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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서지/출판 > 서지/문헌/도서관
· ISBN : 9788968173684
· 쪽수 : 273쪽
· 출판일 : 2016-05-28
책 소개
목차
머리말
조선의 백과사전__강민구
중국 유서의 편찬과 검색__한미경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의 백과사전적 지식 분류__이혜민
「브리태니커 백과사전」과 영어권의 다른 백과사전들__장경식
「백과전서」철학자들이 꿈꾼 지식의 나무__김미성
독일 백과사전의 계보__최경은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와 지식-권력의 재구성__정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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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책속에서
[머리말]
이 책에는 연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HK문자연구사업단이 기획하고 주도한 공동연구의 성과가 담겨 있다. 동서고금의 문자문화를 역사학, 서지학, 문헌학, 문학비평, 언어학, 사회학, 문화연구 등 다양한 학문적인 방법론 및 시각에 비춰 연구해온 이 사업단은 문명과 문화의 기초이자 핵심적인 도구임에도 이제껏 본격적인 연구의 대상이 된 적이 드문 문자 그 자체를 탐구해왔다. 총 3단계의 연구과제 중 2단계에서는 문자매체의 생산과 유통에 초점을 맞춘 문자의 사회문화사에 집중했다. 이러한 연구의 일환으로 수행된 것이 동과서의 백과사전의 출간 및 내용과 의의에 대한 역사적, 서지학적, 문화사회학적 탐구이다. 백과사전에 대한 연구는 문자 위에 세워놓은 인간 문명의 고리를 밝히는 매우 요긴한 작업이 될 수밖에 없다. 인간과 세계, 자연, 우주, 심지어 초월적인 신의 세계까지 망라한 ‘모든 것’에 대한 지식을 인간의 문자로 기술하고 페이지 위에 정리해 놓아 책의 형태로 묶어놓은 것이 백과사전보다, 문자생활을 그 본질로 삼는 인간 ‘호모 리테라투스’(homo litteratus’)의 진면목을 더 잘 드러내주는 문화유산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만나보게 되는 이름들은 비교적 친숙한 것들도 적지 않다. 오늘날 우리 모두가 즐겨 사용하는 「위키피디아」라든지,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디드로와 달랑베르의 「백과전서」, 이수광의 「지봉유설」이 거기에 해당될 것이다. 반면에 중국의 ‘유서’(??)나 중세 및 근세 초기 유럽의 중요한 백과사전들인 세비야의 이시도루스의 「어원」, 브루네토 라티니의 「보고의 책」, 코메니우스의 「열려진 황금의 언어 문」 등의 제목들은 생소하고 이색적으로 들릴 것이다. 디드로와 달랑베르의 「백과전서」의 모델이 되었고 이 백과사전의 역사에서는 매우 중요한 업적인 이프라임 체임버스의 「사이클로피디아」도 관련 전공자 사이에서가 아니면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편이다. 이 책에서는 친숙한 백과사전들과 비교적 생소한 백과사전들을 유럽대륙 서남단 스페인에서 아시아 동쪽 끄트머리 한반도까지, 1500년전 위(魏)나라시대부터 오늘날의 21세기 「위키피디아」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문자유산의 핵심이자 꽃이라고 할 수 있는 백과사전들을 골고루 다루고 있다. 또한 해당 지역과 시대를 깊이 있게 연구해온 전문가들이 일반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서 소개하고 논평해준다. 다시 말해, 이 책 자체가 백과사전에 대한 ‘백과사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공지능, 축복인가 저주인가?’ 오늘날 언론에서 자주 등장하는 논제이다. 영어의 “encyclopedia”란 말을 ‘백과사전’으로 옮긴 것을 보면, 그 당시만 해도 ‘백’이라고 하면 ‘모든 것’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의미가 전달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근대 백과사전들에 실린 정보와 지식의 항목들은 백이 아니라 수백, 수천, 수만에 이르고, 「위키피디아」의 경우 백만을 넘는다. 