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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기호학/언어학 > 언어학/언어사
· ISBN : 9788968173714
· 쪽수 : 230쪽
· 출판일 : 2016-05-28
책 소개
목차
총론 : 문자정책과 문자권력, 그리고 젠더 정체성
제1부 문자와 거시권력: 동서양 정치공동체의 문자정책
중세 카롤링거 시대의 전례 개혁과 문자개혁__이혜민
1. 책, 권력, 문자정책
2. 카롤링거 시대의 전례 개혁과 전례서
3. 「드로고 전례서」와 카롤링거 시대의 문자개혁
4. 카롤링거 문자개혁의 특징
나치의 문자정책__최경은
1. 독일의 글꼴 프락투어
2. 2중 글꼴 사용의 배경
3. 나치 시대의 프락투어
4. 표준글꼴규정
5. 프락투어 금지의 영향
6. 정책 요소로서의 글꼴
신중국 성립 초기(1950년대) 문맹 퇴치 운동의 역사적 고찰__김은희
1. 신중국 성립 초기 문맹 퇴치 운동의 사회적 배경
2. 1950년대 문맹 퇴치 운동의 전개 과정
3. 1950년대 문맹 퇴치 운동의 성과와 한계
4. 신중국 성립 초기 문맹 퇴치 운동, 그 이후
남과 북 공통 표기법의 조건__연규동
1. 남북 어문 규범의 종류
2. 남북 표기법의 역사
3. 남북 표기법의 총칙
4. 남북 표기법의 실제
5. 남북 표기법의 통합을 위하여
제2부 문자와 미시권력: 문자로 체현된 젠더 정체성
우리 옛 여성의 문자생활__이전경
1. 여성과 문자
2. 한국 여성의 문자 생활 역사
3. 여성과 한글
정치적 글쓰기에 나타난 조선 여성의 정체성__황수연
1. 조선 여성의 訴? 활동과 上言
2. 김씨 부인 상언의 글쓰기 전략과 수사적 특징
3. 정치적 글쓰기와 조선 여성의 정체성
프랑스 현대 문학작품에 나타난 문자, 여성의 정체성 그리고 해방__김미성
1. 앗시아 제바르 그리고 「사랑, 기마행진」
2. 적국의 언어 프랑스어로 쓰는 자서전, 그리고 정체성
3. 글쓰기: 익명의 여성들과의 연대
4. 갇혀 있는 여성과 해방의 문자
저자소개
책속에서
[머리말]
문자가 권력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문자는 그 탄생 초기부터 인류의 경제적, 정치적, 종교적인 활동을 바탕으로 형성된 일종의 “상징 권력”으로서 인간 사이의 사회적, 계급적 관계를 규정하는 데 일조하였다. 근대적인 의무교육이 정착되기 이전까지 호모 리테라투스(homo litteratus)인가 아니면 호모 일리테라투스(homo illiteratus)인가의 문제는, 다시 말해서 문자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인가 그렇지 않은 사람인가의 문제는 인간 사이의 상호 권력관계를 규정하는 주요한 기제로서 작동하였다. 오늘날 대다수의 사람이 문자를 읽을 수 있게 되고 더는 계층이나 젠더의 차이가 문해력(리터러시)의 차이를 낳는 걸림돌이 되지 않게 된 상황 속에서도, 여전히 새로운 지식에 대한 접근 가능성과 그것을 해독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는가는 사회적, 일상적인 권력관계를 좌우하곤 한다. 그 대표적인 예로 외국어와 외국 문자의 해독 능력 및 그러한 능력을 습득할 기회의 취득 여부 같은 것이 있다. “문자와 권력”의 문제는 대단히 고전적인 동시에 사회관계에서 근본적인 문제이며 오늘날의 맥락에서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는 화두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문자를 중심으로 한 사회적인 권력관계는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로 드러나거나 작동하며, 또한 미시적, 일상적인 차원에서 사람들은 문자권력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거나 이를 적극적으로 이용하였을까? 