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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88939207226
· 쪽수 : 232쪽
· 출판일 : 2014-11-10
책 소개
목차
여는 글
고두미 마을에서(1985)
진눈깨비 / 고두미 마을에서 / 분꽃 / 황 선생님 / 흑인 혼혈아 여가수에게 / 수제비 / 산직말 / 조센 데이신타이(朝鮮挺身隊)
/ 쇠비름
접시꽃 당신(1986)
접시꽃 당신 / 옥수수밭 옆에 당신을 묻고 / 당신의 무덤가에 / 섬 / 오월 편지 / 인차리 7 / 달맞이꽃 / 우산 / 어떤 연인들
/ 다시 부르는 기전사가 / 목감기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1988)
눈물 /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 꽃다지 / 논둑에 서서 / 아가, 너희는 최루탄 없는 세상에서 살아라 / 너를 만나고 / 배추
/ 그대 잘 가라 / 지금 비록 너희 곁을 떠나지만 / 어떤 편지
지금 비록 너희 곁을 떠나지만(1989)
정 선생님, 그리고 보고 싶은 여러 선생님께 / 유월 이십 구일 / 감옥의 벽에 십자가를 새겨 넣고 / 잘 가라, 준아
/ 답장을 쓰며 / 스승의 기도 / 어릴 때 내 꿈은 / 김 선생의 분재
당신은 누구십니까(1993)
겨울 골짝에서 / 폭설 / 당신은 누구십니까 / 사랑도 살아가는 일인데 / 우기 / 별에 쓰는 편지 / 담쟁이 / 오후반
/ 닭장차 안에서 / 우리는 우리끼리 울었어
사람의 마을에 꽃이 진다(1994)
오늘밤 비 내리고 / 바람이 그치면 나도 그칠까 / 꽃잎 인연 / 홍매화 / 세우 / 보리 팰 무렵 / 흔들리며 피는 꽃
/ 병 / 물결도 없이 파도도 없이 / 단식
부드러운 직선(1998)
종이배 사랑 / 가지 않을 수 없던 길 / 사라지고 없는 그 / 부드러운 직선 / 늑대 / 배롱나무 / 섬 / 귀가 / 칸나꽃밭
민들레 뿌리
슬픔의 뿌리(2002)
여백 / 자목련 / 사랑의 침묵 / 아름다운 길 / 저녁 무렵 / 단풍 드는 날 / 그 밤 / 무심천 / 꽃재 / 방학하는 날
해인으로 가는 길(2006)
산경 / 해인으로 가는 길 / 산가 / 봄의 줄탁 / 연필 깎기 / 처음 가는 길 / 밀물 / 구두 수선집 / 가구 / 시래기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2011)
별 하나 /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 / 지진 / 못난 꽃 / 빙하기 /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을 들으며 / 젖 / 쏭바 / 노 모어 후쿠시마
/ 악보 / 은은함에 대하여
해설 유성호
시인의 말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 편집자가 꼽은 시
밀물
모순투성이의 날들이 내게 오지 않았다면
내 삶은 심심하였으리
그물에서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치지 않았다면
내 젊은 날은 개울 옆을 지날 때처럼
밋밋하였으리 무료하였으리
갯바닥 다 드러나도록 모조리 빼앗기고 나면
안간힘 다해 당기고 끌어와
다시 출렁이게 하는 날들이 없었다면
내 영혼은 늪처럼 서서히 부패해갔으리
고마운 모순의 날들이여
싸움과 번뇌의 시간이여
답장을 쓰며
현숙아, 오랫동안 편지하지 못했구나
답답하고 괴로울 때면 편지를 꺼내
눈물을 지우고 또 지우며 읽는다는 너의 말은
이 밤 나의 가슴을 아리게 때려온다.
지치고 쓰러질 것 같을 때면
나도 너희들을 생각한단다.
한 손으로 쓰는 기우뚱거리는 글씨가
미안하고 민망스럽다고 했지만
성한 두 손을 다 가지고도
바르고 곧은 글을 쓰지 못하는
선생님은 더없이 부끄러울 뿐이구나
생활과 운명에 맞서 싸우다 쓰러진 사람들 위해
그들의 잘려나가는 희망과 용기와 미래를 위해
선생님으로 꼭 있어 달라는 네 말은
일과를 끝내고 벽오동잎 깔린
언덕길 밟아 내려올 때마다
뻘 흙덩이처럼 내 발을 잡는구나
친구들은 추석을 쇠고 다시 공장으로 떠났는데
갇힌 새처럼 조은리에 남아 그을은 흙벽 앞에 남아
수수목을 몸서리치게 흔들며 고갤 넘는 열차를
몇 번이고 울타리 너머 넘어다보았을
너를 생각한다.
