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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97338267
· 쪽수 : 280쪽
책 소개
목차
책을 시작하며
44년생 완도 남자와 76년생 서울 여인, ‘절친’이 되다
프롤로그
일상 속 북클럽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둘만의 향연’을 제안하다
1. 편지
네가 있어서, 그 시간을 견딜 수 있었단다
2. 인터뷰
우리 사이엔 ‘문학’이 있으니까
3. 에세이
‘나’의 고통 한가운데, 비로소 ‘우리’가 있었다
에필로그
이별 같은 건, 생각하지 않습니다
황광수 선생님을 떠나보내며
여울의 마지막 편지
황광수 선생님을 추억하며
퉁방울눈의 사내들이 떠난 유럽 여행_이승원
감사의 말
리뷰
책속에서
“여울아, 이제는 그냥 이 고통이 끝났으면 좋겠어. 이제는 더 바랄 게 없어. 그런데 너와 약속한 그 책만은, 꼭 마치고 떠나고 싶었는데.” 내 주변의 사람들 중 가장 철저하게, 고통을 절대 내색하지 않는 그가, 내게 털어놓았다. 이번 생에 더는 바랄 것이 없으니, 그저 이 아픔이 끝나버렸으면 좋겠다고. 나는 너무 놀라 수화기를 떨어뜨릴 뻔했다. 결코 이럴 분이 아닌데. 이렇게 다 놓아버릴 분이 아닌데. 참담한 고통이 그 아름다운 영혼의 척추를 부러뜨려버린 것일까. /책을 시작하며
이 책은 우리 두 사람이 함께 나눈 아주 오랜 ‘우정의 왈츠’다. 내 능력이 닿지 못해, 선생님의 마지막 체력이 허락하지 못해, 그 수많은 우정의 대화들을 미처 다 갈무리하지 못한 것이 원통하다. 선생님의 모든 말씀은 왈츠처럼 우아하고 예의 바르며 기품이 넘쳤다. 뼈아픈 실수를 돌이켜볼 때조차도, 두 눈 질끈 감고 싶은 지독한 상처를 회상할 때조차도, 무시무시하게 어려운 문학작품과 철학이론에 대해 설명해주실 때조차도. 선생님이 그 부리부리한 눈망울과 가냘픈 손가락으로 내게 가르쳐주시던 ‘내가 알 수 없는 세계’를 향한 모든 이야기는 위대한 지성의 왈츠였다. 아직 내가 한참 모자란 사람이기에, 차마 왈츠를 대등한 입장에서 출 수는 없었다. 선생님이 능숙하게 리드하고, 나는 선생님의 발을 여러 번 밟으며 멋쩍게 웃는다.
선생님의 발가락은 유난히 얇고 살이 없어서, 내가 형편없는 스텝으로 선생님의 발을 밟을 때마다 으스러지게 아플 것 같지만. 선생님은 나 때문에 황당하셨을 때도, 나 때문에 괴로우셨을 때도, 단 한 번도 나를 야단치거나 원망하지 않으셨다. 다만 우아하게, 다만 눈부시게, 그저 ‘다음 왈츠’를 추자고 하셨다. 나를 비난하고 괴롭히면서도 ‘이게 다 널 사랑해서 그래’라는 눈빛으로 모든 것을 무마하려고 했던 파렴치한 사람들과 달리, 선생님은 절대로 화내지 않는 사랑, 결코 얼굴 붉히지 않는 사랑이 이 세상에 분명 존재함을 온몸으로 가르쳐주셨다. 선생님을 통해 나는 깨달았다. 진정한 사랑에는 본래 그 어떤 어둠도 없음을. 어둠조차 참아내는 사랑을 강요하는 세상 앞에서, 선생님은 어둠 없는 사랑의 티 없는 모범답안을 보여주셨다. /프롤로그
나는 이제야 안다. 내 몸을 칭칭 감고 있는 그 모든 어둠의 기억조차도 햇살처럼 환하게 변신시켜버리는, 선생님의 그 무한한 다정함이 진짜 사랑임을. 어리다는 이유로, 여자라는 이유로, 그냥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내가 세상에서 자꾸만 까이고, 무시당하고, 짓밟힐 때도, 선생님은 변함없는 예의바름과 믿을 수 없는 친절함으로 내 모든 슬픔과 분노를 지극히 존중해주셨다. 선생님은 내가 연인에게도 친구에게도 받지 못했던 그 모든 사랑을 한꺼번에 되돌려주시면서도, 그것이 ‘특별히 나에게만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셨다. 아마 선생님의 글을 한 편이라도 읽은 사람이라면, 선생님의 강의를 한 번이라도 들은 사람이라면, 분명 알 것이다. 인간 황광수는 자신에게 불친절한 모든 사람에게, 온힘을 다해 친절하고 다정하기 위해, 끝까지 투쟁하였음을. /프롤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