 작품이었다. 영원한 젊음과 아름다움을 얻기 위해 자신의 영혼을 내던지는 도리언의 이야기 속에서 와일드는 도덕과 타락, 미와 윤리,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탐구했다. 그러나 당시 빅토리아 시대의 도덕적 기준을 위배했다는 이유로 ‘위험하고 부도덕한 책’이라는 혹평을 받기도 했다. 이후 그는 1890년대 후반 희곡 작가로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윈더미어 부인의 부채〉, 〈하찮은 여인〉, 〈진지함의 중요성〉 같은 풍자극을 발표하여 사회의 위선을 날카롭게 조롱했다. 1895년에는 동성애 혐의로 기소되어 2년간의 강제 노동형을 선고받았다. 출소 후에 프랑스로 떠나 유랑 생활을 했는데, 건강이 악화된 그는 1900년 뇌수막염으로 생을 마감했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19세기 영문학에서 가장 독창적이고 상징적인 작품 중 하나로 남아 있다. 문학과 미학을 향한 와일드의 탐구는 현대에 이르러서도 논의되며, 그는 여전히 ‘자신의 삶을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창조한 작가’로 기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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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99년 7월 21일 미국 일리노이 주 오크 파크(현재의 시카고)에서 태어났다. 의사 아버지와 성악가 어머니 사이를 두었고, 여섯 남매 중 장남이었다. 평생을 낚시와 사냥, 투우 등에 집착했으며, 다방면에 걸쳐 맹렬한 행동을 추구하고, 행동의 세계를 통해 자아의 확대를 성취하려 했다. 그러한 인생관은 그의 작품 전체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고등학생 때 학교 주간지 편집을 맡아 직접 기사와 단편을 썼으며,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1917년 [캔자스시티 스타]의 수습기자로 일했다. 제1차 세계대전 중이던 1918년 적십자 야전병원 수송차 운전병으로 이탈리아 전선에서 복무하기도 했으며, 전선에 투입되었다가 다리에 중상을 입고 귀국했다. 휴전 후 캐나다 [토론토 스타]의 특파원이 되어 유럽 각지를 돌며 그리스-터키 전쟁을 보도하기도 했다. 1921년, 해외 특파원으로 건너간 파리에서 스콧 피츠제럴드, 에즈라 파운드 등 유명 작가들과 교유하는 등 근대주의적 작가들과 미술가들과 어울리며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1923년 『세 편의 단편과 열 편의 시(詩)』를 시작으로 『우리들의 시대에』, 『봄의 분류(奔流)』,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를 발표했다. 방황하는 젊은이들의 삶을 그린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소설로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그후 1920년대 ‘로스트 제너레이션(잃어버린 세대)’를 대표하는 ‘피츠제럴드’와 ‘포그너’와 함께 3대 작가로 성장하였다. 그의 첫 소설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를 1926년에 발표했는데, 헤밍웨이의 대다수 작품은 1920년대 중반부터 1950년대 중반 사이에 발표되었다. 전쟁 중 나누는 사랑 이야기를 다룬 전쟁문학의 걸작 『무기여 잘 있거라』(1929)는 그가 작가로서 명성을 얻는 데 공헌했으며, 1936년 『킬리만자로의 눈』, 스페인 내전을 배경으로 한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1940)는 출판되자마자 수십만 부가 넘는 판매고를 올린다. 이후 10년 만에 소설 한 편을 발표하지만,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1952년 인간의 희망과 불굴의 정신을 풀어낸 『노인과 바다』를 발표하여 큰 찬사를 받았으며,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다. 그러나 이 해에 두 번의 비행기 사고를 당하는데, 말년에 사고의 후유증으로 인해 우울증에 시달리고, 집필 활동도 막히기 시작했다. 하지만 행동의 규범에 철저한 만큼이나 죽음과 대결하는 삶의 성실성과 숭고함을 작품에 투영하려 노력해왔다. 1959년에는 아이다호 주로 거처를 옮겼고, 1961년 여름, 헤밍웨이는 신경쇠약과 우울증에 시달리다 1961년 케첨의 자택에서 엽총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대표작으로는 1929년 『무기여 잘 있거라』, 1940년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1952년 『노인과 바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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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셸리 (지은이)    정보 더보기
