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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외국에세이
· ISBN : 9788994026503
· 쪽수 : 348쪽
· 출판일 : 2010-05-14
책 소개
목차
1부 홀로 떠나야 하는 길들
눈으로 하는 작별/ 위얼/ 열일곱 살/ 사랑/ 홀로 가야 하는 길/ 외로움/ 믿음과 불신 사이/ 1964년/ 선명해지는 것/ 무엇/ 함께 늙기/ 만약/ 넘어졌을 때-K에게/ 걱정/ 화장놀이/ 겨울 빛깔/ 산책/ 누구를 위해/ 클럽/ 집으로 가는 길/ 오백 킬로미터/ 쥐화/ 어머니의 날/ 두 개의 비밀계좌/ 행복
2부 모래 위의 발자국, 바람 속의 목소리, 빛 속의 그림자
찾았다/ 우울증/ 우리 동네/ 배우지 않았나요/ 화재 경보/ 원숭이 마피아/ 도시의 원주민/ 두보/ 댄스 플로어/ 팔찌/ 홍콩/ 눈처럼 새하얀 천/ 별이 빛나는 밤/ 카프카/ 상식/ 치치/ 늑대가 온다/ 신 이민/ 울남 하늘/ 꽃나무/ 혼란/ 시간/ 거리/ 쑤막/ 느리게 보기
3부 산과 들에 가득 핀 차나무 꽃
심연/ 무장해제/ 젊었지/ 여인/ 틀니/ 동창회/ 고비/ 노자/ 걸음마/ 눈/ 말/ 지켜보기/ 끄다/ 1918년, 겨울/ 귀혼
리뷰
책속에서
안드레아스는 열여섯 살이 되던 해에 교환학생으로 일 년 동안 미국에 가게 되었다. 공항에서 우리는 작별의 포옹을 했다. 내 머리는 그의 가슴께에 겨우 닿았다. 마치 기린의 다리를 붙들고 선 느낌이었다. 안드레아스는 엄마의 깊은 사랑을 간신히 참아내는 듯 보였다.
지루하게 늘어선 줄에서 여권 심사를 기다리면서 천천히 나아가는 그의 뒷모습을 나는 줄곧 눈으로 뒤쫓았다. 마침내 안드레아스의 차례가 되었다. 창구 앞에서 잠시 멈춰 섰다가 여권을 돌려받더니, 순식간에 문 안으로 사라져버렸다.
나는 줄곧 기다렸다. 잠깐 뒤돌아보지나 않을까. 하지만 그는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눈으로 하는 작별〉
조금씩 어둠이 걷히는 새벽, 엄마는 어느새 깨어나 아무 말 없이 내 곁에 앉는다. 나이 든 여인은 다 그러한가? 몸이 점점 왜소해지면서 걸음이 가벼워지고 목소리도 작아지면서 마치 그림자처럼 존재감이 점차 희미해진다. 나이 든 여인은 다 그러한가?
나는 쓰던 글을 멈추지 않고 말한다.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나셨어요? 우유라도 데워드릴까요?”
엄마는 아무 말 없이 한참 동안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가만히 속삭인다.
“그쪽은 내 딸을 닮았네요.”
고개를 든 나는 엄마의 성근 흰머리를 어루만지며 말한다.
“엄마, 맞아요. 제가 엄마 딸이에요.”
-〈위얼〉
침대칸에서 내려와 엄마 옆에 앉아 속삭인다.
“누우세요. 이불 덮어드릴게요.”
엄마는 몸을 옮겨 나와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예의 바르게 말한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괜찮아요.”
엄마가 갑자기 예의를 차리면 나는 알아차린다. 지금 이 순간 엄마는 내가 누군지 모른다. 자신을 도우려는 친절한 사람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다. …… 한밤중의 기차 안은 오로지 정적만이 감돈다.
-〈오백 킬로미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