이러한 방대한 지식을 품고 있는 백과사전들은 각 시대의 ‘인공지능’ 데이터베이스였다고 할 수 있다. 인공지능을 만들어내는데 숱한 인간 지능들이 협력하여 프로그램을 개발하듯, 백과사전들 또한 많은 사람들의 ‘지능’이 누적되고 축약된 결과물이었다. 고대나 중세시절부터 백과사전류의 책을 한 사람이 편집하고 편찬하는 경우는 있으나, 모든 항목을 온전히 한 개인이 전부 새롭게 창작한 경우는 없다. 이런 의미에서 이미 많은 사람들이 설명하고 정리한 바들을 다시 이어받고 재활용하고 발전시키는 ‘집단지성’은 백과사전 집필 및 편집의 중요한 요소였다. 또한 숱한 문자와 도표, 삽화 등이 등장하는 육중한 백과사전 책들의 몸체를 만드는 데는 상당한 비용이 들어갈 수밖에 없기에, 이러한 책들은 각 시대의 사회적인 네트워크와 경제적인 역량이 집약된 사회적 결과물들이었다. 백과사전의 독서 양태 또한 다른 책들과 달랐다. 역사책이나 소설, 경전을 읽듯이 첫 장부터 끝장까지 연속적인 독서를 하는 경우보다는 그때마다 필요한 항목으로 건너뛰어 읽는 선별적인 독서를 전제로 하여 만들어진 것이 백과사전이다. 이러한 목적에 맞춰 항목들의 배열에 있어서 서양의 경우 알파벳 순서를 따르는 방식이 자연스럽게 도입되었다. 인터넷 시대가 열리며 검색과 선별적 지식의 습득이 유달리 용이해진 것이 사실이지만, 그 연원은 기독교 문명 시대가 열리며 함께 등장한 코덱스(제본된 책의 형태)라는 책제조법의 획기적인 혁명에 닿아있다. 두루마리에 글을 기록하여 보전하던 시대에는 불가능했던 색인과 참조를 코덱스는 가능하게 해주었다. 두루마리를 펼치고 마는 수고를 생략한 채, 독자는 코덱스의 중간이건 뒷부분을 곧장 펼쳐서 필요한 부분을 읽을 수 있었다. 그러한 코덱스의 몸체에는 한 개의 두루마리에 들어갈 수 없는 엄청난 문자들과 문자로 기록한 정보를 집어넣을 수 있었다. 백과사전은 코덱스가 개시한 제본된 책에 담겨있는 ‘모든 지식을 담고자 하는’ 충동의 구현이었다.
백과사전을 만들고 이를 구입하고 이용하는 인간들을 지배하는 힘은 ‘모든 것을 알고 싶은’ 욕구이다. 그 어떤 시대이건 한 개인이 세상과 우주의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자신의 이성에 부합하도록 ‘모든 것’을 설명해놓지 않으면 만족하지 못하는 고질병에 시달린다. 이는 비단 근대 계몽주의 시대에 구질서를 타파하려 기획한 프랑스 「백과전서」의 집필 및 구매자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모든 것’을 알고자 하는 욕망의 발현이 백과사전을 관통하는 것은 서양의 중세나 근세 초기, 중국의 유서들에서도 마찬가지였음을 이 책을 읽으면서 새삼 확인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무한한 지식에 대한 욕망을 완전히 만족시키기는 불가능하다. 물론 백과사전을 구입하는 것으로 그러한 욕구를 일부 채울 수는 있다. 백과사전의 구매자들은 책으로 만든 백과사전들을 서가에 꽂아두므로 지식을 자기 공간에 갖다 놓았다는 느낌을 즐겼다. 최근 들어서는 백과사전이 시디롬을 거쳐 웹사이트의 형태로 존재한다. 이제는 서재가 있건 없건, 본인의 전자 단말기 안에 ‘모든 지식’을 담고 다닌다는 착각에 빠질 수 있다. 물론 ‘착각’에 머물지 않고 백과사전에 담긴 지식들을 적극 활용하므로 각자 지식의 폭을 넓히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자기계몽의 습성이 될 것이다.
그런데 ‘계몽’에는 소위 ‘변증법’이 있다. 이성과 합리성은 문명과 창조를 낳기도 하지만 야만과 파괴를 야기할 수 있다. 아우슈비츠나 히로시마, 마루타 생체실험과 킬링필드 등이 대변하는 20세기 과학기술과 ‘과학적’ 이데올로기의 끔찍한 비인간성을 목도한 우리들은 계몽의 변증법을 쉽게 잊기 어렵다. 근대적 지식욕이 본격적으로 고개를 들기 시작하던 시대에 이미 단테 알리기에리는 계몽의 변증법을 감지했다. 「신곡」 1편 「지옥」에서 극중 인물 단테가 만나는 많은 인물 중에는 초기 백과사전 중 하나인 「보고의 책」의 저자 브루네토 라티니가 있다. 단테는 브루네토를 동성애의 죄를 지은 영혼들 사이에서 만난다. 작가 단테의 스승이었던 브루네토를 이렇듯 뜻밖의 장소에서 만난 극중 단테는 “브루네토 선생님, 여기에 계세요?”라고 묻는다. 지옥불로 망가진 얼굴 속에는 여전히 옛 스승의 모습이 담겨있다. 지옥에서도 스승은 스승이기에 단테에게, 정치적인 상황이 쉽지 않을 것이니 처신을 신중히 할 것을 권고한다.