1797년 8월 30일 런던, 영국의 소설가이자 정치사상가인 윌리엄 고드윈과 여성학자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사이에서 태어났다. 출생 직후 어머니가 사망하고 아버지는 재혼했는데, 부녀간의 돈독한 관계를 시기한 계모와 불화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서재에서 수많은 책을 읽고 아버지의 영향 아래 당대의 문인, 지식인과 교우하며 성장했다. 열다섯 살에 아버지의 제자이자 촉망받던 시인인 퍼시 비시 셸리를 만나 서로 사랑에 빠진다. 유부남인 퍼시 셸리와 세간의 이목을 피해 프랑스와 스위스로 도피 여행을 하던 중 열아홉 살이 되던 1816년 제네바 호수 근처에 머물던 시인 바이런 경을 만났다. 괴담을 한 편씩 써보자는 바이런의 제안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해 이듬해 장편소설을 완성하고, 1818년 익명으로 《프랑켄슈타인 또는 현대의 프로메테우스》를 출간했다. 그 무렵 퍼시 셸리의 아내가 자살하고 메리와 퍼시는 런던에서 결혼식을 올렸다(이후 ‘메리 셸리’로 불리게 되었다). 네 아이를 낳았지만 그중 셋이 병으로 일찍 죽었고, 남편인 퍼시 셸리는 1822년 항해를 떠났다가 이탈리아에서 돌아오던 중 익사했다. 1823년 역사 소설 《발페르가》를 출간하고, 이듬해에는 남편의 시를 모아 《유고 시집》을 출간했다. 이후 활발한 창작 활동을 이어가며 인류 멸망을 그린 소설 《최후의 인간》(1826), 모험담 《퍼킨 워벡의 행운》(1830) 등의 작품을 발표했고, 1831년에는 《프랑켄슈타인》을 개작해 재출간했다. 1837년 마지막 소설인 《포크너》를 출간하고, 1844년에는 메리 셸리의 유작이 된 여행기 《1840, 1842, 1843년 독일과 이탈리아 산책》을 출간했다. 1851년 2월 1일, 지병인 뇌종양이 악화해 런던에서 5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고, 유언에 따라 부모님 곁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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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도루마 슌 (지은이)    정보 더보기
현대 오키나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메도루마 슌은 1960년 오키나와 북부 나키진(今?仁)에서 태어나 류큐 대학 법문학부를 졸업했다. 1983년 「어군기」로 작품 활동을 시작하며 류큐신보 단편소설상을, 1986년 「평화거리로 불리는 길을 걸으며」로 신오키나와 문학상을, 1997년 「물방울」로 아쿠타가와상을, 2000년 「혼 불어넣기」로 기야마 쇼헤이 문학상과 가와바타 야스나리 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2023년 제7회 이호철통일로문학상을 수상했다. 지은 책으로 『메도루마 슌 단편소설 선집』(전 3권)과 장편소설 『무지개 새』, 『기억의 숲』 등이 있다. 그 외 산문집으로 『오키나와―풀의 소리 뿌리의 의지』, 『오키나와―땅을 읽고 시간을 본다』, 『오키나와 '전후' 제로 년』, 『얀바루의 깊은 숲과 바다로부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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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L. 닥터로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31년 뉴욕 브롱크스의 유대계 러시아 이민 2세대 가정에서 태어났다. 케니언 칼리지와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철학과 희곡을 공부하고, 1953년 군에 징집되어 2년간 독일에서 복무했다. 제대 후 뉴욕으로 돌아와 영화사에서 일을 하고,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1960년 첫 소설 『하드 타임스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를 출간한다. 이후 9년간 잡지사와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며 이언 플레밍 등과 작업했다. 1969년 본격적으로 창작활동에 몰입해 2년 후 ‘로젠버그 부부 스파이 사건’을 소재로 한 『다니엘서』를 출간한다. 1975년 『래그타임』이 출간 첫해 20만 부 이상 판매되는 성공을 거두었고, 1989년 『빌리 배스게이트』는 초판 10만 부를 발행하는 기록을 세웠다. 이후 『수도Waterworks』(1994) 『신의 도시City of God』(2000) 『행군March』(2005) 등의 작품을 발표했다.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세 차례, 펜/포크너상 두 차례를 수상했고, 1998년 국가인문학훈장, 2002년 케니언 리뷰상(최초 수상자)을 받았다. 2012년 뉴욕주 작가 명예의전당에 이름을 올렸고, 2013년 미국 예술문학아카데미 최고 권위의 상인 골드메달을 받았다. 예일, 프린스턴, 뉴욕 대학교 교수를 역임했으며, 생전에는 꾸준히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었다. 