이 책에서는 이러한 질문에 대해 역사학, 문화학, 언어학, 문자학, 고전문학, 현대문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포괄적은 아니더라도 구체적, 실증적인 연구를 바탕으로 대답해보고자 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이 책은 연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HK문자연구사업단이 “문자와 권력”이라는 화두와 관련하여 ‘문자와 공동체’ 및 ‘문자와 정체성’이라는 두 가지 중심적인 세부연구주제에 대해 수행해 온 공동연구 성과를 모아놓은 논문집이다. “문자와 권력”이라는 화두로 본 사업단에서 다룬 주제들은 그 외에도 문자표기의 규범화, 문맹과 문해력의 문제, 문서 위조, 권력과 결부된 텍스트 해석 등 대단히 다양한 범위에 걸쳐 있다. 이 중에서 특히 ‘공동체’와 ‘정체성’의 문제는 학술회의에서 여러 원고가 발표되며 깊이 있게 다루어졌다. 이 책에 수록된 원고의 일부는 바로 HK사업단에서 개최한 학술대회(≪동서양의 문자 정책≫, ≪여성 정체성의 형성과 문자문화≫)와 국제공동세미나(≪권력의 투영-중국의 문자, 제도, 정책≫)에서 발표한 후 국내 유수의 등재학술지에 게재되었던 글이다. 이와 동시에 일부 원고는 ‘공동체’ 및 ‘정체성’이라는 공동연구 주제 아래에 진행된 연구이지만 학술대회에서 발표되거나 학술지에 게재되지 않은 미출간 원고를 이 지면을 통해 발표하고 있다.
문자권력, 즉 문자에 기반을 두거나 문자사용 방식에 영향력을 미침으로써 행사되는 권력은 공동체의 단위에서 작동하면서 개인과 일상생활에도 영향을 미친다. 국가 단위의 거시권력에 의해 수행된 언어정책에 관한 연구는 대단히 많이 나온 데에 비해서, 문자정책에 관한 연구는 국내에서 상대적으로 적거나 별로 없는 편이었다. 이러한 점에서, 문자의 외형(글꼴) 사용을 규정 혹은 규제하거나 대중의 문자 수용(문해력 수준)에 개입하고자 하는 국가 차원의 문자정책을 다루는 것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제1부에 수록된 원고 중 <중세 카롤링거 시대의 전례 개혁과 문자개혁> 및 <나치의 문자정책> 같은 유럽 문명권에 관한 연구들은 엘리트 계층이나 국가가 문자의 외적인 형태를 만들거나 그 사용을 정하는 실증적인 사례들을 공통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거시적인 문자정책을 통해 문자의 표기와 그래픽적인 외형에서 규범화가 이루어지고, 이는 동시에 텍스트의 가독성 같은 독서와 관련된 차원에 영향을 미치거나 글꼴과 결부된 정치적, 문화적인 이데올로기가 발현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점은 9세기 머나먼 카롤링거 시대 프랑크 왕국의 카롤링거 소문자나 20세기 나치 독일의 고딕체 글꼴(프락투어)이나 로마체 글꼴(안티크바)에 대한 정책에서 공통으로 발견된다. 손글씨 서체나 인쇄본의 폰트는 단순히 글자 형태의 유형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로마적, 국제적 이상 혹은 게르만적 이상을 표상하는 문화적인 상징의 차원을 함께 내포하였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시나 국가 단위에서 서체를 개발하여 공적인 공간에서 사용하도록 하는 정책에는 이 책에서 언급한 것과 같은 역사적으로 멀고 가까운 선례들이 있다. 거시권력에 의한 문자정책에 대해 우리는 ‘글자의 아름다움’에 대한 개념을 위로부터 부과하고 규정하고자 하는 시도가 아닌가 하는 질문을 하게 된다. 물론 나치 독일과는 달리 오늘날의 한국에서는 마치 카롤링거 소문자가 자발적으로 채택되었다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사라진 것처럼(그리고 르네상스기에 다른 형식으로 재부활한 것처럼) 사회 공동체와 문자를 사용하는 대중의 집단적, 자발적인 선택에 따라 글꼴의 선택 및 지속적인 사용 여부가 결정될 것이다.
