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교양 인문학
· ISBN : 9791124638279
· 쪽수 : 208쪽
· 출판일 : 2026-10-06
책 소개
목차
추천의 글 | 서문 | 한국어판 서문
유럽 문제로서의 팔레스타인 : 가자 지구의 집단학살과 근대 500년의 식민주의
팔레스타인에서 추방된 유대인? | 집단학살이 끝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 하마스의 공격은 탈식민지화를 요구하는 저항 | 이스라엘 정부의 발표를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 | 집단학살은 어떤 체계를 통해 가능해졌는가 | 인문학으로부터 생각하다 | 가자 지구를 보면서 일본은 자국의 식민주의를 떠올릴 수 있는가 |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안락한 생활을 하는 자 | ‘인종’은 유럽 식민주의가 ‘발명’한 것 | 시오니즘 운동은 반유대주의에 대한 반응 | 국가 유지를 위해 홀로코스트의 기억을 이용하다 | 근대 학문에 내포된 인종주의
역사학자는 무엇을 물어야 하는가 : 독일 현대사 연구자들은 왜 팔레스타인 문제를 경시했는가?
나치즘 연구자는 나치즘을 제대로 직시하지 않는다 | 독일과 이스라엘을 이어주는 ‘배상’ | 두 차례의 역사가 논쟁 | 누구를 위한 ‘기억’인가 | 독일은 과거를 극복한 우등생인가 | “아우슈비츠는 유일무이한 악이다” | 노예제는 끝났는가 | 경제 문제, 노동 문제로서의 나치즘
어느 서점 이야기 : 우크라이나와 팔레스타인의 역사를 연결하기
두 전쟁의 연결 | 긴 척도로 문제를 파악하다 | 폴란드 서점 E. 노이슈타인 | 우크라이나-폴란드-이스라엘을 잇는 생애 | 이스라엘을 이끈 동유럽 출신자 | ‘국가(國家) 없는 민족’의 국가(國歌) | 시오니즘 운동은 드레퓌스 사건 이전에 시작되었다 | 민족운동의 모체가 된 지역 | 이주하여 국가를 건설한다는 발상 | 일본도 ‘외부자’가 아니다 | 적(敵)은 제도(制度), 아군은 모든 인간
식탁 위의 폭력 : 독일, 러시아, 이스라엘의 음식과 농업을 통한 폭력
우리 식탁에 존재하는 폭력 | 투기 자금이 초래하는 기아 | 푸틴의 농업 정책은 외교 무기 | 우크라이나의 곡물을 겨냥한 미국과 중국 | 국제곡물도시 오데사 | ‘기아 계획’을 주도한 헤르베르트 바케 | 홀로코스트의 그림자에 가려진 ‘정착과 기아’ | 굶으면 안 되는 사람과 굶어도 되는 사람 | 이스라엘의 음식과 물을 통한 폭력 | 기아는 ‘낮은 관심’에 의한 폭력
‘진정한 의미의 세계사’를 배우기 위해
지금의 세계사는 지역사의 집합체일 뿐 | ‘서(West)’란 무엇인가? | 나치즘은 근대 서양적 가치관의 정수 | 음식을 통한 이스라엘의 폭력에 눈감은 것을 반성하다 | 우리의 생활은 여전히 노예제에 의존하고 있다 | 일본사, 서양사, 동양사라는 구분 | 서양사에서 팔레스타인 연구를 한다면 | 폴란드의 마다가스카르 계획 | ‘민족의 비애’를 지닌 폴란드의 대국주의 | 이스라엘 문제가 아니라 팔레스타인 문제 | 이스라엘 폭력의 기원은 동유럽에? | 지금 이스라엘의 방식은 이상하다 | 누르지 말아야 할 버튼 | 핵 시대의 세계사 | ‘반유대주의’라는 번역의 오류
마치며 | 옮긴이의 말 | 주
책속에서

“나치의 홀로코스트를 앞에 두고, 인간에게 어떻게 이토록 잔학한 짓을 할 수 있느냐고 묻는 것은 위선적이다”라고, 이탈리아의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Giorgio Agamben)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렇게 되묻고 싶습니다.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오히려 그것은 도대체 어떤 체계(system)를 통해서 가능해졌는가 하는 것이 아닌가.” ‘체계’라는 말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이사국(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이 거부권을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 때문에 이스라엘은 지금까지 수많은 국제법 위반, 전쟁범죄, 반인도적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그때마다 미국이 거부권을 행사해 한 번도 제재를 받지 않았습니다. 이 ‘이스라엘 불처벌’이라는 국제사회의 나쁜 ‘전통’이 21세기인 지금, 가자 지구 집단학살을 가능하게 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80년 전 전쟁(제2차 세계대전)의 전승국이 세계 대부분 나라들의 의향을 거부할 수 있는 구조 자체가 부정의의 온상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국제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세계에는 이런 전쟁범죄를 공정하게 재판하는 체계 자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시오니즘도 서구 식민주의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동양의 작은 제국이었던 일본도 예외는 아닙니다. 한때 일본이 중국 동북부에 만든 괴뢰국인 만주국에는 일본에서 “미개척지를 개척한다”는 선전을 통해 농민들이 바다를 건너왔는데 그곳에는 이미 논밭이 잘 정비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왜일까요? 한반도에서 온 이민자들, 일본의 식민주의를 통해 쫓겨난 사람들이 그 땅을 먼저 개척했기 때문입니다. 그 땅을 헐값에 사들여 무력으로 빼앗고 그곳에 일본 빈농을 정착시켰습니다. 그러자 그 땅의 중국인과 조선인들은 무기를 들고 저항하며 개척촌을 습격했습니다. 그런 그들을 일본인들은 ‘토비(土匪)’, ‘공비’라고 불렀고, 그들의 폭력이 싫다면서 총을 들고 정착을 추진했습니다. 이것은 팔레스타인에서 유대인들이 하고 있는 일과 겹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