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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여성작가선

근대여성작가선

김명순, 나혜석, 김일엽, 이선희, 임순득 (지은이)
  |  
문학과지성사
2021-04-30
  |  
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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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여성작가선

책 정보

· 제목 : 근대여성작가선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전 한국소설
· ISBN : 9788932038445
· 쪽수 : 538쪽

책 소개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전집 47권. 일제강점기에 활동했던 여성 작가 5인의 주요 작품을 모았다. 김명순, 나혜석, 김일엽, 이선희, 임순득의 작품을 담아내며, 남성 중심 체제 속의 어머니이거나 아내라는 자리에서 벗어나 독자성을 가진 개인이고자 했던 일제강점기 신여성들의 목소리를 더욱 다양하고 풍성하게 담아낼 수 있게 되었다.

목차

일러두기

김명순
의심의 소녀 | 선례 | 돌아다볼 때 | 탄실이와 주영이

나혜석
경희 | 현숙 | 어머니와 딸

김일엽
청상의 생활―희생된 일생 | 자각

이선희
계산서 | 매소부 | 탕자

임순득
일요일 | 이름 짓기 | 딸과 어머니와


작품 해설 근대 여성 작가의 목소리 / 이상경
작가 연보 및 주요 작품 목록
참고문헌
기획의 말

저자소개

김일엽 (지은이)    정보 더보기
스님이자 시인, 수필가. 1896년 평안남도 용강군에서 태어났다. 진남포 삼숭보통학교, 서울 이화학당을 졸업하고 일본 동경 영화학교英和學校에서 수학했다. 본명은 김원주金元周, 일엽一葉은 아호이자 법호이며, 법명은 하엽荷葉, 도호는 백련도엽白蓮道葉이다. 1920년 여성들이 주체가 된 잡지 <신여자>를 창간하고, 평론 <우리 신여자의 요구와 주장> <여자의 자각> 등과 소설 <계시啓示> <나는 가오> <자각自覺> 등을 비롯해 시, 수필 등을 다수 발표했다. 제1세대 여성 문인으로서, 김명순, 나혜석 등과 함께 여성의 의식 계몽을 위한 글쓰기와 강연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불교에 귀의하고 만공선사를 만나 1933년 출가했으며, 이후 비구니 도량인 수덕사 견성암에서 참선 수행에 전념했다. 만년에 대중 포교를 위한 활발한 저술 활동을 펼쳐, 《어느 수도인의 회상》(1960) 《청춘을 불사르고》(1962) 《행복과 불행의 갈피에서》(1964) 등을 집필했다. 1971년 1월 28일(음력 1월 2일) 수덕사에서 입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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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혜석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96년 4월, 경기도 수원에서 태어나 1913년 진명여자고등보통학교를 최우등으로 졸업했다. 1913년 도쿄 사립 여자미술학교 서양화부에 입학해 1918년에 졸업한 후 잠시 미술교사로 활동했으며, 1919년 3월 만세 운동을 한 혐의로 5개월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1920년 외교관 김우영과 결혼했으며, 25세 때인 1921년 임신 9개월의 몸으로 첫 유화 개인전을 가졌다. 이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가 연 첫 여성 개인 전람회였다. 같은 해에 제1회 서화협회전람회에 홍일점으로 유화를 출품했으며, 1922년부터 조선미술전람회 서양화부에 해마다 작품을 출품해 수상과 특선을 거듭했다. 그는 작가이자 여성의 주체적 권리와 인권을 펼친 운동가이기도 했다. 1914년 〈이상적 부인〉을, 1918년에는 조혼 문제를 다룬 단편소설 〈경희〉를 썼으며, 1923년 〈모(母) 된 감상기〉와 1934년에 〈이혼 고백서〉를 발표하며 파문을 불러왔다. 특히 〈이혼 고백서〉에서 그는 이혼에 이르는 과정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한편, 경직된 사회와 이로 인한 여성 문제를 비판했다. 이후 다양한 글을 쓰고 발표했으나 이혼녀라는 이유로 몸과 마음이 병들었다. 이후 수덕사 등을 떠돌다가 1944년 8월 한 양로원에 맡겨진 뒤 1949년 3월 14일에 관보에 무연고자 시신 공고로 그의 죽음이 알려졌다. 1948년 11월에 시립 자제원 병동에 무연고자로 입원해 있던 중 12월 10일 눈을 감은 것이다. 시대의 벽을 허물지 못한 채 무연고 시신으로 처리되었고, 그의 무덤은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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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희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11년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났다. 성장기의 대부분을 원산에서 보내다가 1929년 서울로 상경하여 잡지 『신여성』의 기자로 활동했다. 1934년 『중앙』에 단편 「가등」을 발표하며 데뷔했다. 소설 「계산서」 「매소부」 「탕자」 「처의 설계」 「창」 등을 비롯해 수필, 평론, 콩트 등 많은 작품을 남겼으며 『조선일보』 학예부 기자로도 활동했다. 1946년 7월경 남편 박영호와 함께 월북한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병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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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순득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15년 전라북도 고창에서 태어났다. 1937년 『조선문학』에 단편 「일요일」을 발표하며 데뷔했다. 여성해방문학을 주장하는 평론을 꾸준히 발표했으며, 해방 후 함경남도 원산에서 살다가 1947년 무렵 평양으로 이사했다. 소설 「일요일」 「이름 짓기」 「들국화」 「딸과 어머니와」 등을 비롯해 수필, 평론, 콩트 등 여러 작품을 남겼으나 1959년 『인민조선』에 발표한 「금 목걸이」를 끝으로 이후에 발표한 글들은 아직 찾을 수 없다. 북한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한 남편과 함께 축출되어 기계 운전기사로 일하면서도 단칸방에서 글을 썼고, 남편이 죽은 뒤로는 사회보장으로 살았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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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순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96년 1월 20일 평안남도 평양에서 태어났다. 1917년 단편소설 「의심의 소녀」가 『청춘』의 현상 공모에 당선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 한국 최초의 여성 근대 소설가로 불린다. 등단 이후 김명순, 김탄실, 망양초, 망양생, 별그림 같은 필명으로 시, 소설, 산문, 평론, 희곡 등 다양한 장르의 글을 발표했다. 에드거 앨런 포의 소설을 국내에 최초로 소개하고 보들레르의 시를 번역하는 등 외국어에 능통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피아노를 잘 치고 독일어로 곡을 만들 만큼 음악에도 조예가 깊었다고 한다. 여성 작가 최초로 창작집 『생명의 과실』(1925) 『애인의 선물』(1929 추정)을 펴냈으며, 신문기자, 영화배우로도 활동했다. 조선과 일본을 오가며 공부와 집필에 힘썼으나 모욕적인 소문의 희생자가 되어 결국 글쓰기를 중단했다. 생의 마지막에는 생활고에 시달리다 1951년 도쿄에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사랑은 무한대이외다』는 1918~1936년 사이 발표한 그의 에세이를 모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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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오, 참, 그 『너희들의 등 뒤에서』라는 책은 우리 서모 집 사랑채에 셋방을 빌려가지고 있던 일본 청년이 쓴 것이라지. 그 주인공은 탄실의 행동과 말하는 것을 더러 묘사했었다지만 아주 다르지요. 그 책 가운데 주영이는 꼭 일본 여자지 어디 탄실이 같습니까? 그래도 그 작자는 탄실이보다는 그 책의 주인공인 주영이가 훨씬 낫다고 할지 모르지만 우선 사실부터 탄실이는 처음에 동정을 자기 스스로 깨뜨린 것이 아니고 앗긴 것도 또 일본 사람에게가 아니라 조선 사람에게 그랬으니까요. 참 말 못 할 표독한, 꼭 무엇과 같은 사람이지요. 그 어린것이 멀리 타향에 가서 그래도 저를 믿는데, 차마 그런 행동이 어떡해서 해졌는지, 도척이보다 더하지요. 그것도 웬 제가 사귄 것입니까? 내 삼촌이 시룽시룽 사귀어준 것이지요. 말하자면 내 삼촌이란 어른이 심사가 고약하지요. 그것을 다 말하면 집안 흉이 날 테니까 채 말은 못 하지만 그것참 불행한 운명에 빠진 여자입니다. 그래서 나는 이즈음에도, 혹시 구할 수만 있으면 그 운명에서 구해주려고 하지만 어디 말을 들어요? 남자란 악마보다 더 거리낀다고 저주하니까. 본래는 아주 인정 많고 착한 여자였지만 그 타락하던 당시를 생각하면 아마 자기도 온전치는 못하던 모양이었어요. 하나 어느 편으로 보든지 주영이와는 다릅니다.” (김명순, 「탄실이와 주영이」)