그리고 다시 지옥 벌을 받는 행렬로 돌아가기 전, 브루네토가 건네는 마지막 인사말은, “나의 ‘보고’를 네게 추천한다, 그 안에서 나는 여전히 살아있으니까”(단테, 「지옥」 15곡)이다. 저자 브루네토는 「보고의 책」 속에 “여전히 살아있”으나 브루네토의 영혼은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받는다. 「보고의 책」은 물론 이제는 틀린 지식임이 판명된 것들로 가득하다. 그 안에 ‘모든 것을 아는’ 브루네토가 여전히 살아있지 않다. 「보고의 책」 및 그밖에 여러 백과사전들에 여전히 살아있는 것은 ‘모든 것을 알고 싶은’ 지식욕이라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러나 백과사전을 관통하는 합리적 지식에 대한 욕구는 인간을 구원하지 못한다. 단테의 의하면, 백과사전 편찬자 「보고의 책」의 저자는 특이한 육체적 욕구에 과도하게 탐닉한 죄로 지금 이 순간도 지옥에서 영원히 벌을 받고 있다.
동서고금의 유명 백과사전의 집필, 편찬, 출간을 기념하는 이 책 앞머리에서 단테의 브루네토를 떠올리는 것은 다소 암울한 기억으로 비칠 수 있다. 하지만 인문학의 기억은 계몽의 빛은 물론이요 계몽의 어둠도 기억한다. 방대한 백과사전들의 찬란한 역사를 이 책을 통해 읽으며, 인간의 근본적인 한계도 잊지 않는 것이 우리가 요사이 그토록 두려워하는 ‘인공지능’에 대처하는 자세가 될 수 있다. ‘모든 것을 아는’ 지식의 총합은 가능치도 않고 가능하다고 해도 결코 인간을 구원하지 못한다.
유서類書는 같거나 비슷한 사물을 모으고 일정한 기준과 방법에 의하여 부문部門을 나누어 분류 배열하여 검색·이해·기억 등에 편의를 제공하기 위하여 만든 책이다. 그 내용은 천문·지리·역사의 사적事跡·인물의 행적·사물의 기원·행정 제도·문학·학문·성어전고成語典故·의술·점복占卜·기술·동 식물 등, 수집 분류가 가능한 지식을 망라한다. 이러한 점에서 유서는 당대 지식의 총화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유서는 당대의 지식 수준을 측정할 수 있는 객관적 자료라고 하겠다. 이 때문에 연구자들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들도 유서에 대한 관심은 여타 전적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
일반적으로 유서를 ‘옛날의 백과사전’ 정도로 설명하고 있는데, 이것은 편의상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유서의 본질을 왜곡할 우려가 있다. 유서는 다양하고 방대한 지식이 검색에 편리한 체제로 구성되어 있다. 이점은 백과사전과 동일하다. 그러나 항목의 배열순서부터 편찬자의 주관이 개입되는 방식까지 유서는 백과사전과 상이하다.
백과사전은 알파벳 순으로 어휘가 배열된다. 이는 지식 간에는 어떠한 차등도 없다는 의식이 저변에 깔려 있으며 백과사전은 검색이 중요하다는 기능적 측면이 우선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선의 유서는 나름대로 검색의 편의를 도모하였지만 지식 간에 엄격한 차등을 두었다. 또 유서는 단독 저자에 의해 편찬되는 것이 많기에, 책 전체가 유기적 성격을 갖는다. 그리고 편찬자는 내용에 깊숙이 개입한다. 자신의 평론을 중간 중간에 개입시키는 것은 물론이거니, 처음부터 자신의 독자적 논증을 표방하는 유서도 있다. 또 항목이나 표제어와 관련된 자신의 시詩를 중간 중간에 집어넣기도 한다.
백과사전은 한 사람의 손으로 집필되는 경우가 없기에 아무리 형식적으로 통일성을 기한다고 하더라도 항목들이 고립분산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조선의 사찬私撰 유서들은 대체로 한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졌다. 이것이 취약점이기도 하지만 집체적 작업의 결과물에서 발생하는 문제점이 생기지 않는 장점이 되기도 한다.
유서의 편찬자는 다양한 경로를 통하여 수집된 정보를 특유의 체계에 의하여 구성한다. 이때 찬자의 사회적 처지·의식·성향이 역사적·문화적·사회적 상황과 결합하여 독자적 유서를 만들어 낸다. 이러한 점에서 조선의 유서는 하나의 유기체로서, 다른 문헌에서 지식을 인용하여 재구성·나열한 총집과 변별된다. 그렇기 때문에 조선의 유서는 백과사전과 달리 전체를 읽어볼만한 가치를 지닌다.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전서적 유서는 광해군 때 이수광李?光(1563-1628)이 편찬한 「지봉유설芝峰類說」이다. 이후에 다양한 유서가 출현하였는데, 그 중 주목할 만한 것으로 영조 때 이익李瀷이 편찬한 「성호사설星湖僿說」, 철종 때 조재삼趙在三(1808-1866)이 편찬한 「송남잡지松南雜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