폐암으로 투병하다 2015년 7월 맨해튼 자택에서 84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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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드리외라로셸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93년 1월 3일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다. 부모의 불화와 경제적 파탄으로 어린 시절을 외할머니 곁에서 보냈다. 1910년 파리 사립정치학교에 입학해 정치학을 전공했다. 부유한 학생들 사이에서 궁핍한 처지를 비관하며 화려한 출세를 꿈꾸지만 졸업시험에 낙방하며 자살을 생각한다. 1914년 일차대전이 발발하자 징집되어 입대한다. 열등감에서 벗어나 전쟁 속에서 영웅상을 구현하려던 그는 누구나 평등하게 전쟁에 참여하는 민주화된 군대 제도와 개인의 역량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기계전을 통해 민주주의와 모더니즘에 대한 반감을 키운다. 전쟁 중 부유한 유대인과 결혼한 후 1920년대에 화려한 댄디로 변신해 아라공, 말로, 몽테를랑 등과 어울리며 정계와 문단을 드나든다. 부패한 프랑스 정치 현실을 일거에 뒤집을 혁명을 꿈꾸던 그는 1934년 스스로 파시스트라 선언하고 글과 행동으로 현실에 적극 참여했다. 이차대전이 발발하자 독일 대사의 후원으로 갈리마르 출판사의 문예지 『신프랑스평론』을 총괄하는 지위에 오른다. 그러나 채 1년도 지나지 않아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고 전쟁이 끝나는 1945년 음독자살했다. 소설 『사를루와의 희극』 『몽상적 부르주아지』 『질』 『젊은 날의 반 고흐』, 시집 『의문』 『그릇 밑바닥』, 자서전 『호적부』 등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전설적 여성 편력과 실패로 끝난 정치 참여, 자살로 마감한 삶으로 인해 오랫동안 그늘에 머물러 있었던 그의 작품들은 오늘날 그 문학적 진가를 인정받아 다시금 커다란 주목을 받고 있다. 『도깨비불』은 전후 파리 사교계에서 마약과 기행으로 악명을 떨치던 다다이스트이자 작가의 친구였던 자크 리고를 모델로 삼은 소설이다. 정치 혼란과 경제공황을 겪던 1920년대 프랑스 젊은이들의 불안을 생생히 보여주는 작품으로 1963년 루이 말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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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더스패서스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96년 시카고에서 포르투갈계 변호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하버드 대학을 졸업하고 1차 대전에 참전했으며, 종전 후 소르본 대학에서 인류학을 공부했다. 1920년 발표한 첫 작품 『한 남자의 성인식』과 이듬해 출간된 『세 명의 군인』은 전쟁 체험을 바탕으로 한 리얼리즘 소설의 정수라는 찬사를 받았다. 그 후 몇 년간의 특파원 생활과 여러 나라를 여행한 경험, 특히 거트루드 스타인의 살롱에 드나들며 피츠제럴드와 헤밍웨이 등과 교유한 일에 큰 영향을 받아 작풍이 변하면서, 이른바 ‘잃어버린 세대’의 대표작가로 알려지게 되었다.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에 환멸을 느끼던 더스패서스는, 사코·반제티 사건을 계기로 정부를 비판하는 글을 기고하고 공산주의를 공부하기 위해 소련을 여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스탈린 정부의 방침과 친구의 의문사 등으로 인해 사상의 변화를 겪고, 정치적인 입장차로 헤밍웨이와 결별한다. 2차 대전이 발발하자 종군기자로 활약했으며, 종전 후에는 자유주의 저널 출간에 힘썼다. 미국인의 삶에 대한 파노라마적 서사시라고 할 수 있는 『U. S. A. 삼부작』(1938)에서 실험적 기교를 폭넓게 동원해 20세기 초 미국의 이야기를 완성했으며, 『토머스 제퍼슨의 지성과 감성』 『나라를 만든 사람들』 『권력의 족쇄』 등 미국 역사 관련 저서로 비평가로도 명성을 얻었다. 1970년 볼티모어에서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작품활동을 계속했다. 1925년 발표한 『맨해튼 트랜스퍼』는 새로운 실험적 기법을 통해 거대도시 뉴욕에서 보이는 수많은 삶의 편린을 포착한 작품으로, ‘재즈 시대’의 뉴욕에서, 상류층부터 극빈층까지 스무 명이 넘는 등장인물의 이야기가 개별적인 몽타주를 이루며 펼쳐진다. 장면과 시점을 자유로이 전환하고 허구 속에 실제 뉴스와 대중음악 가사를 삽입하는 등 영화 같은 서술과 의식의 흐름 기법을 사용하여, 뉴욕의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그려낸 모더니즘의 걸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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