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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읽는 열하일기 1

쉽게 읽는 열하일기 1

(변화하는 시대를 읽은 자, 연암 박지원의 청나라 여행기)

박지원 (지은이), 김흥식 (엮은이), 한국고전번역원 (옮긴이)
서해문집
16,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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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읽는 열하일기 1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쉽게 읽는 열하일기 1 (변화하는 시대를 읽은 자, 연암 박지원의 청나라 여행기)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조선사 > 조선후기(영조~순종)
· ISBN : 9791190893909
· 쪽수 : 376쪽
· 출판일 : 2021-09-10

책 소개

연암 박지원의 역작 《열하일기》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폭넓은 인문·역사·지리·과학 지식이 필요하다. 이에 《쉽게 읽는 열하일기》는 박지원 친필본의 실제를 가늠할 수 있는 한국고전번역원의 《열하일기》(이가원 역주)를 바탕으로 하되, 무수한 배경지식을 바로 흡수하며 막힘없이 읽어 내려가도록 부가 설명을 모두 간주로 넣었다.

목차

도강록渡江錄
도강록 서渡江錄序 | 6월 24일 신미辛未 | 6월 25일 임신壬申 | 6월 26일 계유癸酉 | 6월 27일 갑술甲戌 | 6월 28일 을해乙亥 | 6월 29일 병자丙子 | 7월 1일 정축丁丑 | 7월 2일 무인戊寅 | 7월 3일 기묘己卯 | 7월 4일 경진庚辰 | 7월 5일 신사辛巳 | 7월 6일 임오壬午 | 7월 7일 계미癸未 | 7월 8일 갑신甲申 | 7월 9일 을유乙酉

성경잡지盛京雜識
7월 10일 병술丙戌 | 7월 11일 정해丁亥 | 7월 12일 무자戊子 | 7월 13일 기축己丑 | 7월 14일 경인庚寅

일신수필馹迅隨筆
일신수필 서馹汛隨筆序 | 7월 15일 신묘辛卯 | 수레제도[車制] | 희대戲臺 | 시장[市肆] | 객사[店舍] | 교량橋梁 | 7월 16일 임진壬辰 | 7월 17일 계사癸巳 | 7월 18일 갑오甲午 | 7월 19일 을미乙未 | 7월 20일 병신丙申 | 7월 21일 정유丁酉 | 7월 22일 무술戊戌 | 7월 23일 기해己亥

관내정사關內程史
7월 24일 경자庚子 | 7월 25일 신축辛丑 | 7월 26일 임인壬寅 | 7월 27일 계묘癸卯 | 7월 28일 갑진甲辰 | 범의 꾸짖음[虎叱] | 범의 꾸짖음 뒷이야기[虎叱後識] | 7월 29일 을사乙巳 | 7월 30일 병오丙午 | 8월 1일 정미丁未 | 8월 2일 무신戊申 | 8월 3일 기유己酉 | 8월 4일 경술庚戌

