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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과학 > 과학자의 생애
· ISBN : 9791159920073
· 쪽수 : 1504쪽
책 소개
목차
1권
추천 해제_뉴턴의 전기를 왜 읽어야 하는가
초판 서문_“그에게는 한계가 없다”
2판 서문_뉴턴이라는 경이로움, 그 끝없는 여정
연대에 관하여
각주에 사용된 약어
1장 신세계를 발견하다
2장 침착하고, 말이 없고, 사색적인 소년
3장 고독한 학생
4장 운동으로 문제를 풀다
5장 경이로운 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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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
연대에 관하여
각주에 사용된 약어
6장 루카스 석좌교수
7장 출판과 위기
8장 반항
9장 침묵의 세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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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
연대에 관하여
각주에 사용된 약어
10장 프린키피아
11장 혁명
12장 조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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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권
연대에 관하여
각주에 사용된 약어
13장 왕립학회장
14장 우선권 논쟁
15장 쇠락의 세월
참고문헌에 대하여
감사의 말
역자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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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1장 신세계를 발견하다
뉴턴은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신세계를 발견했다. 1661년경 자연철학은 과학혁명이라는 이름하에 근본적인 재구성을 충분히 겪은 후였다. 철학자들은 자연의 익숙한 외관 뒤에 숨어 있는 새로운 세계를 실제로 발견했다. 그것은 일상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질적인 세계가 아닌 양적인 세계, 유기적인 세계가 아닌 기계론적인 세계, 유한한 세계가 아닌 무한 범위의 세계였다. 많은 이들을 두렵게 하는 이질적인 세계였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그에 대한 도전이 전율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케임브리지에서 뉴턴은 바로 이러한 세계를 발견했다._1권 34쪽
그럼에도 갈릴레오가 대담하게 예언한 역학의 재건은 좀처럼 시작되지 않았다. (…) 실제로 1661년에는 두 명의 주요 인물만이 관성의 법칙을 포용하고 있었다. 르네 데카르트와 크리스티안 하위헌스였다. 사실 관성 운동의 직선적 성격을 주장하면서 현재 우리가 받아들이고 있는 방식으로 관성의 법칙을 말한 사람은 갈릴레오가 아니라 데카르트였다._1권 48쪽
16세기와 17세기의 천문학, 역학, 광학에는 20세기의 눈을 즉시 사로잡는 공통의 맥락이 흐른다. 바로 각 분야의 업적들이 수학적 용어로 표현되었던 것이다. 우리의 눈에는 그후 지금까지 자연과학을 점점 더 강하게 지배해온 패턴, 즉 자연을 수식화하는 방식의 확립과정이 보인다. 아마 1661년에는 그런 맥락이 관찰자의 눈에 그리 뚜렷하게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_1권 53쪽
연금술이 인간의 약을 올리는 영원한 은밀함을 지녔다면 그 대척점에는 수학이 있었다. 자신을 지식이란 이름으로 불러달라는 수학의 바로 그 요구는 만인에게 공개된 증명들에 기초해 있었다. 전자가 암시와 상징성을 내세워 구불구불 돌아갔다면, 후자는 엄밀한 논리라는 차가운 빛에 의존해 똑바로 나아갔다. 아마 17세기의 지식 세계가 얼마나 다양했는지에 대해 말할 때, 그렇게 대조적인 두 분야의 연구가 둘 다 명백히 번성하는 상태로 공존했다는 사실보다 더 좋은 예는 없을 듯하다. 후세에 가서야 17세기의 연금술은 죽어가는 식물에서 핀 최후의 꽃이었고, 17세기의 수학은 강인한 다년생 식물에서 핀 최초의 꽃이었음이 밝혀질 터였다. 연금술의 상태가 어떠했든, 1661년에 수학은 누가 봐도 번창하는 사업이었다._ 1권 68쪽
2장 침착하고, 말이 없고, 사색적인 소년
뉴턴이 어머니에 대해 애정 어린 회상을 단 한 줄도 남기지 않았다는 사실은 중요한 의미를 띤다. 심지어 어머니의 죽음도 주목받지 못하고 넘어갔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뉴턴은 고통에 시달리는 인간이었고, 적어도 중년기에는 항상 신경쇠약의 문턱을 넘나든 극도로 신경질적인 인물이었다. 남을 잘 믿는 그의 성격을 확대 해석하지 않더라도, 이미 다른 아이들과 달리 아버지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당황하고 있었을 아이의 내면적인 고통에 어머니의 재혼과 떠남이 엄청난 영향을 끼쳤으리라고 확신하는 데는 부족함이 없으리라_1권 111쪽
평범한 소년들은 그를 보고 당황했을 게 분명하다. 그는 펨브로크 백작에게 그의 첫 번째 실험은 크롬웰이 죽고 거대한 태풍이 영국을 강타하던 날에 한 것이라고 말했다. 바람을 등진 채 한 번, 바람을 안은 채 다시 한 번 점프를 한 뒤 잔잔한 날에 뛴 거리와 비교해서 “태풍의 힘”을 측정한 것이다. 그 태풍은 지금까지 그가 알고 있던 어느 태풍보다 1피트(약 30센티미터?옮긴이) 더 강하다는 말에 아이들이 놀라자, 뉴턴은 비약 거리를 표시한 흔적들을 보여주었다. 이 이야기의 한 판본에 따르면 그는 바람을 교묘히 이용해 멀리뛰기 시합에서 승리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역시 잘난 녀석의 교활한 술수로 여겨져 의심만 증폭시켰다._1권 125쪽
해시계는 지적 도전이었다. 뉴턴은 가난한 클라크의 집을 해시계로 가득 채웠는데, 자신의 방은 물론이고 다른 방들과 현관 등 해가 드는 곳은 어디에나 해시계를 만들어놓았다. 그는 이 벽 저 벽에 막대기를 박아 한 시간, 반 시간, 심지어 15분을 표시하게 했고, 그 막대기에 끈을 묶고 둥근 물체를 매달아 하루하루 그림자의 길이를 잴 수 있게 했다. 일종의 책력을 꾸준히 기록한 끝에 그는 태양의 주기들을 구분하게 되었고, 주야평분시(춘분과 추분), 하지와 동지, 그리고 심지어 그 달의 일수도 알아낼 수 있었다. 결국 하숙집의 가족은 물론이고 동네 이웃들도 “아이작의 해시계”를 보게 되었다. 이처럼 천체의 장엄함과 자연의 일정함이 그의 눈앞에 잊지 못할 모습으로 펼쳐졌다._1권 126쪽
뉴턴을 이상하고 불가사의하게 여긴 집단은 그랜섬의 학생들만이 아니었다. 울즈소프의 하인들에게도 뉴턴은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존재였다. 한편으로는 주의력이 형편없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끼니를 건너뛰기까지 했으니 그들 눈에는 멍청하고 게으른 소년으로 보이는 게 당연했다. 그들은 “그가 떠난다고 하자 매우 기뻐하면서, 그 아이는 ‘핵교’가 아니면 딱히 맞을 데가 없을 거라 단언했다._1권 13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