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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제목 : 기탄잘리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외국시
· ISBN : 9788991596900
· 쪽수 : 260쪽
· 출판일 : 2023-10-18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외국시
· ISBN : 9788991596900
· 쪽수 : 260쪽
· 출판일 : 2023-10-18
목차
1. 예이츠 서문
2. 기탄잘리
3. 옮긴이의 말
저자소개
라빈드라나드 타고르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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벵골 르네상스의 시인 ‧ 작가 ‧ 극작가 ‧ 작곡가 ‧ 철학자 ‧ 사회 개혁가 ‧ 화가로 활동한 그는 맥락적 현대주의로 벵골 문학과 음악 그리고 인도 미술을 기탄잘리의 “매우 감성적이고 신선하며 아름다운” 시를 썼다. 1913년 타고르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최초의 비유럽인이 되었다. 1880년대에 몇 권의 시집을 낸 뒤 시가집 『아침의 노래』(1883)와 1890년 그의 성숙된 천재성을 보여주는 시집 『마나시 Mānasῑ』를 펴냈는데 그의 대표적인 시들이 상당수 실려 있다. 1912년에 출간된 『한 다발의 이야기들 Galpaguccha』에는 그들의 비참한 삶과 불행에 대해 썼다. 그는 정치적·사회적 문제에 관심이 있었으나, 결코 인도의 독립을 지상의 목적으로 간주하지는 않았다. 그는 실라이다에서 벵골의 전원을 사랑하게 되었고, 무엇보다도 갠지스강을 사랑하여 그의 문학의 중심 이미지로 삼게 되었다. 이곳에 머무는 여러 해 동안 그는 『황금 조각배 Sonār Tari』(1893)·『경이 Citrā』(1896)·『늦은 추수 Caitāli』(1896)·『꿈 Kalpanā』(1900)·『찰나 Kṣaṇῑkā』(1900)·『희생 Naibedya』(1901) 등의 작품집과 함께 『Chitrāṇgadā』(1892), 『Chitra』라는 제목으로 1913년에 재출간하였고, 『정원사의 아내 Mālinῑ』(1895)라는 서정적 희곡을 출간했다. 1913년 널리 알려진 산문 시집 『기탄잘리 Gῑtāñjali』(신에게 바치는 노래, 1910)의 영역본으로 노벨상을 받았다. 그는 생애의 후기 25년 동안 21권의 저작을 펴냈다. 시와 단편 소설 외에 주목할 만한 소설도 여러 편 썼는데, 『고라 Gorā』(1907~10, 영역 1924)는 그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다. 1929년 『동아일보』 기자에게 건네준 6행의 영문시 「동방의 등불」(원래는 시 제목이 없었다. 동아일보 편집인이었던 주요한이 번역해서 붙임. 후에 누군가에 의해 6행의 영문시가 8행으로 잘못 번역됨)은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한국민에게 큰 감동을 안겨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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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채(크리슈나다스)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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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일군 오천면에서 태어났다. 지금은 포항이다.
1972년 경북대학교를 졸업하고 난 뒤 다수의 직업을 거친 후 서울의 대기업에서 근무를 하였다.
마음의 행복 이상의 것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윗사람들을 보았을 때 그들은 행복한 것 같지는 않았다.
신을 만나면 그것이 충족될 것 같았다.
어느 날 회사로 돌아가는 길에 명동 성당에 들러 성모상 앞에서 기도를 하였다.
“신을 보는 삶을 주소서. 그렇지 않다면 이 삶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럴 수 없다면 저의 생명을 거두어 주소서.”
회사 생활은 나의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회사를 그만두었다.
더 확신을 갖기 위하여 믿음이 가는 수녀님에게 물었다.
“제가 회사를 그만두는 것이 어떻습니까?”
“물론입니다.”
충남에 있는 수덕사 근처에서 생활했다.
덕산 성당 신부님으로부터 신학교에 들어갈 것을 권유받다.
신을 위한 일을 하는 것보다는 신을 만나고픈 열정이 더 강했다.
그곳에서 몇 개월 지내다 제주도로 가서 약 2년간 생활하였다.
주로 서귀포에서 살았다.
자유로운 생활은 했지만 찾고자 했던 행복은 보이지 않았다.
내가 무모한 생활을 시도했다는 느낌도 들었다.
앞길이 도무지 보이지 않았다.
강원도로 가서 장터의 상인이 되고자 하는 계획을 하였다.