아버지가 “계집애라는 것은 시집가서 아들딸 낳고 시부모 섬기고 남편을 공경하면 그만이니라” 하실 때에 “그것은 옛날 말이에요. 지금은 계집애도 사람이라 해요. 사람인 이상에는 못 할 것이 없다고 해요. 사내와 같이 돈도 벌 수 있고, 사내와 같이 벼슬도 할 수 있어요. 사내가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는 세상이에요” 하던 생각을 하며, 아버지가 담뱃대를 드시고 “뭐 어쩌고 어째, 네까짓 계집애가 하긴 무얼 해. 일본 가서 하라는 공부는 아니 하고 귀한 돈 없애고 그까짓 엉뚱한 소리만 배워가지고 왔어?” 하시던 무서운 눈을 생각하며 몸을 흠칫한다.
과연 그렇다. 나 같은 것이 무얼 하나. 남들이 하는 말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닌가. 아아 과연 사람 노릇 하기가 쉬운 것이 아니다. 남자와 같이 모든 것을 하는 여자는 평범한 여자가 아닐 터이다. 4천 년래의 습관을 깨뜨리고 나서는 여자는 웬만한 학문, 여간한 천재가 아니고서는 될 수 없다. 나폴레옹 시대에 파리의 전 인심을 움직이게 하던 스탈 부인과 같은 미묘한 이해력, 요설한 웅변, 그런 기재(機才)한 사회적 인물이 아니고서는 될 수 없다. 살아서 오를레앙을 구하고 사(死)함에 프랑스를 구해낸 잔 다르크 같은 백절불굴의 용진(勇進) 희생이 아니고서는 될 수 없다. 달필의 논문가, 명쾌한 경제서의 저자로 이름을 날린 영국 여권론의 용장 허스트 부인과 같은, 어론(語論)에 정경(精勁)하고 의지가 강고한 자가 아니고서는 될 수 없다. 아아, 이렇게 쉽지 못하다. 이만한 실력, 이러한 희생이 들어야만 되는 것이다. (나혜석, 「경희」)


나는 자식의 사랑으로 인하여 내 전 생활을 희생할 수는 절대로 없나이다. 자식의 생활과 나의 생활을 한데 섞어놓고 헤맬 수는 없나이다. 물론 남의 부모가 되어 자식을 기르고 교육시켜서 한 개 완전한 사람을 만드는 것이 당연한 직무이겠지요. 그러나 부모의 한 사람인 아이의 아버지가 아이의 양육을 넉넉히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지없는 모욕을 당하면서 자식 때문에 할 수는 없나이다.
그러니까 아이가 자라서 어미라고 찾으면 만나고 아니 찾으면 그만일 것입니다. (김일엽, 「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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