한편, 동양문자권을 다룬 연구들은 현대의 중국과 한국에서 국가적인 차원에서 제시된 문맹 퇴치 운동과 맞춤법 통일안에 주목한다. <신중국 성립 초기(1950년대) 문맹 퇴치 운동의 역사적 고찰>은 20세기 중반 중국에서 국가 재건의 이데올로기에 부합하는 군중 양성을 위해 정부 주도로 적극적으로 추진한 문맹퇴치운동과 그 결과에 대해 살펴보고 있다. 이러한 중국의 사례에서 우리는 문자정책이 교육정책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점을 상기하게 된다. 특히 1950년대 전반기 중국의 문맹 퇴치 사업이 체계적인 교육제도를 갖추지 못한 채 국가의 강제에 의한 정치적인 동원을 통해 이루어졌고, 그 결과 이 시대에 교육을 받은 세대의 문맹률이 오늘날까지도 가장 높은 편이라는 현상으로 귀결된 아이러니는 대단히 흥미로운 역사적 사례라 할 수 있다. 문자 습득이(혹은 더 나아가 교육이) 거시적인 국가 권력의 강제로 일괄적으로 주입되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것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반도의 문자정책에 대해 다룬 <남과 북 공통 표기법의 조건>은 남한과 북한의 표기법을 비교하면서 남북한 표기 규범의 차이를 ‘다양성’이라는 관점에서 평가하고 양자 간 상호 소통의 필요성을 피력하고 있다. 오늘날 분단된 한반도에서는 어문 규범도 분단되어 <한글 맞춤법>과 <조선말규범집>을 각각 따르고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분단 70년이 넘은 오늘날에도 남한의 독자가 북한의 「로동신문」을 접할 때 단어 사용이나 외래어 표기 방식 등에 대한 이질감을 느낄 뿐 문자의 해독에는 큰 문제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양쪽의 표기법에 동질성이 엿보인다. 그 이유는 결정적으로 남과 북의 정부에서 각각 공포한 맞춤법이 1933년 조선어학회의 <한글 마춤법 통일안>이라는 공통된 뿌리를 가진 데에서 기인한다. 이러한 점은 국가 수립 이전 지식인 공동체에 의해 부과된 언어 규범이 이후 국가 정책으로 계승된 후에도 문자 표기의 형태를 어느 정도는 고정시키도록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된다.
