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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교양 인문학
· ISBN : 9788991221390
· 쪽수 : 280쪽
· 출판일 : 2008-10-01
책 소개
목차
저자 서문 한글이 없다면 지금 우리는?
1부 한글, 누가 왜 만들었나
한글은 누가 만들었나?
한글 창제 당시 집현전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한글 창제 후 3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나?
세종은 한글이 한자를 대신할 문자라고 생각했을까?
양반들은 한글을 배울 필요가 있었을까?
실학자들은 한글을 어떻게 봤을까?
연산군은 한글 사용을 탄압했다?
* 한글 외에 창제자가 밝혀진 문자가 또 있을까?
2부 한글, 어떻게 쓰였나
한글로 쓰인 현존하는 최초의 책은?
왜 불교 서적을 한글로 번역했을까?
동국정운은 어떤 책이었나?
백성들은 한글을 어떻게 배웠을까?
한글 보급의 일등공신은 소설이다
한글 규범화 정책은 조선총독부가 시작했다?
일제 강점기에는 한글을 배울 수 없었다?
* 삼국시대에는 어떻게 글을 썼나?
3부 한글, 어떤 글자인가
글자의 이름은 어떻게 정해졌나?
글자의 순서는 어떻게 정해졌나?
왜 한글은 네모꼴이 되었을까?
세종 때에도 통일된 맞춤법이 있었을까?
모아쓰기와 풀어쓰기
한글은 소리를 나타내는 데 가장 탁월한 문자였다
한글은 우수한 자질문자라는데?
* 일본에 한글을 닮은 글자가 있다는데?
* 가림토 문자란 무엇인가?
4부 한글의 현재와 미래
한글은 ‘대한제국의 글자’라는 뜻이다
한글날은 왜 10월 9일일까?
정보화 시대, 한글의 가능성
* 인류의 위대한 유산, 한글
저자 후기 책을 마치며
박영준 선생을 그리며
참고문헌
리뷰
책속에서
국어학계 또한 마찬가지의 고민에 빠져 있다. 한글 창제자에 대해서는 국어학계에서도 의견이 분분하기 때문에 무엇이 옳다고 딱 부러지게 말하기 힘든 상황이다. 여기에 한글 창제가 왕실 가족들만의 비밀 프로젝트였다는 설까지 덧붙여졌으니 한글의 창제자를 단정해 말한다는 게 더욱 어려워졌다. 그런데 간단할 것 같은 이 문제가 논란거리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
한글의 창제자가 논란이 된 것은 창제 과정을 상세히 기록한 기록물이 없기 때문이다. <조선왕조실록>에 나온 한글 창제 기사의 내용만으로는 창제 과정을 분명히 알 수 없다. “이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 28자를 지었는데, 그 글자가 옛 전자를 모방하고”라는 1443년(세종 25) 12월조 <조선왕조실록>의 기사는 창제자가 임금임을 밝히고 있지만 이 내용만으로 세종이 단독으로 한글을 창제했다고 말하기 힘들다는 것이 문제다. 한글 창제에 관한 한 이처럼 선언적인 기록만 있을 뿐 창제 과정이 어떠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 한글은 누가 만들었나?
연산군은 1504년(연산 10) 자신을 비방하는 한글 투서 사건이 일어나자 한글을 가르치지도 배우지도 말 것이며 이미 배운 자도 쓰지 못하게 하는 이른바 ‘언문금압’을 발표한다. 심지어 이틀 후에는 관리들의 집에 보관되어 있는 언문으로 된 책을 다 불사르도록 명한다. 이러한 일화는 연산군을 역대 임금 중에 한글을 가장 탄압했던 임금으로 기억하게 했다. 더욱이 폐비 윤 씨 사건과 관련해 폭정을 일삼았던 폭군의 모습과 한글 탄압의 모습이 자연스레 중첩되면서 더욱 그럴 듯한 이야기로 각인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렇다면 과연 연산군은 유독 한글을 미워하고 탄압한 못된 임금이었을까? (중략) 연산군이 한글 사용을 금지한 데는 익명으로 된 한글 투서 사건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연산군 10년 7월 투서 사건이 발발하자 연산군은 한글 사용 금지법에 해당하는 기훼제서율이라는 법령과 한글 사용자를 알고도 관가에 알리지 않으면 벌을 준다는 제서유위율을 발표한다. 그러나 주목할 것은 이러한 한글 금지에 대한 법령이 과연 한글 탄압을 위한 조치인가 하는 점이다. 연산군이 한글을 증오하고 무가치하다고 판단해 사용을 금지한 것일까? 아니면 한글로 투서를 만든 범인을 잡기 위해 내린 조치일까?
- 연산군은 한글 사용을 탄압했다?
일본어 상용화 정책은 일본의 교육 정책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1차 교육령과 2차 개정교육령에서는 언어 교육에 있어서 ‘일본어 필수, 조선어 필수’라는 체제를 유지했다. 그러나 이미 일본어는 국어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모든 과목의 교과서가 일본어로 되어 있었고, 교실에서는 일본어로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는 조선어 과목을 필수로 정하는 것이 실질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학생들은 강의를 잘 듣고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서라도 일본어를 우선적으로 학습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조선어를 필수과목으로 지정해 교육하던 시절이었지만 이미 학생들은 조선어를 학습해야 할 특별한 동기를 느끼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 있었다. 어떻게 해서 이 지경까지 오게 되었을까?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입시과목에 조선어가 없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조선어가 필수과목으로 허용되던 시기였지만 실질적으로는 조선어 교육이 무시되었던 것이다.
- 일제 강점기에는 한글을 배울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