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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교양 인문학
· ISBN : 9788901114699
· 쪽수 : 572쪽
· 출판일 : 2010-10-25
책 소개
목차
추천사
옮긴이의 말
머리말
1부 알려지지 않은 신
1장 호모 렐리기오수스
전지전능하지 않은 신
신들의 전쟁과 세계의 창조
한계 너머 궁극의 실재를 보다
2장 신
인간화된 신을 파괴하다
표현할 수 없는 신의 실재
유배당한 신
끊임없이 재해석되는 계시
3장 이성
우주를 지배하는 것은 신이 아닌 정신
소크라테스, 다르게 되는 법을 일깨우다
지상에서 하늘로 - 우주론의 시작
이론이 아닌 실천 속에서 진리를 찾다
초월적 지혜에 대한 갈망, 필로소피아
4장 신앙
인간의 아들에서 신의 아들로
진화하는 경전
문자 너머의 의미를 읽다
이슬람, 카피룬에게 관대한 종교
5장 침묵
니케아공의회, 이단의 탄생
인간이 된 신
삼위일체, 셋이 아닌 하나
아우구스티누스, ‘내 안에 있는 신’
신의 침묵을 듣다
6장 신앙과 이성
이성 너머에 있는 신
상상력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영성
토마스 아퀴나스, 신의 존재를 증명하다
마음속 신의 형상을 찾아서
지성, ‘나’가 멈추고 ‘신’이 시작되는 곳
2부 근대의 신 _1500년부터 현재까지
7장 과학과 종교
근대의 종교, 신의 절대 권능에 눈뜨다
종교와 과학의 충돌, ‘도그마’의 등장
무신론자가 된 유대인들
8장 과학적 종교
이성에 대한 두 가지 시각
신은 앎의 대상이 아닌 사유의 원리
과학적 합리주의로 무신론에 맞서다
9장 계몽주의
분열하는 종교, 분열하는 사회
종교, 앙시앵 레짐 또는 해방의 힘
무신론,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을 꿈꾸다
시계공이 된 신
시인들, 뉴턴의 신에 맞서다
10장 무신론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
의심의 씨앗이 뿌려지다
종의 기원과 자연선택
성서를 비판한 고등비평
신앙이라는 ‘망상’
신의 죽음
11장 모른다는 것
근본주의 운동의 태동
신이 없는 세상을 악이 휩쓸다
신을 향한 원초적 기다림
‘모름’, 인간의 조건
12장 신은 죽었나
근본주의는 종교가 아닌 정치의 문제
현대의 무신론자들
과학, 신에게로 가는 길을 보여주다
탈근대주의, 유신론과 무신론의 대립을 초월하다
맺음말
감사의 말
주석
용어해설
참고문헌
찾아보기
리뷰
책속에서
과거와는 전혀 다른 세상에서 전혀 다른 세계관을 가지고 살면서도 우리는 과거에도 언제나 지금 우리와 똑같은 방식으로 신에 관해 생각했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과학과 기술은 놀라울 만큼 발전했지만 우리의 종교적 사고는 놀라울 만큼 발전이 없고 심지어 원시적일 때가 있다. (…) 그러나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일부 위대한 신학자들은 신에 관한 우리의 생각을 말로 옮기는 일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인간이 만든 것이기에 이러한 교리들은 불충분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들은 세속의 것들을 설명하기 위해 쓰이는 말들이 신을 설명하는 데는 부적절하다는 것을 신자들이 이해하도록 일상적인 사고와 말의 패턴을 정교하게 뒤집는 영성 수련법들을 고안했다. 신은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는 선하지도 성스럽지도 강하지도 지혜롭지도 않았다. 심지어 신이 ‘존재한다’고도 말할 수 없었다. 우리의 존재 개념이 너무 제한적이었기 때문이다. 신이 다른 어떤 존재가 아니므로 신은‘어떤 것도 아닌 것’이라고 말하는 쪽을 택한 현자들도 있었다. 경전을 읽을 때도 그것이 곧 신에 관한 사실인 것처럼 문자 그대로 읽을 수 없었음은 물론이다. 그런 신학자들에게 오늘 날의 일부 신 개념은 우상숭배처럼 보였을 것이다. -18~19쪽
공자의 제자 안회는 자비와 공감을 실천하는 삶 속에서 자신의 한계를 넘어 ‘신’과 다르지 않은 어떤 성스러운 실재를 얼핏 볼 수 있었다. 그것은 자기 안에 내재하는 동시에 자기를 초월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안으로부터 솟아나오는 것이면서 외적으로도 체험되는 것, ‘더없이 선명한 모습으로 내 앞에 서 있는’ 것이었다. 인도, 중국, 서아시아의 위대한 현자들이 말한 대로 종교는 관념적 활동이 아니라 실천적 활동이었다. 일련의 교리들을 믿으라고 하기보다는 열심히 수련하기를 요구했다. 실천이 없다면 어떤 종교적 가르침도 믿기 힘든 애매한 소리에 불과했다. 궁극의 실재는 지고의 존재가 아니었다. 그런 것은 고대의 종교적 감수성과는 영 거리가 멀었다. 궁극의 실재는 몇 마디 교리로 정리될 수 없는, 모든 것을 아우르는 완전히 초월적인 실재였다. 그래서 종교적 담화는 신성에 관한 분명한 정보를 전달하려 해서는 안 되었고 우리의 언어와 이해력의 한계를 인정하게 만들어야 했다. 궁극의 실재는 인간에게 낯선 무엇이 아니라 인간성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다. 장황하고 이성적인 사고로는 그것에 이를 수 없었다. 정성껏 마음을 단련하고 남을 위해 자기를 버릴 줄 알아야만 이를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런 원리가 침묵의 종교라기보다는 말의 종교로 비쳐지는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같은 유일신교들에서는 어떻게 적용되었을까? 기원전 8세기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고대 사회에서는 보기 드문 시도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야훼를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 즉 궁극적 초월성의 유일한 상징으로 만들려 하고 있었다. -67~68쪽
나도 신新무신론자들이 발끈하는 심정에는 공감한다. 자서전 《마음의 진보Spiral Staircase》에서도 밝혔듯이 나 자신도 여러 해 동안 종교라면 질색을 했고 일부 초기 저서들은 분명 도킨스와 비슷한 경향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20년간 전 세계 종교를 연구하면서 초기의 입장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 과정에서 다른 종교 전통들에서도 발견되는, 어린 시절 편협하고 독단적인 신앙을 심어준 종교의 이런저런 측면에 마음을 열게 되었을 뿐 아니라 그 근거들을 신중하게 평가함으로써 기독교를 달리 보게 된 것이다. 내가 깨달은 것 중 하나는 종교에 관한 말다툼이 역효과를 낳을 뿐, 사람들의 깨우침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것은 진정한 종교적 체험을 불가능하게 할 뿐 아니라 소크라테스식의 합리주의 전통에도 위배된다. -2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