문자와 권력의 관계는 미시적, 일상적인 수준에서도 작동한다. 역사적으로 20세기 중반 이전까지 여성은 소외집단으로서 문자문화에서 배제됐으며, 이는 동양과 서양에서 공통으로 나타난 현상이었다. 이 책의 제2부에 수록된 원고들은 여성들의 문자권력에 대한 대응과 극복 노력에 관해 고찰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근대 이전의 한국과 현대 프랑스의 사례라는 이질적인 시대와 문화권을 나란히 제시하고 있는데, 여성이 문자권력에 의한 젠더적 차원의 억압에 대응하는 방식에서 차이점과 더불어 공통점이 엿보이기도 한다. 특히 일상적으로 전통사회의 여성이 여러 면에서 문자사용에 관해 남성 지배층의 규제를 받았다는 사실은 미시권력의 차원에서 전개되었던 여성의 문자생활(혹은 비문자생활)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여성이 글쓰기를 통해 정체성을 드러내고 문자권력에 반응 혹은 대응하는 모습은 조선의 양반 가문 여인과 제3세계 출신 여성 작가의 글쓰기 전략에 대해 각각 다룬 두 원고에서 보여주고 있다. <정치적 글쓰기에 나타난 조선 여성의 정체성>과 <프랑스 현대 문학작품에 나타난 문자, 여성의 정체성 그리고 해방>의 주인공은 각각 김만중의 딸과 알제리 출신의 작가 앗시아 제바르라는 두 여성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17~18세기 조선과 20~21세기 프랑스라는 각기 다른 시대적 배경에서 일종의 공적인 글쓰기인 상언(上言)과 자아에 대한 성찰과 탐구로 특징지어지는 자서전이라는 완전히 다른 글쓰기 전략을 보여준 두 여성을 마주하게 된다. 그렇지만, 이 두 사례 모두에서 개인의 정체성이 가문(가족) 혹은 젠더라는 집단적인 정체성 및 사회적, 정치적인 문제와 유리된 것은 아니었다. 두 여성은 사회와 가족이라는 맥락 안에서 ‘글쓰기’ 행위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거나 찾아가는 여정을 보여준다는 공통점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이들의 글쓰기에는 차이점도 존재한다. 조선의 김씨 부인은 노론이라는 당파성을 지닌 정치적 성향을 보이며 체제 순응적(양반 중심적)이고 가문 중심적인 성향을 보였다. 이에 반해서, 앗시아 제바르의 경우 진정한 소외된 여성(아랍문화권의 여성)으로서 글쓰기라는 행위를 통해 억압당하는 아랍 여성들의 목소리를 문자로 기록하여 남기고, 그 과정에서 여성의 정체성을 재구성하고 여성의 연대와 해방을 꿈꾸었다. 이러한 점은 시대에 따른 차이 때문일 수도 있지만, 이와 더불어 젠더 정체성 이전에 혹은 젠더 정체성과 더불어 계급, 인종, 종교 등과 관련된 사회적인 정체성도 문자권력과 여성의 관계에서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한국 여성의 문자생활 역사를 통시적으로 고찰한 <우리 옛 여성의 문자생활>은 순서상 마지막 글은 아니지만, 총론을 쓰고 있는 유럽 중세사학자인 필자에게 많은 영감과 시사점을 제공한 글이기에 마지막으로 언급하고자 한다. 특히 흥미롭게 다가온 점은 옛 한국과 유럽 중세의 여성 문자생활에서 여러 공통점이 발견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삼국시대와 고려시대에 여성의 문자생활이 주로 불경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는 점, 혹은 조선시대의 여성이 소설을 즐겨 읽는 것을 남성들이 못마땅하게 여겼다는 점이 그러하다. 르네상스기의 유럽 여성들이 가장 많이 외거나 읽었던 책은 바로 그리스도교의 기도서였으며, 이 책을 소유할 수 있었던 이들은 주로 귀족이나 부르주아 계층 여성들이었다. 이와 동시에 이 시대의 유럽 여성들이 가장 열광하며 읽었던 책이 바로 기사도 이야기류였고, 이에 대해 남성 성직자들이 비판하곤 하였다. 또한, 조선시대 여성의 문자능력 함양이 남성들의 조력과 격려를 바탕으로 이루어지기도 하였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공적인 활동을 금지당한 여성들에게 높은 수준의 학문에 대한 직접적인 접근이 차단되었다는 점도 중세 유럽의 여성들이 처했던 상황과 상당히 유사하다. 한편, 조선시대에 여성이 한자 문해력를 갖춘 경우는 궁녀, 의녀, 기녀 등 특수 직접군에 주로 국한되어 있었지만, 한글 문해력은 많은 여성에게 허용되었고 조선 후기에는 여성에 의한 한글 문자생활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중세 유럽 여성들의 경우 소수의 종교인 여성(수도원의 원장 수녀 등)을 제외하고는 대다수가 ‘문맹’이었는데, 이는 주로 라틴어에 국한해 말할 때에 그러하다.
