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외국에세이
· ISBN : 9791158090807
· 쪽수 : 224쪽
책 소개
목차
인생에도 후미에가 있으니까 - 《침묵》이 완성되기까지
문학과 종교 사이의 골짜기에서
| 첫 번째 강의 | 교향악을 들려주는 것이 종교
| 두 번째 강의 | 사람이 미소 지을 때
| 세 번째 강의 | 연민이라는 업
| 네 번째 강의 | 육욕이라는 등산로 입구
| 다섯 번째 강의 | 성녀로서가 아니라
| 여섯 번째 강의 | 그 무력한 남자
의지가 강한 자와 나약한 자가 만나는 곳 - 《침묵》에서 《사무라이》로
진정한 ‘나’를 찾아서
옮긴이의 말
리뷰
책속에서
예수상이 새겨진 동판인 후미에(踏?)를 밟는 것은, 지금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당시의 기리시탄에게는 자신이 가장 믿고 있는 사람의 얼굴, 자신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얼굴, 자신이 이상으로 여기는 사람의 얼굴을 밟는 일이었습니다. 예컨대 연인의 얼굴을 밟으라고 하면 여러분은 어떤 기분이 들 것 같습니까? 안 밟으면 고문하고 죽여버리겠다고 한다면 밟겠습니까? 저라면 아내의 얼굴을 밟겠지만요.(강연장 웃음) 여러분, 지금 웃었습니다만, 이 부분이 이 이야기의 중심입니다.
에도시대 기리시탄의 후미에와 마찬가지로 전쟁 중 우리 역시 자신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여기는 신조, 동경하는 삶, 그런 것을 흙 묻은 신발로 짓밟듯이 살아야만 했습니다. 전후(戰後) 사람들이나 요즘 사람들 역시 많든 적든 간에 자신의 ‘후미에’를 갖고 살아왔을 겁니다. 우리 인간은 자신의 후미에를 밟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 소설가는 여러분과 마찬가지로 인생을 알 수 없고, 인생에 대해 결론을 낼 수 없기 때문에 손으로 더듬듯이 소설을 쓰고 있을 뿐입니다. 인생에 대해 결론이 나오고 미혹이 사라졌다면 우리는 소설을 쓸 필요가 없겠지요. 소설가는 헤매고 또 헤매는 사람입니다. 어둠 속에서 헤매고 손으로 더듬어가며, 인생의 수수께끼에 조금씩이라도 다가가고 싶어서 소설을 쓰는 겁니다.
우리는 순교한 사람들을 존경하지만, 배교한 사람들을 경멸할 수는 없습니다. 그럴 자격이 없습니다. 우리도 그런 상황에 놓였다면 밟았을지 모르니까요.
그들도 인간인 이상, 그들에게 목소리를 주고 싶었습니다. 그들을 침묵의 재 안에서 불러일으키고 싶었습니다. 침묵의 재를 긁어모아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침묵’이라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아울러 저는 박해 시대에 그렇게 많은 탄식과 피가 흘렀는데도 왜 신은 침묵했을까, 하는 ‘신의 침묵’과도 겹쳐놓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