그때 너무나 놀랍게도 대학의 친구가 제주시 삼도동의 나의 주소지로 찾아왔다.
그는 제주시의 나의 주소를 모른다. 어떻게 물어 찾아왔다.
“지도교수님께서 오라신다.”
너무나 고마운 두 분이다.
특히 나의 친구는 친구가 아니라 은인이다.
부산으로 가서 대학교 강사 생활을 몇 년 했다.
몇 년 뒤 창원에 있는 국립 대학교 교수가 되었다.
가르치다가 명상에 무엇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송광사 주위의 암자에 기거하기도 하였다.
법정 스님에게 제자로 받아달라는 부탁을 드리기도 하였다.
성당 고해소 신부님에게 물었다.
“신이 어디에 계십니까?”
“산과 들에 있지요.”
세상에 산과 들이 얼마나 많은 데, 어느 산 어느 들 말입니까?
1988년 말 붓다가 태어난 곳인 인도로 명상을 배우러 갔다.
뉴델리에 기거하면서 슈리 오로빈도 아쉬람에 자주 갔다.
그곳의 한 이방인에게 길을 물었다.
“제가 어디로 가면 좋습니까?”
“알란디로 가세요.”
알란디의 숙소의 관리인께서 따라오라고 하셨다.
지하의 서고로 안내되었다.
책을 한 권 꺼내 드니 나에게 내밀었다.
갸네쉬바리 성자가 쓴 바가바드 기타였다.
처음으로 바가바드 기타와 마주했다.
켈커타에서 마더 데레사의 축복을 받기도 했다.
비파사나 아카데미에서 명상을 배웠다.
마음을 붙잡았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니 내가 묘한 상태로 이동하는 것 같았다.
그때는 윗입술 위에 집중했다.
전적으로 집중하자 명상하는 자가 사라지고
그곳의 세포가 살아 움직였다.
숨을 내쉬자 세포가 산 같이 커졌다.
들이쉬자 산이 없어졌다.
이 신기한 현상에 온통 몰입되었다.
그때는 오전이었다.
오후 명상 시간에 큰 일이 일어날 것 같았다.
자리에 앉아 명상을 하자마자 곧
거대한 산이 있다가 없다가 하다가
드디어 새로운 차원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명상자는 사라졌다.
광활한 빛의 하늘이 거기에 있었다.
나는 엑스터시의 바다에 빠졌다.
너무나 놀란 나는 그곳의 성자분께 달려가 물었다.
“그것은 사마디입니다.”
그 당시에는 영성의 세계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었다.
누구나 명상을 한다면 이 경험을 한다고 알고 곧 잊어버렸다.
봄베이의 한 요가 연구소에서
외국풍의 연구원에게 인도에서 가장 성스러운 곳을 물었다.
“티루반나말라이에 있는 아루나찰라 산입니다.
거기에 라마나 아쉬람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아루나찰라 산자락에 고요만이 있었다.
그곳으로 순례를 온 구루와 한 무리의 제자들은 말을 하지 않았다.
눈을 마주하는 것이 전부였다.
다른 곳들에서는 무엇을 하라고 하는데
이곳에서는 무엇을 하라고 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진리에 이른다는 것을 그 당시에는 몰랐다.
그곳에서 한 달가량 머물렀다.
깨닫는 것을 다음의 생애들로 미루어야 될 것 같았다.
고국으로 돌아오기 직전에
북인도의 갠지스 강가인 하리드와르로
라마나 마하리쉬의 제자 파파지를 만나러 갔다.
그분이 말씀하시는 요지는
마음이 나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 말의 의미를 이해했다.
그래서 나는 마음을 내려놓았다.
그러자 순식간에 앞에 계시 든 분이 사라졌다.
방이 사라졌다.
질문하고 있던 본인이 사라졌다.
이 현상계를 완전히 벗어났다.
빛이 끝없이 펼쳐진 하늘 같은 것만 거기에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나는 모른다.
이 현상계에 돌아오자
방이 보였다.
앞에 스승님이 보이셨다.
질문하는 내가 의식되었다.
“그것이 깨달음입니다. 그대는 붓다입니다.
찾을 것이 더 없습니다. 당장 고국으로 돌아가십시오.”
붓다라는 말은 자신의 바탕을 안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인 것 같았다.
자신의 바탕이 없는 사람이 누가 있는가?
누구나 붓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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