소매 긴 옷 속에 묻어 둔 잘린 네 손목을 생각한다.
긴 머리에 가리운 네 일그러진 반쪽 얼굴을 생각한다.
절망이 뭐냐고 바보같이 죽음이 다 뭐냐고
나는 격하게 너를 나무랐지만
실은 아무도 나누어 가지려 하지 않는
열아홉 네 절망의 아픈 꽃그늘을
선생님이라고 어찌 다 안다 하겠니
오늘도 네 동생 정태를 가르치고 교실문을 나서며
어둠 속에서도 눈을 떠라 가난과 고통이
너희의 끈질긴 핏줄을 시험하고 있다 일어서거라.
남겨 둔 부피만 큰 목소리를 생각했다.
나는 진정 너희들의 온전한 사랑과 꿈으로 살아 있는지
너희들의 따뜻한 화로와 구들장이 되어 있는지
왠지 스산한 바람으로 하늘 끝을 바장일 때가 많구나.
그러나, 현숙아 한 손으로 빤 희고 고운 빨래를 봄볕에 널며
젖은 손으로 가리고 바라보아야 하는 눈부신 햇살의 날은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에 꼭 오고야 만다.
나는 믿고 있다. 남은 네 한 손의 뜻이
꼭 필요하게 쓰이는 날은 반드시 오고야 말 것이다.
우리들이 아직도 믿음과 소망을 꺾어 버리지 않으므로
우리들이 고통과 아픔 속에 비켜서 있지 않으므로
우리의 생명을 기쁨과 고마움으로 누리는
그날은 반드시 오고야 만다.
반드시 오고야 말 것이다.
못난 꽃 - 박영근에게
모과꽃 진 뒤 밤새 비가 내려
꽃은 희미한 분홍으로만 남아 있다
사랑하는 이를 돌려보내고 난 뒤 감당이 안되는
막막함을 안은 채 너는 홀연히 나를 찾아왔었다
민물생선을 끓여 앞에 놓고
노동으로도 살 수 없고 시로도 살 수 없는 세상의
신산함을 짚어가는 네 이야기 한쪽의
그늘을 나는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늘 현역으로 살아야 하는 고단함을 툭툭 뱉으며
너는 순간순간 늙어가고 있었다
허름한 식당 밖으로는 삼월인데도 함박눈이 쏟아져
몇군데 술자리를 더 돌다가
너는 기어코 꾸역꾸역 울음을 쏟아놓았다
그 밤 오래 우는 네 어깨를 말없이 안아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한점 혈육도 사랑도 이제 더는 지상에 남기지 않고
너 혼자 서쪽으로 걸어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빗속에서 들었다
살아서 네게 술 한잔 사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살아서 네 적빈의 주머니에 몰래 여비 봉투 하나
찔러넣어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몸에 남아 있던 가난과 연민도 비우고
똥까지도 다 비우고
빗속에 혼자 돌아가고 있는
네 필생의 꽃잎을 생각했다
문학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목숨과 맞바꾸는 못난 꽃
너 떠나고 참으로 못난 꽃 하나 지상에 남으리라
못난 꽃,
단식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는 일은 이토록 어려운가
단식농성장에서 병원으로 실려오는 차 안에서
주르르 눈물이 흐른다, 나이 사십에
아름다운 세상 아, 형벌 같은 아름다운 세상
저녁 무렵
열정이 식은 뒤에도
사랑해야 하는 날들은 있다
벅찬 감동 사라진 뒤에도
부둥켜안고 가야 할 사람이 있다
끓어오르던 체온을 식히며
고요히 눈감기 시작하는 저녁 하늘로
쓸쓸히 날아가는 트럼펫 소리
사라진 것들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풀이란 풀 다 시들고
잎이란 잎 다 진 뒤에도
떠나야 할 길이 있고
이정표 잃은 뒤에도
찾아가야 할 땅이 있다
뜨겁던 날들은 다시 오지 않겠지만
거기서부터 또 시작해야 할 사랑이 있다
별 하나
흐린 차창 밖으로 별 하나가 따라온다
참 오래되었다 저 별이 내 주위를 맴돈 지
돌아보면 문득 저 별이 있다
내가 별을 떠날 때가 있어도
별은 나를 떠나지 않는다
나도 누군가에게 저 별처럼 있고 싶다
상처받고 돌아오는 밤길
돌아보면 문득 거기 있는 별 하나
괜찮다고 나는 네 편이라고
이마를 씻어주는 별 하나
이만치의 거리에서 손 흔들어주는
따뜻한 눈빛으로 있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