최근 유럽 학계에서 데니스 하워드 그린(Denis Howard Green)을 비롯한 여러 학자가 중세 유럽의 여성들이 프랑스어, 영어, 독일어 등 여러 언어권에서 토착어 문해력(vernacular literacy)을 갖추고 있었다는 사실을 속속 밝혀낸 바 있다. 그린의 역작인 「중세의 여성 독자(Medieval Women Readers in the Middle Ages)」의 우리말 번역본은 연세대 인문학연구원 HK문자연구사업단의 총서 중 하나로 조만간 출간될 예정이다. 우리는 본고 「문자와 권력 - 동서양 공동체의 문자정책과 젠더 정체성」에서 탐구한 내용을 바탕으로, 그리고 앞으로 출간될 저·역서들을 바탕으로 미래에는 단순 비교를 넘어서는 시도를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바이다. 예를 들어, 지구 반대편에 있는 유럽과 한국의 중세라는 양 문명을 어떻게 비교, 분석할 수 있을 것인가, 여성의 문해력 상태에서 서로 이질적인 문명권에서 유사한 양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인가(예를 들어 양 문명권에서 작동하던 젠더와 문자권력관계의 유사성 혹은 차이점) 등의 문제에 대해 동서양을 비교해보면서 더 깊이 있게 고찰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 책에서 제시된 연구들은 여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더 깊이 있는 논의를 발전시킬 가능성을 품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 혜 민
유문자와 권력의 관계는 오랫동안 여러 학자들이 관심을 가져온 주제이다. 그중에서 사회인류학자 잭 구디(Jack Goody)는 문자에 의한 인간 사회와 커뮤니케이션 방식의 지배 및 문자사용의 결과 나타나는 인간의 인식 변화에 대해 논하면서, 책과 권력 사이에 존재하는 밀접한 관계를 강조하였다. 그는 또한 문학작품 및 종교 텍스트의 구성과정에서 나타나는 구전문화에서 문자문화로의 이행을 살펴보면서, 문자화된 신의 말씀을 중개하는 사제의 역할에 대해 언급하였다. 그런데, 구디의 논의에는 단지 구술/문자의 이분법만 존재하며, 특히 ‘문자’를 단지 말을 전사(轉寫, transcription)한 기호에만 국한시켰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비판을 고려할 때 우리는 중세 유럽의 사본에서 크게 발전한 조형적인 장식문자들은 어떤 의미를 지니느냐는 질문을 할 수 있다. 권력의 원천이자 도구로서의 문자와 책의 역할은 구디 외에도 여러 학자에 의해서 논의되어 왔지만, 특히 책이라는 매체의 물질적, 그래픽적 차원(책의 소재와 문자의 형태, 장식 등 책의 외형적 측면)에서 나타나는 문자와 권력의 관계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는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었다고 생각된다.
