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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36462505
· 쪽수 : 380쪽
· 출판일 : 2006-07-10
책 소개
목차
간행사
이균영
어두운 기억의 저편
박영한
우묵배미의 사랑
현길언
우리들의 조부님
이원규
포구의 황혼
최인석
인형 만들기
노래에 관하여
이메일 해설 - 양은희, 이현식
낱말풀이
저자소개
책속에서
내가 이 나이토록 살아오며 겪은 바에 따른다면 인생의 모든 샛길에 있어선 샛길을 들어설 때의 시작 단계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거라고 굳이 난 믿고 있었는데, 우리들의 이 급작스런 야간열차 여행이야말로 이 샛길의 멋진 시작이란 느낌이었다. ... 차창에 비친 공례 얼굴엔 가진 것 하나 없이 살아오면서 저 모진 세월에게 노냥 구박만 받아온 여자 특유의 그 어떤 쓸쓸함이 깃들어 있었다. 마음이 아릿했고 그 쓸쓸함을 지워주려고 나는 문득 한 가지 놀이를 생각해냈는데, 가위바위보를 해서 진 사람이 맥주 한 컵씩 마시는 시합이 그것이었다. 판판이 공례가 벌주를 받았고 술기운으로 발그스레 달아오른 공례 얼굴이 더더욱 내 속을 애끈히 달아올렸다.
"계속 우린 이렇게 샛길루 가야 할 거예요."
사람 비린내에서 얼마쯤 떨어져 나와 싸늘한 밤공기와 마주했을 때 내가 말했다. 공례는 이내 말귀를 알아먹은 듯 고개를 끄덕이며 빠안히 나를 쳐다보았다.
"넓구 환한 길은 재미가 없잖아요?"
그 소리에 나는 금세 눈시울이 시큼해졌다. 어려서 집을 뛰쳐나와 신문팔이다 딲슈다 뭐다 뒷골목만 걸어온 일이 불현듯 생각히었고 공례도 나와 진배없는 막바지 인생이란 느낌이었다. - 박영한, '우묵배미의 사랑' 중에서
한용철은 잠시 생각해보았다. 노조에서는 지금 파업 중이다. 승강기를 고친다는 것은 파업을 중단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승강기는 고칠 수 없다. 그러나 사람이 갇혀 있다는 말에는 마음이 흔들렸다. 사람이 갇혀 있다...
... "가서 승강기 동력선 봐주고 와."
성수가 공구 상자를 찾아 들고 일어섰다. 그때였다. 우렁찬 고함 소리가 동력실 안을 쩌렁 울렸다.
"안 돼! 우린 지금 파업 중이야. 뭘 고쳐, 고치긴?"
보일러공 권영태였다. 그 남자가 그 우람한 몸을 일으키자 비좁은 노조 사무실이 꽉 차버리는 것 같았다. 그 남자는 부리부리한 눈으로 김 과장을 찍어 누를 듯 내려다보았다. 김 과장은 그만 그 눈빛만으로도 주눅이 들었으나 용기를 내어 외쳤다.
"지금 사람이 승강기 안에 갇혀 있단 말요!"
"그래서 어쨌다는 거요? 우린 한 달에 20만 원 돈으로 먹고사느라고 뼛골이 빠지게 고생했소. 그때 당신들이 우리 사정 들어준 적이나 있소? 이제 당신들 아쉬운 일 생기니까 찾아와서 뭐가 어쩌고 어째? 나가쇼! 승강기는 못 고쳐요. 동지들, 내 말이 옳소, 틀리요?" - 최인석, '인형 만들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