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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당일기

조성당일기

윤성훈, 장준호, 신동훈, 백광열, 최은주, 류인태 (지은이)
  |  
은행나무
2023-12-08
  |  
2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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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당일기

책 정보

· 제목 : 조성당일기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조선사 > 조선중기(임진왜란~경종)
· ISBN : 9791167373762
· 쪽수 : 324쪽

책 소개

국학자료 심층연구 총서 23권. 역사학, 한문학, 사회학, 인문정보학 등 관련 전문가로 구성된 공동연구팀이 조성당 김택룡이 남긴 생활일기를 분석해 17세기 영남 사족의 생활상을 다방면으로 연구한 결과물이다.

목차

책머리에

1장 『조성당일기』를 통해 본 김택룡의 일상 · 윤성훈

『조성당일기』라는 책에 대하여 | 김택룡과 그의 가족 | 김택룡의 생활공간 | 『조성당일기』에 나타난 김택룡의 일상–시기 및 생활공간에 따른 재구축 | 『조성당일기』의 가치

2장 조성당 김택룡의 관직 활동과 교유 관계 · 장준호
머리말 | 김택룡의 가계와 출사 전 행적 | 선조조~광해군조의 관직 활동 | 김택룡의 사승 관계와 교유 관계 | 맺음말

3장 17세기 서원 인식의 변곡점, 조목의 도산서원 종향 · 신동훈
머리말 | 도산서원의 위상과 국학 | 향현의 서원 제향과 확산 | 맺음말

4장 예안 사족 김택룡과 영남 사족사회 · 백광열
머리말 | 조선 중기 사족사회 속에서 영남 사림파의 지위 : 인적 연결망에 기반한 고찰 | 영남 사림파 속에서 예안 사족 김택룡의 지위 | 김택룡의 사회적 활동과 조선 중기 사족 지배체제 | 맺음말

5장 조성당 김택룡의 인맥 기반과 문학 네트워크 · 최은주
머리말 | 문집과 일기를 통해 본 그의 인맥 기반 | 문학 네트워크의 형성 | 맺음말

6장 예안-영주-봉화를 잇는 김택룡의 생활공간 복원 · 류인태
조선시대 생활일기의 공간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 김택룡의 생활권역과 활동범위에 관한 고찰 | 점, 선, 면에 기초한 김택룡의 생활공간 복원 | 공간 데이터로 『조성당일기』를 읽는다는 것에 관해

저자소개

윤성훈 (지은이)    정보 더보기
서울대학교에서 「미수 허목 고문 서예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한자의 모험』, 공저서로 『옛편지 낱말사전』 『함벽당간찰 : 편지를 통해 살펴보는 조선 후기 사족들의 생활상』 공역서로 『윤이후의 지암일기』 등이 있다. 논문으로 「〈고매누자대년설〉을 통해 본 미수 허목 고문 서예 창작의 양상 및 의의」 「다산 정약용 행초서의 특징 - 〈하피첩〉의 사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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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호 (지은이)    정보 더보기
서강대학교에서 「柳成龍의 『懲毖錄』 硏究」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유성룡의 『징비록』 연구』, 공저서로 『난세에 대처하는 10가지 태도』, 번역·해설서로 『징비록』 등이 있다. 논문으로 「柳成龍의 『亂後雜錄』 저술과 史學史的 의의」 「宣祖代 搢紳 逆謀 事件」 「『西征日錄』의 사학사적 고찰」 「『避難行錄』의 史學史的 고찰」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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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주 (지은이)    정보 더보기
경북대학교에서 「17세기 시선집 편찬에 대한 연구」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인륜을 다져 온 500년의 시간, 성주 문절공 김용초 종가』, 공저서로 『일기로 본 조선시대 사회사』 등이 있고, 논문으로 「조선시대 임진왜란 일기자료의 현황과 전존(傳存) 양상」 「호고와 류휘문이 쓴 기행일기의 전존(傳存) 양상과 자료적 가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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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광열 (지은이)    정보 더보기
서울대학교에서 「조선 후기 ‘양반지배 네트워크’의 성격과 구조변동-상층양반의 친족연결망을 중심으로」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만성대동보〉 자료를 활용한 ‘친족관계망 정보시스템(LNIS, Lineage Network Information System)’ 개발–개발실무와 활용방안, 이론적 함의』 등이 있으며, 공저서로 『간찰 속의 조선시대』, 역서로 『출생을 넘어서』, 공역서로 『윤이후의 지암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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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인태 (지은이)    정보 더보기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데이터로 읽는 17세기 재지사족의 일상」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공저서로 『윤이후의 지암일기』 『한양의 중심, 육조거리』 『성북천』 등이 있으며, 논문으로 「디지털 인문학과 한문학 연구」 「디지털 고전학에 관한 시론」 「여항문화 연구와 데이터 모델링」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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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 (지은이)    정보 더보기
가톨릭대학교 박사 가톨릭대학교에서 「조선 초기 향교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논문으로 「16세기 서원(書院) 사액(賜額)과 국가의 서원 정책」 「조선 초기 사학(四學)의 성립과 ‘개성 학당(開城 學堂)’」 「조선 전기 동몽(童蒙) 교육의 추이와 촌항학장(村巷學長) 설치의 의미」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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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위와 같이 길게 서두를 늘어놓은 까닭은 『조성당일기』가 매우 까다롭고 골치 아픈 텍스트이기 때문이다. 아래에서 다시 소개하겠지만 이 일기는 3년 치밖에 남아 있지 않다. 그러므로 별 가치 없는 단편斷片인가 하면 또 그렇지는 않다. 조선시대 생활일기가 다수 남아 전하지만 그날그날의 사실들을 짧게 적어놓은 일지日誌에 불과한 자료도 적지 않다. 그런 일기들에 비하면 『조성당일기』의 하루하루의 기록은 무척 상세한 편이며, 서술 태도나 문장 또한 매우 진솔하여 저자인 김택룡의 내면을 비교적 솔직히 드러내고 있어서 자료의 밀도가 높다고 할 수 있다. 즉 수습하여 연구하자니 쉽지 않고 버려두자니 아까운 계륵과 같은 존재다. 저자인 김택룡 또한 다면적 인물이다. 그는 월천 조목의 고제高弟인 유학자이면서 당대 지역을 대표하는 명망가 중 한 명이었으나, 다른 한편 가문의 지위가 상대적으로 높지 않고 행적에도 모난 구석이 없지 않은 인물이었다. 따라서 그가 손수 써서 남긴 『조성당일기』는 조심스럽게 독해되어야 할 (그어떤 텍스트도 마찬가지겠으나) 텍스트다. 그러나 이런 사실들이 당대 유력 사족이 남긴 상세한 생활일기로서 그 가치에 심대한 손상을 줄 정도는 못 된다.