중세 초부터 그리스도교인들은 책과 문자를 신성하게 여겼으며, 책의 표지와 글자를 장식함으로써 이러한 신성성을 외적으로 드러내고자 하였다. 특히 성서를 비롯한 중세의 핵심적인 종교의식인 전례(典禮, liturgy)에서 사용되는 책은 가장 화려하게 장식되었다. 중세시대에는 문자를 읽을 수 있는 소수의 성직자와 귀족만이 그리스도교 경전에 직접 접근할 수 있었다. 반면에, 전례 의식에는 사회구성원의 다수를 이루는 문맹자도 참여할 수 있었다. 전례에는 사제의 몸짓과 말(설교와 성가), 그리고 각종 전례 용구 같은 상징적인 요소들이 함께 동원되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전례의식은 다양한 종류의 시각적, 청각적 ‘매체’들을 결합하여 조직화한 상징체계를 효과적으로 작동시키면서 거행되었다. 중세의 전례는 단순한 종교의식이 아니라 천상과 지상을 연결하는 권력의 중요한 ‘매개’이자 중세교회가 신도들에 대해 일상적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방편의 하나였다. 다시 말해서, 교회가 사회구성원의 통합과 결속력을 강화하는 사회적 행위로서 수행하던 의례였다. 특히 카롤링거 시대에는 전례의 통일 및 ‘로마화’ 정책이 추진되면서 새로운 전례서들이 만들어졌다. 전례서 편찬은 단순히 글을 읽을 수 있는 지배층이 사용하는 책을 만든다는 의미에 머무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일상적으로 거행되는 전례에 통일된 형식을 부여하고 이를 고정하는 동시에, 정해진 전례 형식을 사회적으로 부과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더욱이 카롤링거 시대의 전례 개혁은 단순히 종교적 차원의 개혁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동시에 언어개혁과 문자개혁을 수반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역사적, 문화적인 의미를 지닌다. 이 시대의 세속군주들은 신정정치에 기반을 둔 권력 강화와 정치적인 통합을 모색하였고, 엘리트층인 종교 지도자들이 이를 지지하고 지원하였다. 특히 교회개혁 및 전례 개혁,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신민들의 복음화(그리스도교화)는 프랑크 왕국의 통합 정책에서 핵심을 이루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서적이 필사되면서 라틴어의 오류를 고치는 언어개혁이 이루어졌고, 이와 함께 성직자 양성을 위한 교육제도의 정비가 추진되었다. 바로 “카롤링거 르네상스”라 불리는 문예부흥은 이와 같은 배경과 과정에서 일어나게 된 것이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서적의 필사 과정에서 언어개혁뿐만 아니라 텍스트의 가독성을 높이기 위한 문자개혁이 대대적으로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당대의 성서나 복음집과 마찬가지로 전례서에서도 새로운 글자체(카롤링거 소문자)의 사용, 띄어쓰기의 확산, 장식문자의 발전, 레이아웃의 발전 등이 목도된다. 물론 중세 사본의 그래픽적 차원의 변화와 발전이 카롤링거 시대에 처음 나타난 것은 아니었다. 7~8세기에 브리타니아에서 켈트 양식과 앵글로색슨 양식이 융합된 코덱스 장식과 레이아웃의 발전이 먼저 나타났고, 이 지방의 수사본(手寫本)들은 8세기 이후 프랑크 왕국에서 제작된 코덱스에 큰 영향을 주었다. 앨퀸을 비롯한 많은 브리타니아 출신 학자들이 카롤루스 대제(Carolus Magnus, 재위 750~ 814년)의 궁정에서 활동하면서 책의 문화에서 섬나라 지방의 영향을 크게 받았기 때문이다.
카롤링거 시대의 전례 개혁과 문자개혁은 서로 밀접한 관련이 있었기 때문에, 특히 전례서라는 책은 이러한 접점을 살펴보는 데 적절한 사료이다. 여러 전례서 중에서도 특히 우리는 “카롤링거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문화유산 중 하나인 「드로고 전례서」(Drogo Sacramentary)를 중심으로 카롤링거 시대의 문자개혁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드로고 전례서」에서는 장식문자와 텍스트 레이아웃의 그래픽적인 차원에서 혁신적인 변화가 두드러지게 눈에 띈다. 이 글에서는 그동안 많이 논의되어 온 카롤링거 시대의 언어와 철자법의 개혁이나 교육개혁보다는, 문자와 책의 그래픽적인 차원에서 나타난 변화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요컨대, 카롤링거 시대의 종교정책과 문자정책의 결과 나타나게 된 문자의 그래픽적인 변화와 혁신 및 그 정치적, 문화적인 함의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이를 위해 우선 카롤링거 시대 문자개혁의 바탕을 이루는 정치적, 종교 문화적인 배경부터 살펴보자. 이는 피피누스 3세(Pippinus III, 재위 741~768년)와 카롤루스 대제의 전례 개혁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