저자소개

박지원 (지은이)    정보 더보기
조선 후기의 탁월한 문장가이자 실학자다. 박사유(朴師愈)와 함평(咸平) 이씨(李氏) 사이에서 2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16세에 처사 이보천(李輔天)의 딸과 결혼했다. 장인에게는 《맹자》를, 처삼촌 이양천(李亮天)에게는 《사기(史記)》를 배워 본격적인 학문을 시작했다. 처남인 이재성(李在誠)과는 평생의 문우(文友) 관계를 이어 갔다. 청년 시절엔 세상의 염량세태에 실망해 불면증과 우울증으로 고생했으며 이러한 성장 배경을 바탕으로 진실한 인간형에 대해 모색한 전(傳) 아홉 편을 지어 《방경각외전(放?閣外傳)》이라는 이름으로 편찬했다. 영조 47년(1771) 마침내 과거를 보지 않기로 결심하고 서울 전의감동(典醫監洞)에 은거하면서 홍대용, 이덕무, 박제가, 유득공을 비롯한 많은 젊은 지식인들과 더불어 학문과 우정의 세계를 펼쳐 갔다. 정조 2년(1778) 홍국영이 세도를 잡고 벽파를 박해하자 생명에 위협을 느끼고 황해도 금천군(金川郡)에 있는 연암협(燕巖峽)으로 피신해 은둔 생활을 했다. 연암이라는 호는 이 골짝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정조 4년(1780)에 삼종형(三從兄)인 박명원(朴明源)의 연행(燕行) 권유를 받고 정사의 반당 자격으로 북경에 가게 되었다. 이때 건륭 황제가 열하에서 고희연을 치르는 바람에 조선 사신 역사상 처음으로 열하에 가는 행운을 얻게 되었다. 연행을 통해 깨달음을 확대한 연암은 여행의 경험을 수년간 정리해 《열하일기》를 저술했다. 정조 10년(1786) 유언호의 천거로 음사(蔭仕)인 선공감(繕工監) 감역(監役)에 임명되었다. 정조 13년(1789)에는 평시서주부(平市署主簿)와 사복시주부(司僕寺主簿)를 역임했고, 정조 15년(1791)에는 한성부 판관을 지냈다. 그해 12월 안의현감에 임명되어 다음 해부터 임지에서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이때 정조 임금이 문체를 타락시킨 장본인으로 《열하일기》를 쓴 연암을 지목하고는 남공철을 통해 순정한 글을 지어 바치라 명령했으나 실제로 응하지는 않았다. 정조 21년(1797) 61세에 면천군수로 임명되었다. 이 시절에 정조 임금에게 《과농소초(課農小抄)》를 지어 바쳐 칭송을 들었다. 1800년 양양부사로 승진했으며 이듬해 벼슬에서 물러났다. 순조 5년(1805) 10월 20일 서울 가회방(嘉會坊)의 재동(齋洞) 자택에서 깨끗하게 목욕시켜 달라는 유언만 남긴 채 세상을 떠났다. 선영이 있는 장단(長湍)의 대세현(大世峴)에 장사 지냈다. 박지원의 문학 정신은 ‘법고창신(法古創新)’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옛것을 본받되 변화를 알고 새롭게 지어내되 법도를 지키라”는 의미다. 그는 문학의 참된 정신은 변화의 정신을 바탕으로 창조적인 글을 쓰는 데 있다고 생각했다. 비슷하게 되려는 것은 참이 아니며, ‘닮았다’고 하는 말 속엔 이미 가짜가 들어 있다는 것이다. 연암은 억지로 점잖은 척 고상한 글을 써서는 안 되며 오직 진실한 마음으로 대상을 참되게 그려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하여 그는 틀에 박힌 표현이나 관습적인 문체를 거부하고 자신만의 독특한 문체를 지향했다. 나아가 옛날 저곳이 아닌 지금 여기를 이야기하고자 했다. 중국이 아닌 조선을, 과거가 아닌 현재를 이야기할 때 진정한 문학 정신을 구현할 수 있다고 믿었다. 연암의 학문적 성취와 사상은 《열하일기》에 집대성되어 있다. 《열하일기》에서 연암은 이용후생의 정신을 기반으로 청나라의 선진적 문물을 받아들여 낙후된 조선의 현실을 타개하자는 주장을 펼침으로써 북학파를 대표하는 학자로 우뚝 서게 되었다. 연암은 《열하일기》 외에도 《방경각외전》, 《과농소초》, 《한민명전의(限民名田議)》 등을 직접 편찬했다. 연암의 유고는 그의 아들 박종채에 의해서 정리되었는데 아들이 쓴 〈과정록추기〉에 의하면 연암의 유고는 문고 16권, 《열하일기》 24권, 《과농소초》 15권 등 총 55권으로 정리되었다. 《열하일기》는 오늘날 완질은 26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연암의 작품은 대부분이 문(文)이며 시(詩)는 50여 편이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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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식 (옮긴이)    정보 더보기
어려서부터 한문과 역사가 주는 즐거움에 빠져 온갖 고전과 역사 지식을 두루 섭렵했다. 그 결과 우리 고전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고 평가받은 「오래된 책방」 시리즈를 비롯해 「서해클래식」 등을 기획·출간했다. 그 외에 『1면으로 보는 한국 근현대사 1, 2, 3』 등 다수의 책을 기획하였고, 지은 책으로는 『세상의 모든 지식』, 『책꽂이 투쟁기』, 『한글전쟁』, 『안중근 재판정 참관기』 등이 있다. 또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고전으로 자리 잡은 류성룡의 『징비록』을 번역하였으며, 『광고로 보는 출판의 역사』, 『원문으로 보는 친일파 명문장 67선』, 『그 사람, 김원봉』 등을 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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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전번역원 (기획)    정보 더보기
고전문헌을 수집·정리·번역함으로써 한국학 연구의 기반을 구축하고 전통문화를 계승·발전시키는 데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설립된 단체. 1965년 서울에서 교육부(당시 문교부) 산하 민족문화추진회로 설립되었으며 2007년 11월 한국고전번역원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그동안 국고 문헌부터 개인 문집에 이르기까지 1300여 종의 번역서를 간행했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기록유산인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일성록》 등 중요 국가 기록을 번역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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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나의 벗 홍대용이 “그 규모는 크되, 그 방식은 세밀하다.”라고 했는데, 이 책문은 중국의 동쪽 변두리임에도 이러하다. 앞으로 더욱 번화할 것을 생각하니 갑자기 한풀 꺾여서 여기서 그만 발길을 돌릴까 하는 생각에 온몸이 화끈해진다. 그 순간 나는 깊이 반성하여 ‘이는 시기하는 마음이다. 내 본시 성미가 욕심이 없어서 남을 부러워하거나 시기하는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그런데 다른 나라에 발을 들여놓자, 만분의 일도 채 보지 못하고서 벌써 이런 망령된 마음이 일어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이는 곧 견문이 좁은 탓이리라. … 장복을 돌아보며 물었다. “네가 만일 중국에서 태어났다면 어떻겠느냐?”
그러자 그는 “중국은 되놈의 나라이니 쇤네는 싫습니다.” 하고 대답한다.
때마침 한 소경이 어깨에 비단 주머니를 걸고 손으로 월금을 뜯으면서 지나간다. 나는 크게 깨달아 “저야말로 평등한 눈을 가진 이가 아니겠느냐?” 했다.


천하를 위하여 일하는 자는 진실로 백성에게 이롭고 나라에 도움이 될 일이라면, 그 법이 비록 오랑캐에게서 나온 것일지라도 이를 본받으려 한다. … 성인이 《춘추》를 지으실 때 물론 중화를 높이고 오랑캐를 물리쳤으나, 오랑캐가 중화를 어지럽힘을 분히 여겨 중화의 숭상할 만한 것마저 물리친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그러므로 참으로 오랑캐를 물리치려면 중화의 법을 모조리 배워야 한다. 우리나라의 유치한 문화를 고쳐서 밭 갈기, 누에치기, 그릇 굽기, 풀무 불기 등에서 공업·상업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배워야 한다. 남이 열을 한다면 우리는 백을 하여 먼저 우리 백성에게 이롭게 한 다음, 회초리를 마련해두었다가 저들의 굳은 갑옷과 날카로운 무기를 물리칠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중국에는 아무런 장관이 없더라고 말할 수 있겠다.
나야 하사(下士, 하류의 선비)에 불과하지만 한마디 하겠다.
“중국의 장관은 기와 조각에 있고, 똥 부스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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