김택룡이 지은 「제월천선생문祭月川先生文」에는 어린 김택룡에게 월천이 어떤 스승이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 있다. 김택룡은 8세에 31세 조목을 스승으로 섬겼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가르침을 받았고, 인도하고 부축하며 자상히 일깨워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우쳐 주셨다고 했다. 김택룡에게 있어서 월천은 자상한 선생님이었다. 그는 월천이 어두운 길에 나침반이 되어서 헤맬 때 방향을 알게 하셨고, 그 은혜가 낳아 준 부모와 같아서 자식처럼 보살펴 주셨다고 했다. 1559년(명종 14)에 조목의 아들 구붕龜朋이 태어났는데, 조목에게 있어서도 김택룡은 자식과 같은 존재였다. 김택룡은 월천에 대해 “오지 않으면 근심하시고 보고 나면 기뻐하셨다”라고 회상했는데, 두 사람의 관계는 사승 관계를 뛰어넘는 부자 관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당시 조목 제향을 둘러싼 기류는, 인물 평가에 근거한 제향 여부 판단보다는 도산서원에 대한 상반된 시각에 기인하고 있었다. 조목 제향을 추진하는 입장에서 도산서원은 예안의 서원이기 때문에 예안 내부에서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한 반면, 그 반대의 입장에서 도산서원은 사액 서원으로서 국학國學이기 때문에 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보았다. 반대 입장이 다수였다는 것에서 사액 서원이 갖고 있는 준공적 기관으로서의 성격과 사류가 운영하는 사적 교육기관으로서의 성격이 중첩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조목의 종향은 당시 사류들이 도산서원을 이황의 학문적 유산을 계승하며 학업에 매진하는 공간이라고 표방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서원 제향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는 당시 사류들이 서원의 영향력은 전교당典敎堂(학업)이 아닌 상덕사尙德祠(제향)에서 나온다고 인식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이렇게 봤을 때 조목의 도산서원 종향은 서원의 무게중심이 교육에서 제사로, 다시 말해 지방 사회에서 기대하는 서원의 역할이 출발 당시의 인재양성에서 선현先賢 제향을 통한 지역공동체(지연), 학파(학연), 문중(혈연) 결합의 구심점으로 옮겨가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고 판단된다. 물론 이전까지 교육보다 제사를 우선하는 경향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사액 서원이라는 점, 당시 이황과 도산서원이라는 위상 등을 생각했을 때, ‘서원은 제사가 우선이다’라는 인식에 합리적 근거를 마련해 주었고, 향현鄕賢 제향 서원 설립의 시대를 본격적으로 열었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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