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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외국에세이
· ISBN : 9791164459155
· 쪽수 : 672쪽
· 출판일 : 2024-03-30
책 소개
목차
9-2. 네덜란드_ 헤이그 Den Haag /1883년 1월~1883년 9월
10. 네덜란드_ 드렌터 Drenthe /1883년 9월~11월
11. 네덜란드_ 뉘넌 Nuenen /1883년 9월~1885년 11월
책속에서
밀레의 말을 계속 떠올리고 있다. ‘Je ne veux point supprimer la souffrance , car souvent c’est elle qui fait s’exprimer le plus energiquement les artistes(고통을 회피하지 않겠다. 고통이야말로 예술가의 표현력을 가장 강렬하게 끌어올려주기 때문이다).’ (……) 나 자신을 전원화가로 지칭했는데, 그게 사실이기도 하고, 앞으로는 더 분명해질 거야. 내가 그 옛날에, 밤이면 광부나 토탄 캐는 사람들의 집, 불가에 앉아 그들을 바라보고, 여기서는 직조공이나 농부들의 생활상을 관찰한 게 괜한 짓은 아니었더라. 작업 때문에 다른 생각할 겨를도 없어. 온종일 농부가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어느 새 나도 그 속으로 빨려들어가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거든.
네 편지를 보니, 전시회에서 보면 대중들이 밀레의 작품에 무관심한데 이런 상황은 예술가는 물론이고 미술상들에게도 맥빠지는 일이라고 썼더구나. 나도 같은 생각이야. 그런데 무엇보다 밀레 자신 이런 상황을 느꼈고 잘 알았어. 상시에의 책을 읽다가 내가 놀랐던 건, 밀레가 화가로서 첫발을 내딛던 순간을 회상하는 부분이었어. 정확한 문장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 의미는 기억난다. ‘내가 화려한 신발을 신고 부유한 삶을 사는 신사였다면 이런 무관심이 정말 괴로웠겠지만, puisque j’y vais en sabots je m’en tirerai(난 나막신을 신고 다니니까 잘 헤쳐나갈 수 있다).’
(……) 내가 밀레의 말을 상세히 설명하는 이유는 ‘도시 사람이 농부를 그리면 생김새들은 제법 근사한데, 본의 아니게 자꾸 파리 외곽 변두리가 떠오른다’던 네 편지 내용이 생각나서야. 나도 전에 종종 그런 인상을 받았거든. 그런데 그건 화가 자신이 전원생활에 충분히 깊이 뛰어들지 못해서가 아닐까? 밀레는 이런 말도 했었지. ‘Dans l’art il faut y mettre sa peau(예술에 마음과 영혼을 다 바쳐야 한다).’
_400번 편지에서
<감자 먹는 사람들>은 확실히 황금색과 잘 어울리는 그림이야. 아니면 잘 익은 밀밭의 깊은 색을 가진 벽지로 도배된 벽에도 잘 어울릴 거야. 이런 환경이 아니라면 절대로 걸어선 안 돼. 어두운 배경에서는 진가가 드러나지 않거든. 특히나 흐릿하고 밋밋한 배경에서는 더 볼품없어 보여. 무척 어두운 실내에서의 순간을 담은 그림이라서 말이야.
사실은 실제 장면도 일종의 금색 테두리에 들어 있었어. 난로의 열기와 불빛이 흰 벽을 가득 비췄거든. 그림에서는 잘려나갔지만, 실제로는 그 모든 게 함께 비춰진 모습이 관찰자의 눈에 비친 장면에 가깝지.
다시 한 번 강조하는데, 이 그림은 꼭 황금색이나 짙은 동색 테두리의 액자에 넣고 감상해야 해. 이 그림의 가치를 제대로 감상하고 싶다면 내 말을 꼭 기억해라. 이 그림을 금색 계열 옆에 두면 빛이 전혀 없는 곳에 두어도 빛이 느껴질 거야. 또한 밋밋하거나 새까만 배경에 뒀을 때 보여지는 대리석 무늬 같은 점들도 사라지지. 그림자를 파란색을 활용해 칠했기 때문에 금색이 가장 잘 어울려.
(……) <감자 먹는 사람들>에서 정말로 보여주고 싶었던 건, 이 농부들이 램프 불빛 아래서 집어먹는 감자가 바로 그들의 손으로 땅을 일구고 수확해서 식탁에 차린 것이라는 사실이었어. 손으로 하는 노동을, 그들이 정직하게 일해서 얻은 정직한 식사를 보여주고 싶었다. 우리같이 좀 배웠네 하는 치들과는 전혀 다른 삶의 방식을 말이야. 그래서 난 사람들이 이 그림을 보고서 그저 예쁘네, 잘 그렸네, 말하고 그치는 게 정말 싫다.
_404번 편지
<방직기>는 현장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크레용으로 다 그린 습작이었어. 힘들었지. 방직기 가까이 앉아 있어야 했던 탓에, 비율을 측정하는 게 유난히 힘들기도 했고. 그래도 직조공 그림자라도 그려 넣었던 건, 이런 말을 하고 싶어서야. 여러 개의 널빤지를 이어붙인 때가 탄 시커먼 떡갈나무 덩어리가 회색조의 배경과 대비를 이루고, 그 한가운데 검은 원숭이 같기도 하고 난쟁이 같기도 하고, 아니면 유령 같기도 한 인물이 아침부터 밤까지 널빤지를 두드리며 작업하는 모습을 상상해보라고. (……) 무엇보다 참을 수 없었던 건, 방직공의 형체를 그려넣은 부분에서 널빤지 덜커덕거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이었어. 그래, 맞아. 이건 기계 그림이야. 그런데 이걸 기계 설계도 옆에 나란히 둬봐. 내 그림에서는 확실히 유령이 느껴질걸. 사실은 전혀 기계 그림이 아닌 거야. 혹은 je ne sais quoi(뭔지 모를 무언가이지). 만약에 그 방직기를 직접 설계한 기술자가 그린 그림 옆에 내 습작을 세워도, 내 그림에서는 땀에 젖은 손으로 만져서 손때가 탄 떡갈나무의 결이 강렬하게 느껴지지. 그리고 바라보고 있으면 (방직공을 전혀 그려넣지 않았어도, 혹은 그를 아주 이상한 비율로 그려넣었더라도) 그 일꾼이 반드시 떠오르게 된다네. 설계사의 설계도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은데 말이지. 일종의 한숨이나 탄식도 널빤지 사이로 간간이 흘러나올 걸세.
_라44번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